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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Oct 31. 2022

통영일기: 스물두째 날.

통영 삼봉산 종주와 중앙시장 산양식당

# 필라테스 여드레째


통영 한 달 살이가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이곳에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남은 일주일 동안 후회 없이 모든 곳을 가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늘은 그 첫째 날이다. 아직 특별한 계획이 없는 고로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봉산-이봉산-삼봉산 종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어젯밤에 찾아보니 의외로 금방 끝낼 수 있는 일정이었다.


오늘도 아침운동은 지난 금요일과 같은 9시였다. 9시에 운동을 가려니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일 조금 천천히 일어나면 되니까.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가방을 메고 짐을 챙겼다. 주말 동안 살핀 일의 결과물을 두 군데로 보내야 했다. 운동이 끝나고 바로 우체국으로 향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가 있는 동네는 어찌 보면 작은 마을이지만 그래도 우체국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택배용지가 서울에서 쓰던 것과는 형태가 달라서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그동안 서울에서는 스티커 용지에 바로 주소를 써서 붙이면 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일을 쉰지 한 달 보름도 넘었다. 그 사이에 우체국 택배용지가 아예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요금은 그대로였다. 여기에 와서도 내 일거리를 부치게 될 줄이야. 서서히 복귀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지난주까지는 아침에 먹을 것이 그래도 조금 있는 편이었다. 처가 어른들이 다녀가시면서 떡을 한 봉지 가져오셨고 그걸 아침마다 2~3개씩 나누어 먹었다. 전주에서 샀던 초코파이도 있었다. 짐을 줄인다고 지난주까지 그 모든 걸 다 해치우고 나니 오늘 아침부터는 견과류를 제외하고는 따로 먹을 게 없었다. 예전과는 달리 견과류를 왕창 먹고 운동하러 갔지만 먹는 게 부실해서 더 힘이 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다가 한 시간 힘들게 운동을 하고 나니 허기가 져서 아점부터 먹기로 했다. 10시. 너무 이른 시간이라 친구가 알려준 맛집들도 아직 문을 열기 전이다. 천천히 동네를 돌아보다가 지난번에 보았던 한솥도시락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서울에서 먹던 도시락에 달걀프라이를 추가했다. 처음 한솥을 다녔을 때 먹던 도시락 가격은 2천 원이 안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메뉴가 달라지긴 했지만 이렇게 먹으면 5500원이 나온다. 물가가 많이 오르기도 했다. 물론 5500원도 여전히 저렴한 가격이지만. 오늘 단체 주문이 있는지 테이블에 도시락이 가득 채워져 쌓여 있다. 조금 기다리니 바로 치워 주신다. 그리고 곧 도시락이 나왔다.


숟가락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주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보울 형태의 볶음밥이나 비빔밥 종류를 시킬 때만 숟가락이 제공되고 보통의 사각도시락은 젓가락만 준다. 아주머니에게 숟가락을 반납하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서울에서는 그렇게 하느냐고 되물으시고 사장님께도 바로 말씀을 드린다. 사장님께서는 숟가락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교육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전임 사장님께서 이미 숟가락을 제공하고 계셨고 숟가락을 주지 않으면 또 달라고 하는 손님들이 있어서 그냥 주는 쪽으로 운영을 해 오셨나 보다. 그러면서 내게 혹시 본사에서 나온 매니저가 아닌지 의구심을 품으신다. 아니라고 해도 도통 쉽게 믿지 못하시는 눈치다.


사장님, 저 한솥도시락 매니저 아니에요. 세상에 추리닝을 입고 매장을 도는 매니저가 어디 있겠습니까.


방으로 돌아와서는 택배 부친 내용을 메일로 다시 한번 안내했다. 그러고 나니 거의 정오가 가까워 왔다.




