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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Nov 04. 2022

통영일기: 스물사흗 날.

입곡군립공원과 박경리기념관 그리고 달아공원

# 승마 이레째


오늘의 일기는 아주 길 것 같다. 이걸 보시는 분들이 글을 정말 다 읽는지 궁금하다. 예전의 블로그 시대와는 달리 이제 브런치는 거의 다 휴대전화로 볼텐데. 더구나 휴대전화에 친숙한 세대일수록 장문 독해 피로감이 심하다. 하루 일기를 여러 편으로 나누어 써야 하나. 실은 나는 그날 있었던 생각을 여기 다 정리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길어서 그냥 마무리하는 편인데.




너는 승마를 잘하는 게 아니야


그동안 승마장에서 [윈디]라는 말을 탔다. 처음 등록하면서 승마장 쪽에 잔뜩 겁을 주었다. 3회의 낙마 경험이 있고, 지금까지 40번 정도 말을 탔지만 무서워서 아직 잘 못 탄다고. 여기에서 처음 말을 탔을 때, 코치님께서 하셨던 이야기가 윈디는 아주 순해서 사람을 떨어뜨리고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거였다. 게다가 박차도 아주 잘 듣는다고. 처음 두 번 정도는 어설프게 보냈지만 이후로는 여기에 와서 배운 게 참 많았다. 일단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옳다. 지난 2년 동안 실내에서 말을 탄 건 이곳에 와서가 처음이었다. 다른 변수가 많이 사라진다. 게다가 혼자서 말을 탈 기회도 많았고. 다른 기승자와 말이 없다면 또 말을 놀라게 할 변수가 없어진다. 덕분에 자신감을 가지고 실컷 말을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승마장에 갔더니 '오늘은 다른 말을 타실 거에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미 윈디는 아침에 두 번이나 운동을 했다고. 세상에.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척 당황했다. '이제 겨우 적응했는데 다른 말을 타라고?' 그렇게 오늘 내가 타게 된 말은 [케이시]였다. 그래도 비교적 익숙한 말이었다. 그간 기승이 겹쳤을 때 다른 분들이 타던 말이 케이시였다. 그나마 자주 보았기 때문에 안심이 되었고 비교적 험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말을 타 보니 영 딴판이었다. 도저히 가려고 하지 않고 계속 마장 가운데로 들어가려고만 했다. 그 바람에 코치님도 힘들었다. 그동안에는 가운데에서 그냥 말로만 설명하면 되었는데 말을 외곽으로 밀어내느라, 그리고 말의 움직임을 확인하느라 나와 같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케이시는 머리 움직임이 엄청 활발했다. 그간 잊고 있었던 낙마의 상처가 다시 떠올랐다. '이러다가 떨어지는 거 아니야?' 어쨌든 말이 운동하지 않고 마장 가운데로 가려고 하는 걸 억지로 운동을 시키는 셈이었기 때문에 말이 화가 나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이 되었다. 코치님도 이야기했다. 내가 몸이 많이 얼어 있다고.


그간 윈디로 경속보는 올해 초 낙마하기 전처럼 상당히 자신감 있게 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했었다. 아직 속도 조절을 능숙하게 할 정도까지는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보내는 건 이제 두렵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케이시를 타 보니 영 아니었다. 말을 보내기는커녕 말이 제 방향으로 걷도록 하는 것조차 잘하지 못했다. 승마를 배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가운데 하나가 '말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다. 케이시가 제대로 운동하지 않는 건 케이시를 타는 내 탓이었다. 중간에 코치님께서 두 바퀴 정도 타고 주셨는데 코치님이 탈 때는 잘만 갔다.


그래도 오늘 실력이 가장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코치님의 지속적인 지도로 말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는 것은 되었다. 어쩌면 내 덕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옆에 채찍을 든 코치님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다른 승마장에서도 이 정도로 할 수 있을지는 쉽게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이 승마장에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간부터는 케이시가 머리를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꾹 참고 탔다. 경속보도 상당히 보낼 수 있었다. 오히려 케이시가 보폭도 넓고 움직임도 활발해서 코치님은 여기에서 본 중에 제일 잘 타는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말이 알아서 잘 나가면 기승자도 편하다. 물론 내가 세우고 싶을 때 잘 서는 경우에 한해서.


