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은 당신의 인생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잘 지냈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는 인사가 어느 순간부터 아무렇지도 않지 않아졌다. 찰나라고 할 만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저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 엄청나게 고민한다. 당연히 잘 지내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잘 못 지낸다'고 하면 왜 잘 지내지 못하는지 질문을 받을 게 뻔하고 그러면 또 뭐라고 답해야 하나. 순간의 고민은 같은 질문을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여러 번 받는 와중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의 삶이나 그렇듯 내게도 늘상 많은 일이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일이.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를 드라마나 대하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아도 충분할 것 같은.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면 또 그렇게 내가 엄청난 일을 겪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 정도의 고민과 이 정도의 어려움, 사연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닐까. 적어도 대하소설의 주인공이 되려면 갑자기 내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던가, 아니면 내가 불치병에 걸렸던가, 알고 보니 우리 가족이 간첩이었다던가 하는 정도의 시나리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그래서 나는 쉽게 다른 사람에게 '잘 못 지낸다'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내 대답은 그들이 기대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므로.
나는 어려서, 아니 젊어서까지 가지고 있었던 꿈을 이루지 못했고 그 결과 매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따지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를 고민해 보고 나면 내가 겪는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고 만다. 회사에서는 사람들과 갈등 정도를 넘어 거의 전 직원의 왕따로 지내고 있는데, 어쩌면 전 직원의 왕따가 된다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3초 안에 설명하라고 하면 그럴 자신은 없다. 내가 회사에 흑사병을 퍼뜨렸다던가 아니면 강력범죄자였던 것이 아닌 다음에야 3초가 아니라 30분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사정을 설명하려고 하면 이걸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 바로 이 점이다. 사람들은 남의 사정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드라마 같은 극적 반전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그래서 나는 요즘 잘 지내냐는 질문에 '잘은 못 지내는데 또 남들이 생각하기엔 그렇게까지 별일은 아닌' 정도의 대답으로 끝낸다. 그저께 만난 후배는 이 대답을 듣더니 '역시 냉소주의자'라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시간도 넉넉하고 가까운 사이였던 터라 왜 그렇게 대답하는지 긴 시간을 들여 설명했지만 아마 그 후배도 그렇게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후배에겐 또 그 후배의 삶에 많은 사정이 있었을테고, 그 사정이 내 사정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을테니.
그나마 아내가 같이 사는 사람이다 보니 나의 일상에 가장 많이 귀를 기울여 주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지독하게 외롭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일상 속에서 내가 겪는 외로움과 힘듦, 곤경, 난관 같은 것들에 '이 세상엔 그런 내 자잘한 일까지, 심지어 나는 그 일들이 자잘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에 도달하면 쓸쓸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을 잘못 산 것 같다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든다. 드라마를 보면 왕따로 나오는 사람도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오랜 인생 친구가 한두 명 정도는 있던데.
젊은 시절이 그리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군대에 있을 때, 먼저 군대를 떠나는 후배들을 보면서 정말 한 말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왜 그렇게 울었나 하면, 다시는 우리가 그렇게 일상 속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울고 웃으며 2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할 날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일상의 공유는 중요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 또한, 친구가, 아내가 나와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면 나처럼 심상치않은 일로 받아들여 줄 수 있을텐데. 그런데 오늘 어느 사기범을 변호한 변호사에게,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를 돌보았다는 의사에게, 또는 자기 회사 제품을 불법적으로 유통해서 팔고 있다는 소식에 분개한 한 회사의 팀장에게,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일상과 하등의 상관이 없는 내가 겪고 있는 일이 그렇게 큰일일 수가 없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 늘상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또 불과 서너 해 사이에 내가 달라졌다는 점도 하나 덧붙여야겠다. 서너 해 전만 해도 내가 힘들고 괴로운 일상을 남들에게 주저없이 설명하기에 하나도 망설임이 없었다. 아마 그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텐데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던 듯 싶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철 들기 전에 부렸던 어리광 같은 것에나 다름아니지 싶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망설임없이 내가 느끼는 작은 괴로움과 고민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게 누구에게나 큰일인 것처럼 마음 편히 떠들어댈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이 그립다. 그때는 누구나 다 나의 힘들고 괴로운 일상을 공유해 주고 있다고 착각했던 덕분에 행복했던 생각이 난다.
10년도 더 전에 영어학원을 다닐 때였다. 매일 수업을 시작하면 선생님은 항상 'How are you?'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개 한국인의 정답 'I'm fine thank you, and you?'를 기대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거의 매일, 아니 항상 'Not good'이라는 답으로 선생님께 다음 질문을 이끌어 내곤 했는데, 어쩌면 그 말이 정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잘은 지내는데 또 남들이 생각하기엔 그렇게 별일은 아닌' 이걸 영어로 번역한다면 바로 'Not good'이 아닐까. 불혹이 지나 하나 더 철이 들었다는 건, 이불킥 할 일은 하나 줄었을지 모르지만 삶에 대한 냉정한 깨달음으로 인해 그만큼의 행복과 기쁨을 잃은 게 아닌가 싶어서 다시 또 쓸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