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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Aug 07. 2023

안녕, 이글루스

이곳 브런치에 문을 열기 전에는 블로그를 하고 있었다. 햇수로는 거의 20년 가까이 전에 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때쯤 동아리 선후배들 사이에 이글루스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까닭에 나 또한 그곳에 둥지를 틀었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올렸던 다짐들이 기억난다. 혹시 내가 블로그를 돌보지 않더라도, 그 글은 영원히 남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스물세 살때부터 했으니 나의 20대는 온전히 이글루스와 함께한 셈이다. 30대에 접어들면서는 시들해지기도 했고.


그랬던 이글루스가 얼마전 문을 닫았다. 그동안 적어 놓았던 글만 백업을 받았는데 묘한 기분이었다. 찾지 않은지 꽤 되었지만 그래도 문을 닫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내가 찾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검색을 통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추억으로 계속 들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정말로 문을 닫다니...


브런치를 운영하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젊었기 때문에 에너지가 넘쳤다. 처음에는 하루에 두세 편의 글도 올렸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에너지가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방문객이 꾸준히 유입되었다. 이글루스에는 '이오공감'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나중에는 그것이 좀 변질되었지만, 처음에는 정말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글을 블로그 운영자들이 하루에 다섯 편씩 선택해서 메인 화면에 올려 주는 시스템이었다. '어떻게 하면 선택을 받아 저기에 내 글을 올릴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한 번 내 글이 선택을 받더니, 이후로는 한동안 거의 일주일에 한 편씩 꾸준하게 내 글이 올랐다. 주간베스트로 꼽힌 적도 여럿이다. 나보다 먼저 블로그를 시작했던 한 선배가 그걸 보고 운영진에 아는 사람이 있냐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여러 차레 반복된 덕분에 나중에는 인터뷰도 했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필명 옆에 마이크가 붙는다.)


세상 모든 시스템이 공정하고 개선된다고 해서 꼭 더 나아지지만은 않는다는 사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가 나는 바로 저 이오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블로그 사용자들이 늘면서 아마 많은 사용자들로부터 운영진들은 불만을 접수받았을 터다. 이오공감을 채택하는 근거가 뭐냐, 누가 어떤 객관적인 자료로 이오공감을 선택하는 거냐, 사용자들이 이오공감을 직접 뽑을 수는 없냐. 그래서 몇 차례의 시범적인 시도를 거쳐, 사용자들이 직접 이오공감을 뽑도록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뒤의 변화는 드러난 바와 같다. 수많은 정치 관련 글들만 이오공감에 올랐고, 그 바람에 이글루스 블로그 자체가 변질되었다. 한동안은 극도로 극우화되었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정치적인 텍스트도 가끔 올렸던 얼굴도 모르는 내게 걱정을 건네는 다른 사용자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멘탈이 흔들릴 내가 아니다.


멘탈이 흔들리진 않았지만 그렇게 이글루스와 조금씩 멀어져 갔다. 나이가 들어서 에너지가 소진된 까닭도 있고, 무엇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블로그를 할 정도의 여력이 없었다. 쓰고 싶은 글 소재는 엄청나게 많이 늘었는데 정작 꾸준히 글을 쓰지 못하니 계속 밀려서 마지막에는 모두 손을 놓게 되었다. 지금의 브런치와는 다르게 이글루스 블로그는 내 블로그를 링크해 준 사람도 정말 많았고, 꾸준히 들러 준 사람도 적지 않은 편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 많은 애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예전에 올린 글이 더 좋으니 처음에 올렸던 글들부터 다시 읽어 보시라는 글도 남겼던 기억이 난다.


단순히 블로그에 관한 기억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블로그를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도 있었고, 사용자 간담회 같은 행사에도 참석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거의 15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참 젊고 에너지가 넘쳤었는데. ㅎㅎ 인터뷰를 하면서 받은 선물도 아직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한정판인 셈이니.


텍스트는 모두 받아 두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남긴 댓글까지는 백업이 되지 않았다. 또 이글루스에는 내 글을 다른 사람이 링크를 달고 퍼나르는 제도도 있었는데 그런 흔적 또한 모두 사라졌다. 그래도 나의 젊은 시절을 수년간 함께한 곳인데 이렇게 소멸되다니 조금 서운하다. 아마 최근까지도 이글루스에 열심이었다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아쉬웠을 듯. 그러나 이미 브런치를 연지도 2년 넘게 지난 터라, 그리고 그렇게 한 이유가 이글루스에 애정이 좀 떨어졌던 탓인 까닭에 마음에 상처가 크지는 않다.


나는 무척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다. 미련과 후회로 가득 찬. 나의 청춘을 함께했던 이글루스가 문을 닫은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뒤는 그만 돌아보고 정신 차리고 오늘을 살며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은 아닌가 하는 망상(?)도 잠시 해 본다.


안녕, 이글루스. 그리고 안녕, 나의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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