덕분에 오늘은 식은땀도 그리고 그냥 운동하고 나서 흘리는 땀도 흠뻑 흘린 하루가 되었다. 뭔가 한 단계 더 발전한 듯해서 아주 보람 찬 날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제 목요일이 마지막 기승이다. 가장 서운한 것이 이 승마장을 떠나는 것이다. 서울 근교에서는 어디에서도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승마장을 찾을 수가 없는데. 아쉽다.




입곡군립공원 단풍


'울긋불긋'이라는 단어가 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침에 차를 끌고 승마장으로 가면서 주변 풍광을 보는데 그야말로 울긋불긋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이 풍경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울긋불긋이라는 단어가 생겨 난 것 아닐까.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이제 함안으로 승마를 하러 올 기회가 두 번뿐. 어젯밤에 지도를 펴고 함안에서 어디를 꼭 가야 할까 둘러보았다. 가까운 곳 위주로. 이미 말이산고분군, 함안박물관, 한우국밥촌은 모두 가 보았고 이 외에도 가 볼 만한 곳이 적지 않았지만 승마장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경로에 있는 곳은 이제 거의 다 돌아보았다 싶었다. 이태준박사기념관과 고려동유적지도 가 보고 싶긴 한데, 이태준박사기념관은 함안의 서쪽 끝에 있어 조금 먼 편이었고 고려동유적지는 음식체험을 신청하려다 1인은 불가하다고 반려된 바 있다. 승마장은 입곡군립공원 바로 근처에 있다. 몇 가지 체험활동도 해 볼 수 있고 저수지 주변 풍광 자체가 수려하다고 해서 이왕 승마장까지 온 김에 마지막으로 군립공원을 산책하자고 마음 먹었다. 운동이 끝나면 배가 조금 고프겠지만 한 끼 늦게 먹는다고 사람 안 죽는다.


단풍이 정말 곱게 물들었다. 사진으로는 다 표현이 되지 않는다.


저수지를 따라 산책로가 정말 잘 되어 있었다. 게다가 단풍이 최고조로 잘 든 시점이었다.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산을 꽤 다닌 편인데 이렇게 단풍이 예쁘게 잘 드는 걸 느껴 본 적이 언젠가 싶었다. 그런 적이 있긴 있었나. 그냥 시간만 보내고 살지 않았나. 통영에 내려와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확실히 변한 것이 하나 있다면 계절이 가는 소리, 하루가 가는 소리를 명확하게 듣게 된다는 점이다. 한 달 전과 비교해 해가 짧아진 것도 정확히 느끼고 있고, 이렇게 그 사이에 선명하게 단풍이 든 것도 보고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게 이런 것인데. 그동안엔 뭐하느라 계절 변하는 것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지. 그저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내느라 이런 걸 느낄 새가 없었겠지. 평일엔 시간이 가는 게 기뻤을테고, 주말엔 흐르는 시간이 안타까웠을 터다. 나도 이제 이런 천국 같은 세월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요즘은 이렇게 가는 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것이 이번에 쉬면서 가지게 된 변화다.


함안이 시골이라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동네다 보니 단풍길 입구로는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글짓기를 하신 결과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으로 찍지는 못했지만 읽다 보니 코끝이 찡했다. 나는 학사 3개에 석사가 2개나 있다. 가방끈으로 치면 누구에게도 남부럽지 않을 사람인데 이렇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다. 그렇지가 않은 것인데. 단풍에서도 그렇고 새삼 이곳에 와서 이렇게 일상의 고마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출렁다리도 있다. 아마도 이쪽에 설치되었을 당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였을. 이제는 출렁다리가 너무 많아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테지만. 중간에 저렇게 아래 저수지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량도 옥녀봉을 가면서 두 번이나 출렁다리를 건넜던 생각이 난다. 아래가 너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 그저 무서운 걸 꾹 참고 서둘러 건너 지나기 바빴다. 그 출렁다리에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으므로. 입곡군립공원에 있는 출렁다리는 아래가 저수지여서 그런가 상대적으로 덜 무서웠다. 수심이 몇 m나 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실은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량도 옥녀봉에서나 여기에서나 같은 상황인데 사람은 왜 다르게 느끼는 건지.




