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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l 13. 2020

팀원이 바라는 팀장

누구나 다 이순신과 같은 리더를 기대한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그런 리더가 거의 없었기 때문임을 모르지도 않는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숱한 원균을 마주한다. 틀림없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할 것임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적지 않은 우리들은 구성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로 끌려나간다. 구성원조차도 죽을 자리임을 뻔하게 아는 곳을 리더는 "네가 어떻게 아느냐?"며 윽박지른다. 이게 오늘도 대부분의 우리가 직장에서 겪고 온 현실이다.


최근 팀장과의 감정싸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 10년도 더 전에 내 군대 선임은 "honest야 있잖아, 지휘관 하고는 맞고 안 맞고가 아니라 무조건 맞추는 거야"라는 명언을 전해 주기도 했고, 수많은 회사 동료들도 내가 손해일 것이 뻔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팀장과의 감정싸움을 피하라고 조언해 주고 있지만, 나로서는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오늘 한때 지휘관을 겪어 본 사람으로서 리더란 어때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아, 나의 경험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아래에 쓸 글만으로도 충분히 싸가지가 없을테니.




작은 회사지만 나는 나름대로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물론 이 기획팀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기획팀은 아니다. 우리 회사에는 전략팀이라는 또 다른 팀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획팀에서 기획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팀의 명칭이 기획이다시피 역시 기획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마도 내 업무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고, 그것을 계량화한다면 대략 20~30%? 기획에서 이어지는 일이 있으니, 실제로는 그 비중이 훨씬 더 높다. 대개 자신의 기획안을 발전시켜서 결과물로 만드는 것은 그 기획자의 몫이다.


싸가지 없는 말일 수도 있는데 최근에 내가 2건 정도의 좋은 기획을 했다. 1건은 결과가 좋아서 아주 큰 상을 받게 되었고,(내일 받는다.) 다른 1건은 기획을 함께하는 사람의 이름값만으로도 작지 않은 일이다. 인맥사회인 우리나라에서 함께 기획하는 사람이 어마어마한 이름값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결과물을 기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그 외에도 가능하면 나는 좋은 기획안을 많이 만들어 보려고 한다.


사실 나의 기획안에도 한계는 분명히 있다. 대개 나의 기획안이라는 것이 내가 정말 훌륭한 기획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많지 않고, 위에 적은 것처럼 내가 기획하는 어떤 분야의 대가를 찾아서 함께 일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 전문가인 어떤 사람, 이미 유명한 어떤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일은 이미 반 정도는 된 것이나 다름없다. "뭐야, 너는 기획을 할 줄 모르네?" 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뛰어난 기획을 한다고 해도, 이미 그 분야에 통달해 있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어떤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에 오른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변명하겠다. 실제로도 그렇다. 아무리 훌륭한 기획안이 있으면 뭘하나. 그걸 누가 봐 줄 건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팀장이 기획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엄청난 먹이를 잡으려고 잠시 웅크리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기에는 팀장이 기획팀장이 되고 벌써 2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내가 준비한 기획안은 10건도 넘을 것이다. 이제 퇴직까지 1년 반도 채 남지 않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기획을 하려고 지금까지도 하나도 기획하지 않고 있는 건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K대 출신의 어떤 이와 일을 함께하게 되어서 같이 밥을 먹는데, 팀장이 "honest 씨가 오고 나서 K대 사람들이랑 함께 일을 하는 경우가 엄청 늘었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순간 이렇게 말할 뻔했다. '아니 그럼 팀장님께서 E대 사람들이랑 함께하는 기획안을 많이 만들어 보시던가요'


기본적으로 지도자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장관급 정도가 볼 만한 기획안을 만들어서 가져왔다면, 팀장이라면 총리급, 대통령급에서 볼 수 있는 기획안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기획안을 만들려고 이렇게 오래 뜸을 들이는 것인가. 나는 500원을 걸겠다. 아마 1년 반 내로 그 기획안이라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나는 이 회사를 다니는 지난 5년 반 동안에도 팀장의 기획안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세상은 실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른 특출난 능력이 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팀장에게 기획력이 없어도 받아들일 수 있다. 최근에 내가 팀장과 감정싸움을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결재문서였다. 작은 지출 건이었는데, 3일에 걸쳐 3번을 올렸는데 매번 수정 지시를 하면서 반려하는 것이었다.