통영 용남면 삼봉산 종주


삼봉산 종주 이야기를 적기에 앞서 어제 수명이 다한 배터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다. 걱정이 많았다. 아예 시동이 켜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한편으로는 이미 숙소로는 차를 옮겨 두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삼봉산은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걸어갈 수도 있는 위치다. 밤새 통영의 배터리집을 몇 곳 찾아보았다. 그리고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주고 하는지도 알아보았다. 오전에 우체국을 가면서 기아자동차서비스센터에 먼저 전화를 했다. 지금 이 동네에는 부품점이 없어서다. 혹시 부품 판매도 하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부품점 전화번호를 안내해 준다. 정말 친절하다. 서울이었다면 '우리는 부품은 따로 안 팝니다' 하고 말았을텐데. 천천히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것대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동네는 부품점이 많지 않다. 찾아갈 만한 부품점이 제한되어 있다는 얘기다. 반면 서울은 골목에도 몇 개의 부품점이 있을 수 있다. 어느 곳 하나를 섣불리 추천했다가 나중에 괜한 부메랑을 맞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삼봉산을 가려고 차에 시동을 건다. 긴장 속에 천천히 시동을 거는데 다행히도 시동이 한 번에 걸렸다. 휴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든 문제가 해결된 느낌이다. 이대로 배터리를 교체하지 않고 버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언젠가는 교체해야 하고 미리 준비는 해 둬야 하니까. 삼봉산을 가기 전에 부품점부터 들렀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고는 있었지만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니까. 혹시 잠시 문을 닫았다면 다음에 다시 오면 되고. 다행히 문은 열었는데 내가 찾는 부품은 없었다. 혹시 몰라서 세 개나 준비해 갔는데 세 부품이 모두 없다고 했다. 주문을 하면 내일 오후에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주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마 인터넷이 몇 백 원에서 몇 십 원 정도 저렴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부품점에 오면 택배비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다. 진작 이렇게 할 걸. 금세 볼일을 끝내고 삼봉산 종주를 위해 용남면사무소로 차를 돌렸다.


삼봉산 등산안내도. 사량도 지리산에 비하면 삼봉산은 안내가 별로 친절한 편은 못 된다. 아마 동네 뒷산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지. 그러나 지도를 보면 일봉산에서 삼봉산까지 이어지는 저 능선이 대지를 가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 위로 보이는 것은 대전통영고속도로의 종점인 듯 싶다.


용남면사무소를 앞에 두고 왼쪽으로 걸어서 포장된 임도를 따라 끝까지 오르면 위와 같은 등산안내도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임도를 따라서 삼봉산 쪽으로 직행할 수도 있지만 나는 오늘 삼봉산 종주에 도전한 몸이기 때문에 일봉산으로 먼저 향했다.


낮은 산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어디에서나 이런 풍경이 무시로 펼쳐진다.


조금만 걸으면 이렇게 일봉산 정상에 금방 도달한다. 높이가 200m도 되지 않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의 해수면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한 셈이라서 아주 만만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일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거제도쪽. 확대해서 보면 가운데의 왼쪽으로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가 보인다.


일봉산에서 이봉산으로 가던 도중 헬기장이 있었다. 잡초가 무성해서 헬기장인지 알아보기도 쉽지가 않다.


이봉산 정상은 수목이 무성해서 풍경을 보기가 어려웠다.


이봉산 정상을 지나 삼봉산으로 가다 보면 앞으로 이렇게 봉우리가 둘 보인다. 높이가 있으니 아무래도 오른쪽이 삼봉산일 거라고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랬다. 조금 더 올라가면 금방 삼봉산 정상에 다다른다. 아마 산행을 시작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인 것 같다. 한려수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삼봉산은 정상이 탁 트여 있고, 전망도 좋았다.



삼봉산 정상을 거쳐 내려오는 길은 다른 길로 내려오고 싶었지만 차를 세워둔 관계로 그럴 수가 없었다. 이래서 등산할 때는 차를 가져가는 게 불편하다. 물론 다른 길로 내려간다고 바로 버스가 오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아래쪽 임도를 통해서 용남면사무소로 향했다.


오늘 삼봉산을 종주하는 내내 등산객을 단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무서울 법도 한데 해가 너무 쨍쨍해서 딱히 무섭지도 않았다. 코스가 얼마나 걸리는지도 알고 있었고 거의 정오에 시작한 산행이라 어둡기는커녕 해가 중천일 때 내려올 자신이 있었다. 평일에 쉰다는 게 이렇게나 좋구나. 사진을 공유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다들 부럽다는 반응 일색이다. 반면 아래쪽 임도에는 그래도 사람이 조금이나마 있었다. 한 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여섯 분 정도의 등산객을 본 것 같다. 이 또한 많은 수치라고는 할 수 없다. 오늘은 평일이니까. 이렇게 삼봉산 종주를 마치고 내려오니 시간은 대략 3시쯤이었다.