저는 다혈질이고요, 평정심 유지가 잘 안 됩니다


1시간 반 정도 입곡군립공원을 돌고 나서 점심은 통영 시내로 들어와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영에 와서 놀란 게 이 동네는 식당들에 브레이크타임이 참 많다. 그래서 서둘러서 2시 반 정도에는 도착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야 3시부터 브레이크타임이더라도 이전에 주문을 하고 식사를 마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내일 뭐하냐고 물어보시며 갑자기 내일 통영으로 오겠다고 하신다. 그것도 확정된 일정은 아니고 어머니와 상의를 해 봐야 하겠다셨지만. 실은 지난 주말부터 동생이 가족과 함께 남해에 내려와 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면 이왕 오시는 김에 통영에 하루 있고, 남해도 들렀다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고향에서 통영까지는 4시간은 걸릴 거리다. 남해도 마찬가지일 거고. 이걸 굳이 통영을 한 번, 남해를 한 번 다녀갈 필요는 없지 않는가. 물론 부모님께서 은퇴하셔서 어차피 쉬고 계시지만. 그걸 또 굳이 고집을 피우신다. 남해는 나중에 알아서 할테니 일단 통영에만 하루 다녀오려고 한다고. 결국 나도 언성이 높아졌다. 이왕 오시는 김에 남해까지 한 번에 들렀다 가시라고.


엄청 화가 났다. 결국 다 내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아서 화가 난 거다. 다음 주 화요일에 어머니가 큰 병원 진료를 받으시러 서울에 오신다. 그래서 처음에 한 달 살이를 하러 내려오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월요일에 통영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내가 고향에 들러서 하루 자고 화요일 아침에 모시고 가면 어떻겠느냐고. 생각해 보겠다고 하시더니 한참 지나 그래도 아버지 차로 그냥 한 번에 다녀가시는 게 편하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에 한 달 살이를 마치려다가 일요일에 마치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도 그렇게 바꾸었다. 회사로 돌아가기까지 한 주 정도 말미를 얻는 셈이니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통영에도 한 번 오시라고 말씀은 드렸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에 어머니 아버지께서 여러 가지 일들로 통영에 오는 건 어렵겠다고 말씀을 해 오셨다. 그러면서 아버지 일정이 생겨서 어머니 병원을 내가 고향에 들러서 모시고 갔으면 한다고 또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었는데. 더 화가 나는 건 아버지가 일정이 생겼을 때 말씀하셨으면 될 걸 여지껏 말씀도 안 하고 계셨다. 그냥 통영에 못 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으면 좋겠네' 식으로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답답해 죽을 뻔했다.


좌우간 내일 오신다니 못 오시게 할 수는 없는데 내일 오셨다가 모레 동생네로 가시면 동생네엔 며칠 머무실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떠나신 뒤에 내가 또 동생네로 가는 것이 제수씨 보기에 영 민망해졌다. 그래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기껏 부모님께서 병원을 알아서 가시겠다고 해서 통영에 머무는 일정까지 부탁해서 바꾸었는데 이렇게 될 것 같았으면 이게 뭔가. 차라리 원래 예정대로 했으면 더 나았을 것을. 이제 와서 다시 바꾸기도 좀 그렇다.


