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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Aug 31. 2023

여기, 아직 손 흔들어 택시를 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 년쯤 된 것 같다. 후배와의 약속을 위해 장소로 가는데, 아뿔싸! 버스가 눈앞에서 출발해 버렸다. 점심 즈음이어서 그랬을까. 다음 버스는 15분 뒤에 도착한단다. 방금 출발한 저 버스를 탔다면 5분만에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을텐데. 이미 후배가 나와 있다고 한 터라 괜히 더욱 조바심이 생겼다. 무척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 그냥 택시를 타자.


막상 마음을 먹고 나니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근데, 택시는 어떻게 잡지? 택시 호출 서비스가 대중화된지 어언 10여 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는 단 한 번도 택시 어플을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실은 택시를 타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 갑작스레 내린 비에 너도 나도 사람들이 택시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지나가는 택시들은 온통 [예약]이란 불을 켜둔 상태였다. 나는 이 대로를 타고 조금만 올라가서 내려주면 되기 때문에, [예약]이어도 날 태워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이런 말을 지나가는 택시기사분들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2022년의 어느 여름날, 서울 한복판에서 손을 흔들어 택시를 탔다.




어제 친구들과 단체 메시지방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택시 어플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꺼냈더니 다들 원시인을 본 듯한 반응이다. 그러게. 생각해 보니 그렇다. 뭐 잘 쓰지 않을 수도 있긴 한데, 돌아보면 난 머리털 나고 단 한 번도 택시 어플을 써 본 적이 없으니. 내가 무슨 노인복지관에서 스마트폰 활용교육을 받아야 할 정도의 세대가 아닌 다음에, 이렇게 단 한 번도 택시를 불러 본 적이 없다니 조금 심하다 싶기도 하다.


곰곰이 돌이켜 보면 택시를 불러 본 적이 원래부터 거의 없었지 싶다. 15년 전에는 택시 어플이 없었다. 그때는 콜택시라고 택시회사에 전화를 해서 택시를 불러 타야 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회식이라든지 등등의 사정으로 가끔 택시를 불러 타고 가야 할 때가 적지 않게 있었는데, 장교였던 까닭에 부사관이 불러 주는 택시에 같이 타던가, 아니면 장교들끼리만 탄다면 4개월만에 후임을 받았던 덕분에 나는 또 택시를 부를 일이 없었다. 첫 회사에 들어가서는 어땠더라.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택시를 가장 많이 탔던 때가 그때였다. 많이 탄 날은 하루에 너댓 번 타기도 했으니까. 그때는 그래도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이 나온 뒤이긴 했지만 아직 초기여서 택시 어플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가 강남 한복판에 있어서 그냥 손 흔들어 택시를 잡고 탔던 것 같다. 홍보팀에서 남자 막내로 일하느라 한 번에 택시를 정말 10대 가까이 잡아 본 적도 있는데, 모두 손 흔들어 잡았다. ㅎㅎ (10대가 줄 서서 기다렸다는 건 아니고, 잡는 대로 사람을 태워서 보냈다.)


혹시 그래서 아직까지 손 흔들어 택시를 잡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걸까?




첫 회사를 다닐 때는 회사에서 택시비를 지급해 주었기 때문에 부담없이 택시를 탔다. 살면서 그때처럼 원 없이 택시를 탔던 적은 없었지 싶다.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부장님이 '늦었는데 택시 타고 들어가~ 왜, 택시비 때문에 그래? 줄께~' 그날은 바쁜 일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냥 회사에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근처 중국집에서 간단히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는 날이었다. 아마 8시도 채 안 되었을 것이다. 편하게 택시 타고 가란 부장님 말씀에 나는 '아뇨. 저는 전철 타고 가겠습니다. 사람이 한 번 편해지면 다시 불편해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하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왜 특별한 기억이냐면 부장님께서 그 대답을 정말 마음에 들어하셨기 때문이다. (여기 등장하는 부장을 비롯해 그때의 동료들과는 내일 같이 저녁을 먹는다.)


그렇다. 나는 택시를 대중교통이라고 생각하면서 탄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그 회사에 다닐 적엔 회사에서 택시비를 주기도 했고, 기자들과 저녁 약속이 있거나 하면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택시를 타기도 했지만, (한 번은 과감하게 분당에서 택시를 타고 시계를 넘어 집까지 온 적도 있다. 그날 택시에 탑승한 시간은 새벽 2시였다.) 그 회사를 나온 뒤로 내 돈을 주고 택시를 탄 기억은 정말 흔치 않다. 한 번은 같이 군대 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모였다 헤어지는데, 군대 동기 형이 버스 타고 가지 말고 택시 타고 편하게 가라면서 10만 원을 쥐어 줬다. (정말 멋진 형인데..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안 준다.) 그런데 막상 나는 또 그 돈을 받고 근처 전철역까지만 태워 주시면 된다고 택시기사분께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받은 택시비는 그 형 결혼식 때 축의금에 보태어 더 넣었다.)




택시 어플을 일부러 안 쓰려고 안 쓴 것은 아니다. 그냥 생활습관 자체가 택시를 별로 타 버릇하지 않다 보니 이용할 일이 없어서 쓰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가끔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내려 갈아탈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같은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택시를 타고 가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그냥 택시탈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없지 않아 있다. (늦은 시간엔 버스 대기 시간도 20분 가까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만약 내가 택시 호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면 아마 그럴 때 나도 택시를 타게 될지 모르겠는데, 다행히 택시 어플을 쓸 줄 몰라서 그냥 20분 기다리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많은 돈을 아끼고 있다. ㅎㅎ


다만 한 가지 불안한 것은 사람에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다 택시 호출 서비스를 쓴다. 물론 택시정거장이 있어서 택시가 줄 서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 손 흔들어 택시를 잡으려다 영영 못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나도 택시 어플을 쓸 줄은 알아야 하는데.


역시 노인복지회관에 스마트폰 활용교육을 등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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