첫날이었던 월요일에는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올린 결재문서니까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수정하라고 지시한 부분을 바로 수정하여 다시 결재를 올렸다. 그런데 화요일에 같은 문서를 다시 수정하라고 했다. 이번에는 조금 화가 났다. 아니, 어제 같이 말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화가 났지만 그래도 고쳐서 다시 결재를 올렸다. 그랬더니 수요일에 재차 수정 지시를 내리면서, 어떤 문서를 보고 참조해서 이런 형태로 하라고 하는 것 아닌가? 이번에는 엄청나게 화가 나서 "아니 뭐가 그렇게 다른가요? 이렇게 하면 지출액이 10원 줄어드나요? 뭘 못 알아보겠어서 고쳐야 하는데요?" 하고 치받고 말았다.


구성원으로서 리더를 들이받은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나도 인정하겠다. 그런데 도대체 뭔가. 나는 팀장이 실력이 없다고 해도 인정할 수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결재문서도 올려야 하고, 기획안도 승인받아야 하고 여러 가지 일이 있다. 만약 본인이 기획력이 부족하다면, 이런 부분이라도 말끔하게 통일하고 체계적으로 하나의 형태로 만드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본인이 기획을 할 수 없다면, 적어도 팀원들이 더 좋은 기획을 더 편하고 수월하게 해 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팀장의 존재 이유다. 가장 좋은 것은 팀장임을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기획력을 보이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때, 팀원들이 좋은 기획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도 팀장의 능력이고 존재 이유다. 그런데 이게 무언가. 같은 문서를 세 번씩이나 수정하도록 하는 것은(심지어 나는 그 문서 형식 그대로 지난 1년 반 동안 결재를 다 맡아 왔다.) 팀장 본인에게 어떤 체계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그때 그때 보이는 대로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그렇게 했을 때 업무가 엄청나게 개선된다거나 변화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100% 증명할 수 있다. 월요일 버전과 화요일 버전, 수요일 버전과 수정 후의 마지막 버전에서 무엇이 다른지, 어떤 것이 개선되었는지 보는 사람은 절대 찾을 수 없다고. 아니, 오히려 보기에 따라서는 개악되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팀장이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능력을 보이기보다는 팀을 잘 이끌고 팀원들이 좋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입장이라고 본다면 그것도 괜찮다. 그렇다면 팀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받쳐 주고, 지원해 주고 한 번에 명쾌하게 해 주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 내가 가장 화가 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본인이 팀장이라는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 그저 결재문서에서 사소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슬픈 건,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팀장과 리더들이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 아마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실력이 부족하다고, 나를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고 해서 가족이 아닌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능력이 다소 부족하거나 넉넉하게 나를 지원해 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가족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늘 내 편이니까.


나의 과거에 대해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것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군대에 있을 때 나는 부대원들에게 히틀러 같은 지휘관으로 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대원들이 내 말을 들었던 것은 그들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는 내가 앞장서서 나의 지휘관과 상급자들에게 따졌기 때문이다. 나를 납득하지 못하는 지시는 나의 부대원들에게도 하면 안 되었다. 물론 나의 지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이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아마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겠지. 그러나 그래도 구성원들은 자신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지도자를 원한다. 나에게는 윽박지르면서 상급자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리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찾을 수 있는 리더다.