한 번 불 붙은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화 낼 일이야?' 하면 또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불편도 없어?' 라고 물으면 그것은 또한 아니다. 게다가 부모님은 나도 그렇지만 두 분 다 내륙분이시라 어떻게 식사를 모시고 다녀야 할지도 걱정이다. 여기 맛있는 식당들은 모두 다 해산물을 파는 곳인데. 처가의 아버님 어머님도 와서 하루 지내고 가셨는데 생각해 보면 두 분은 드시는 것에는 크게 가리는 것이 없었다. 부모님도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다고 말씀은 하시는데 말씀뿐이다. 속으로는 다르게 평가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 해산물 식당조차도 일찍 오신다고 말씀하셨으면 더 좋은 데를 예약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가족 간에도 남처럼 대해야 좋다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족 간에도 남처럼 대해야 좋다. 남이라고 생각하고 예의를 차리고 거리감도 가져야 서로가 좋고 편하다. 동생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조카를 보러 간다고 하면 '잔소리만 안 하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남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가면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남의 살림에 잔소리할 사람 없다. 가족을 나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가서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자식도 따로 가정을 꾸리면 자신들만의 사는 법칙이 있다. 그걸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지난 여름 친구네 가족이 서울의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간다고 했더니 아는 교수님이 정말 놀라서 자빠지셨다. 자신이 일하는 대구로 딸 둘이 놀러와서 자신의 집에 재우려고 준비를 잘했는데 딸들이 따로 호텔을 잡아서 충격을 받으셨는데 세상에 아직도 친구네 가족을 재워주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신 거였다. 그런데 친구네 가족이 오늘 전화를 해 와서 내일 잔다고 하지는 않지 않는가. 물론 그래도 재워 주기는 하겠지만 조금 떨떠름하겠지.


단풍을 보면서 얻었던 마음의 평화가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걸 보면서 내 삶이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욕심은 많은데 사람이 가진 것 많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얼마나 많은 변수가 생길 것인가. 고작 이런 작은 일에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려서야. 한편으로는 내가 왜 지금 행복한지도 알 수 있었다. 회사에만 출근해도 이런저런 생각지도 않은 변수가 생기고 부모님은 그래도 가족이니 이해할 수나 있지, 가족도 아닌 연놈들이 온갖 사고를 쳐 대고 수습해 달라고 한다. 그러니 늘 화가 나고 불행할 수밖에 없지. 이제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가려던 식당에는 2시 40분쯤 도착했다. 이곳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대부분의 식당이 3시부터 브레이크타임이다. 서울에서도 몇몇 식당에서는 보았지만 이렇게나 흔히 경험하지는 못했다. 거의 대부분의 식당이 쉰다고 보면 된다. 서둘러서 식사를 마치면 식당에 크게 눈치 안 보고 3시까지 식사를 마칠 수 있겠다고 보았는데 식당에 아무도 없다. 헐, 이런. 전화를 했더니 브레이크타임이라고. 아직 15분 남지 않았냐고 했더니 오늘 재료 준비 때문에 점심 장사도 안 했단다. 아, 이런 낭패가. 어쩐지 점심 때 공원 산책 전에 차에 남아 있던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울까 하는 생각이 들더니만. 아침에 약간의 간식을 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3시까지 쫄쫄 굶었던 셈이라 배가 고팠다. 거의 대부분이 식당이 3시부터는 쉬는 상황에서 후배가 놀러왔을 때 함께 갔던 [원조밀물식당]을 다시 찾았다.



지난번에 굴국밥을 먹었기 때문에 이번엔 해물뚝배기를 시켰다. 해물뚝배기는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아주 실해 보이지만 패류는 패각을 제외하고 나면 살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추천할 만한 메뉴는 못 된다. 전에 처가에서 장인어른, 장모님이 오셨을 때 넷플릭스에 나왔던 [통영해물뚝배기]를 방문했는데 확실히 그곳의 뚝배기가 실했다. 물론 거기에서는 1인분을 시켰던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영의 식당들은 밑반찬의 질이 정말 좋다. 요즘 시금치 가격이 비싼데 시금치 나물도 한 움쿰이나 주시고. 이 외에 반찬으로 게장이 있는데 난 게장을 잘 먹을 줄 몰라서 처음부터 안 주셔도 된다고 했다. 후배와 왔을 때는 멸치회무침도 있었는데 '회무침도 안 주셔도 돼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그건 주는 날도 있지만 이 날은 원래 안 주신다고. 대신 조기를 주신 것 같은데 조기를 한 마리 주실 줄 알았으면 미리 안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릴 걸 그랬다. 난 조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시가 많아서. 이미 3시가 넘은 시간이라 식당에 손님은 나뿐이었고, '점심이 엄청 늦네?' 하면서 몇 마디 말을 거셨다. 이 또한 서울과는 다른 통영만의 정겨운 풍경이다.