오늘은 천천히 시내로 나가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다. 통영을 떠날 날도 머지않았다. 그에 대비해서 사가야 할 것들도 살펴보고. 그리고 저녁을 일찍 먹기로 정했다. 점심보다는 아점을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저녁도 일찍 먹기로 한 것이다. 오늘 저녁은 산양식당이다. 수많은 꿀빵집들을 멀리서 천천히 살펴보았다. 평일이라 오늘은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호객이 있는 까닭에 자세히 살펴보기에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한 입 먹고 사지 않으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지난 목요일에 꿀빵집마다 파는 꿀빵도, 가격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깨우친 뒤였다.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고 이번 토요일에 어디에서 꿀빵을 살지 정했다. [통영맥주]도 가 보았다. 가격도 확인하고 매장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또한 토요일에 와서 한 번에 살 계획이다. 6개 들이 한 묶음을 2만 원에 판다. 3묶음 정도 사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더 사야 할까. 내가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다 선물할 생각이라 3묶음도 조금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여기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니 3묶음은 사야겠다. 사 두면 다 쓸데가 있겠지.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고 네 시가 조금 넘어서 산양식당에서 통영비빔밥을 시켰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에서 다녀간 집이라고 계산대 뒤로 사진이 걸려 있다.


나는 보통 잘 먹지 않는 반찬은 반납하는데 이곳에서는 이미 나온 반찬은 다시 안 들인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모두 놓고 밥을 먹었다. 내가 반납하려던 반찬은 깍두기인데 아까워서 하나둘 먹기 시작했더니 간이 잘 들어 있고, 적당히 익었고, 아주 시원해서 하나 빼고 다 먹었다. 나는 깍두기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내가 이렇게 손이 갈 정도의 깍두기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바닷가 식당임에도 곰탕집이라서 그런지 고깃국물이 딸려 나왔다. 아마 소금 간을 따로 했어야 싶은데 그냥 먹었다. 대개 우리는 짜게 먹고 저 위에 있는 가자미조림도 모두 간이 되어 있으니까.


봉수골에 오색비빔밥이 유명한 집이 있는데 산양식당의 통영비빔밥은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물(해물 포함)이 모두 9종류나 된다. 그리고 두부에 참기름까지 들었다. 옛날 분들이라면 적당히 담백해서 아주 맛있게 드시지 않을까 싶다. 특히 조금 싱겁다는 느낌이 들 때면 가자미조림과 함께 먹으면 딱이다. 그러나 역시 나는 어린이입맛인지 가자미조림보다는 비빔밥에 달걀프라이가 없는 게 그렇게 아쉽고 서운할 수가 없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랄까. 먹어 본 놈이어야 좋은 것도 잘 먹을 수 있는 법인데. 쩝.


식사까지 마치고 한산대첩주차장에서 숙소로 돌아오자니 뭔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석양을 보니 벌써 해가 많이 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감을 실감한다. 처음에는 해가 거의 6시는 되어야 졌고, 어둑어둑해지는 건 그보다도 더 뒤였다. 그런데 이제는 거의 5시면 해가 질 준비를 하고 있다. 10월부터 11월에 걸치는 지금은 날씨로는 한 달 살이를 하기에 너무 좋은 때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9월 추분 이후여서 이미 해가 짧은 상태인데 갈수록 해가 더 짧아진다는 것이다. 내가 이 시기를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나는 다음 번에는 4월 말에서 5월로 이어지는 시간에 한 달 살이를 하고 싶다. 햇살도 따뜻하고 해도 길어서 지금보다 활동하기에 훨씬 좋을 것이다.


내일은 다시 승마를 가는 날이다. 윈디(내가 타는 말)에게 주려고 이번 서울나들이에서 각설탕을 챙겨 왔다. 윈디와 보낼 시간도 이제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승마장에서는 내가 한 달 살이를 하러 내려온 줄도 모르고 있는데 언제 이야기를 한담. 다른 것보다도 그 좋은 승마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윈디와 작별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고 섭섭하다. 함안까지 갈 날도 이틀밖에 안 남았다. 내일은 또 그곳에서 무엇을 마지막으로 해야 할지 이제부터 잘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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