얼마전에 다른 팀에서 우리 팀으로 사람을 한 명 보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 다른 팀에 브런치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정년을 연장한 직원이 회사를 더 다니게 되면서 팀원이 한 명 늘어나게 된 까닭이다.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던 것이 그 팀에서 사람을 받는 문제에 나만 반대일 줄 알았는데, 다른 팀원들도 모두 반대 의사를 표했다. "기획 일을 해 본 적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팀원 3명은 모두 반대하는데, 유일하게 팀장만 어정쩡한 반응이었다. "아니, 대표가 기획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뽑았기 때문에 보낼 수도 있다는데, 그걸 어떻게 반대해"


어떻게 반대하냐니. 그러라고 팀장인 것이다. 내가 대표와 매일 같이 회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지 않나. 우리 팀원 3명 모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서 반대하는데 그 이야기를 대표와 자주 만나고 자주 회의하는 당신이 대표해서 하라고 그래서 당신이 우리 팀의 팀장이다. 그걸 어떻게 반대하냐니. 더 가관인 건 그다음 일이다. "저는 그렇게 반대 안 해요. 회사 차원으로 보면 어이가 없는데, 그 사람이 우리 팀에 오면 이번 기회에 제가 하기 싫었던 귀찮은 잡일들 다 넘기죠, 뭐" 나는 우리 팀에 가장 늦게 왔고, 나이도 어리고, 2명이 빠지는 팀에 혼자 들어오다 보니 2명이 하던 일을 넘겨받아 꽤 많은 잡일이 있다. 그렇다. 회사에는 손해여도 내게는 손해가 아닐 수도 있지. 여기에 팀장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아니, 대표가 기획하라고 보낸 사람에게 어떻게 잡일을 시켜. 기획을 하게 해야지" 그럼, 나는 잡일을 하라고 이 팀에 보낸 건가.


정말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리더들이 이런 모습이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마지노선은 상후하박(윗사람에겐 네네 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야멸찬 사람)한 사람이 아니라, 상박하후(윗사람에게는 똑부러지게 할 말하고, 아랫사람들의 말을 너그러이 들어주는 사람)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말 슬프게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조직에서 '장'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상후하박하다.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자신의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팀장이 저런 것도 그 때문이다. 팀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팀장을 계속하는 것인데, 대표에게 잘못 보일 수는 없으니까.


이런 리더를 도대체 어떻게 존경하란 말인가.




사람을 너무 큰소리 치면 안 된다. 내가 군대에서 나의 지휘관들과 상급자들에게 큰소리로 또박또박 따질 수 있었던 것은 군대에는 나의 내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그곳에서 인생의 승부를 보겠다고 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대신에 나는 비겁한 놈이라는 부대원들의 지적은 받아야겠지.


어떻게 보면 세 가지는 모두 연결된다. 대표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은 팀장에게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 팀장이 엄청난 기획력과 영업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대표도 팀장의 말에 훨씬 귀 기울일테고, 팀장이 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낸다고 해서 함부로 팀장을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팀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대표의 말에는 "네네" 할 수밖에 없고, 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본인에게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팀장을 팀원들도 모두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팀장인데. 팀장으로서 권위도 세워야 하고, 존재감도 느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에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결재를 미루면서 반려한다.


이순신 장군도 좋기만한 리더는 아니었다. 훈련이 강했고, 군령도 엄했다. 무엇보다 큰 전쟁 없이 2백 년 가까이 평화로운 시대에 그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실력이 있었고, 조정에서 나가라는 명령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해서 거절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책임도 온전히 그가 졌다. 아마 그래서 이순신 장군인 거겠지.


가끔 호랑이와 사자 같은 리더를 상상한다. 나도 때로는 꾀도 부리고 게으름도 피우고 싶은데 그렇게 똑똑하고 엄한 리더가 오면 얼마나 곤란할까. 그러나 어슬렁거리는 동네의 고양이나 들개 같은 리더와 함께하다 보면 곤란하고 어렵기에 앞서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 대한 환멸이 생긴다.



부디, 그 무게를 견딜 재간이 있거들랑 그제서야 왕관을 쓰기를.


그리고 자신이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없거든, 구성원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한시바삐 내려놓길.


어리석은 리더는 그 자신만이 아니라, 구성원과 조직까지 해친다. 우리가 비겁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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