소설가 故 박경리 선생님의 고향이 통영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박경리 선생님 고향마저 통영이라고?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만 솔직히 나는 [토지]를 읽어 보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 [토지]가 얼마나 위대한 소설인지 듣고 한 번 읽어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처음 약 50쪽 정도가 너무 지루해서 도저히 못 읽겠다고 포기했던 생각이 난다. 이후로도 [토지]는 분량 자체가 방대해서 읽어 볼 생각을 한 번도 못했다. [태백산맥]부터 [아리랑], [한강], 최명희 선생님의 [혼불]은 두 번이나 읽었고, 일본의 32권 짜리 [도쿠가와 이에야스]까지 보았지만 [토지]는 아직 읽지 못했다. 다만, 얼마나 대단한 소설가인지는 누구나 다 들어서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박경리기념관은 4년 전에 통영에 왔을 때도 다녀갔지만 이번에도 꼭 한 번 다시 들렀다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통영에서의 마지막주를 맞이하고 후회 없이 생각나는 대로 바로 가자고 마음 먹었다.


박경리 선생님의 묘소 앞에서 바라본 바다와 정경


방문하고 나서야 알았다. 4년 반 전에 박경리기념관에 왔을 때는 묘소에까지는 가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아마 그때는 아내와 함께 와서 기념관 위로 더 올라가야 하는 묘소에까지는 가 볼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수구초심인가. 박경리 선생님 고향이 통영인 줄 알지도 못했는데, 그럴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는 강원도 원주에 이 분께서는 연고를 두고 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다시 묻힐 때 고향을 향하게 되는 것일까. 나도 과연 그럴까. 지난 4년 반 사이에 나는 한 박경리 문학과 토지 연구자인 분과도 매우 가까워졌다. 그분이 그 정도로 [토지] 연구의 권위자이신 줄은 미처 몰랐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보낼까 싶었지만 갑자기 통영에 와 있다고 하면 놀라실 것 같아 연락하지 못했다. 어차피 머지않아 보게 될텐데. 묘소가 크지는 않았지만 묘역의 넓이는 작다고 할 수는 없다. 함안의 아라가야고분군을 보면 고분은 크지만 묘역이 넓다고 하진 못할 거다. 그만큼 묘역에 많은 사람이 묻혀 있기 때문에. 박경리 선생님이 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렇게 또 후대인들의 필요에 의해 누군가를 폭넓게 기리고 기념한다.


어차피 산양읍까지 내려온김에 미륵도를 밖으로 한 바퀴 돌 생각이었고 달아공원에서 일몰을 보고 가면 좋겠다고 보았다. 달아공원 일몰 전망은 정말 좋다. 다만 한 가지 사람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두자면 일몰 보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달아공원은 유료주차장밖에는 없다. ㅎㅎ 이 점을 꼭 유념하시길. 평일임에도 수많은 사람이 일몰을 대기하고 있었고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동영상 찍기에 열심이었다.



어찌 보면 일출이라고 해도 속을 것처럼 찍혔다. 이렇게 홀로 고요히 일몰을 바라보기는 지난 2019년 몽골 여행 때 이후로 처음이지 싶다. 사람의 성향인 것 같은데 나는 일출보다는 일몰을 보는 게 마음도 편안하고 왠지 더 정감이 간다. 이것도 참 요상하다. 어찌 보면 통영도 서해보다는 동해에 더 가까운데 이곳에 와서도 일출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했다. 일몰만 보려 했을 뿐. 시내 충무교에서 일몰을 보았고, 사량도 다녀오는 배에서도 일몰을 보았고, 지난주에는 일몰 맛집이라는 카페에서 또 일몰을 보았고, 이때는 가장 유명한 일몰 명소인 달아공원에서 또 일몰을 보았다. 해가 지는 것만 쫓아다닌 셈이다.


박경리기념관까지 다녀오고 미륵도를 차로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니 또 하나의 오랜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내가 여기에 언제 올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무척 쓸쓸하고 허전했다. 외롭고 쓸쓸할수록 일몰보단 일출을 보며 희망을 찾고 힘을 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사람은 오히려 본인의 기분에 더 맞는 것을 찾게 된다. 그럼 더 공허해지고. 가끔 삶을 반전시킬 무언가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이럴 때 이어지는 상황을 뒤바꿀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다시 또 일몰을 보는 게 아니라, 뭔가 힘을 얻어서 일출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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