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이 작고 작은 소기업에서 오랜만에 승진자 발표가 있었다. 예상대로(?) 내 이름은 없었다. 우리가 왜 좋소기업(좋은 소기업이라는 뜻입니다.)에 다니지 말아야 하느냐면 바로 이 승진 문제도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직원 서른 명 남짓의 소기업인데 승진이라는 게 부정기적이다. 한마디로 언제 할지, 어떻게 할지 전혀 예측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나는 이 작은 소기업에서의 정치적 역학관계상,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나의 공익제보 건으로 인해 만약 승진이 있다고 해도 안 될 확률이 높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긴 해도 막상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기분이 매우 더러운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생각을 해 보자. 더 개판이고, 더 막장이고, 더 엉망진창인 사람은 승진하는데 내가 승진하지 못했을 때의 느낌을.
나는 자기계발서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건 아니다. 찾아서 읽으려고 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또 세상에서 남들이 모두 찾는 책은 모두 찾는 책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빌려서 읽어 본다. 시중에 이름이 도는 웬만한 자기계발서는 거의 모두 읽어 봤다고 해야 맞다. 자기계발서에 전하는 여러 가지 비법들이 있다. 정말 간절하게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든지,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웃고 지내야 한다든지 등등. 읽기는 하지만 이런 류의 진단들을 거의 믿지는 않는 편인데 유난히 한 문장만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일이 과연 1년 뒤에도 큰 문제일지 생각해 보세요. 1년 뒤에도 큰 문제가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고민할 가치가 있는 일일까요.' (정확한 문장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강의 맥락은 이렇습니다.)
사실 자기계발서에서 저 내용을 접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중학교 때였을 수도 있다.) 언제였든 간에 청소년기였는데 그때는 무척 인상 깊긴 했지만 저 문장을 마음에 담아 두진 못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청소년기에는 1년이 너무 긴 시간이고, 세상을 대하는 내공도 부족하니. 그런데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지던 와중에 불혹에 가까워져 가면서 점점 저 문장이 마음에 들어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가끔씩 고민거리가 생길 때면 항상 생각한다. 이게 과연 1년 뒤에도 내게 큰일일지, 아닐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보면 많은 문제가 사라진다. 운전하는데 갑자기 앞으로 다른 차가 끼어 들었다. 이게 정말 1년 뒤에도 기억이 날까. 오늘까지 해야 하는 일인데 마저 다하지 못했다. 과연 1년 뒤에도 그걸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자동차 사고가 났더거나, 1년도 넘는 기간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라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럼 그건 정말 고민할 가치가 있는 큰일인 거고.
이렇게 1년 뒤에도 큰일일지를 생각하다 보니 확실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승진자 명단이 발표되고 조금 있으면 거의 3개월이 된다. 책을 정말 신나게 읽고 있거나,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즐겁게 떠들고 있거나, 아니면 힘들게 운동을 하고 있거나 하면 괜찮은데 멍하니 있다 보면 불합리하게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사실에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다음에 언제 승진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데에 있다. 좋소는 이게 문제다. 대기업이라면 승진에서 누락되어 기분이 상하고 나쁠 수는 있지만 다음 승진 결과를 다시 한번 예측해 볼 수 있는데, 좋소는 이게 안 된다. 다음 승진은 언제 있을까. 1년? 그렇게나 짧게는 아닐 거고. 2년? 2년일 수도 있지만, 3년, 4년일 수도 있다. 알 수가 없다. 한 번은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게 1년 뒤에도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일지 아닐지. 1년 뒤를 내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그런데 아니었다. 이건 1년 뒤에도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큰 문제였다.
흠, 어떻게 해야 하나.
비로소 깨달았다. 아, 1년은 짧은 시간이구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하구나.
불현듯 이게 죽을 때에도 생각 날 정도의 큰일인가, 떠올려 봤다. 당장 1년, 2년, 아니 이 회사를 다닌다면 한 10년이 지나도 이게 나에겐 큰일일 수도 있겠단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눈을 감을 순간에도 떠올릴 정도로 큰일은 아니지 않나 싶었다. 내 생에 중요한 사람, 중요한 사건, 소중한 경험 등등 많은 일이 있는데, 물론 이게 분한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떠올릴 정도로 큰일은 아니지 않을까. 고작 내가 다니는 좋소가 나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조직도 아니기도 하고. 불혹을 지나니 1년은 짧고, 이렇게 좀 더 멀리서 원대하게 바라봐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1년은 짧습니다. 1년 뒤에도 큰일은 많아요. 그럴 때는 생각해 봅니다. 과연 이게 내가 죽을 때도 큰일일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