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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Sep 26. 2023

입석 승객에 대한 예의

그러고 보니 한때 그러던 때가 있었다. 지하철에 자리가 나던 나지 않던 아무 상관도 하지 않던 때가. 아니, 이 정도로 이야기해서는 부족하다. 그때는 자리가 나도 외면했다고 해야 옳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오래전도 아니다.




지금 회사에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살던 집에서 회사까지 딱 다섯 정거장이 필요했다. 두 정거장을 가고 갈아타고 세 정거장을 더 왔다. 게다가 그때는 나이가 서른셋밖에 안 됐을 때였다. 자리가 나도 본 척도 안 했다. 어차피 두세 정거장만 가면 일어서야 하니까. 더 예전으로 돌아가서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그랬다. 회사까지 네 정거장이었던가. 한 정거장을 가서 갈아타고 세 정거장을 더 갔다. 자리가 나는 데에 관심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었다. 하물며 겨우 스물여덟에 불과했음에야.


그러던 내가 한순간에 자리집착남으로 바뀌었다. 서른다섯. 결혼과 함께.




시간하면 칸트, 칸트하면 시간이지만, 몇 년 전 나는 칸트보다 더했다. 한두 번쯤 놓치는 경우도 있었으니 '항상'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겠지만 마찬가지로 '거의'라는 말을 쓰기엔 모자랄 정도로 거의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열차를 같은 자리에서 타고 출근했다. 그때부터였다. 자리에 집착하게 된 것이. 결혼하면서 새로 구한 신혼집은 이전에 살던 집과 같은 노선이었다. 문제는 거리였다. 예전엔 같은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살던 집이 있었는데 새로 옮긴 집은 거기에 열다섯 정거장을 더해 열일곱 정거장을 가야 했다. 종점까지 불과 네 정거장을 앞둔 곳이었다.


종점을 포함해서 내가 타는 역까지 그 네 정거장 사이에 환승역이 세 번이나 있었다. 종점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서는 도저히 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사 가기 전부터 준비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침 차량기지가 있는 역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드문드문 있었다.(전철이 늘어나면서 종점이 뒤쪽으로 밀렸단 뜻이다.) 출근시간 대에 대략 15분에 한 대 정도 있었는데 꼭 그 열차를 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떤 경사가 있어도 나는 늘 내가 살던 동네에서 8시 1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탔다. 집에서 좀 일찍 나오면 앞 열차를 보내더라도 그 열차를 탔고, 집에서 좀 늦게 나오는 날에는 우샤인 볼트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죽자 살자 뛰었다. 칸트도 울고 갈 정도의 정확성이었다. 회사에 같은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데 내가 8시 1분 차를 타지 않은 날은 1년 사이에 손에 꼽을 것이다.


3년 정도 살고는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했다. 이곳에서도 환승역까지 열일곱 정거장을 가야 하는 건 똑같았다. 오히려 시간은 전보다 더 걸렸다. 다행히(?)도 이번엔 아예 종점이었다. 이후로 전철을 연장하기 전까지는. 내가 이사했을 당시 이미 공사 중이었는데 몇 달 뒤에 연장선이 뚫렸다. 다시 칸트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원래 종점이었던 덕분에 예전에 살던 곳에서처럼 15분에 한 대 정도는 내가 사는 곳을 종점으로 출발하는 열차가 있었다. 이번엔 거의 8시 8분 열차를 탔다. 그 앞 열차는 7시 44분이었는데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 물론 8시 8분 차에 앉으려면 8시쯤엔 와서 미리 줄을 서야 했다. 그래도 그 정도는 감당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내 서서 가는 수밖에 없으니.


출근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서서 오는 일은 거의 없다. 최근에 차량기지를 종점으로 출발하는 열차가 늘어나면서 이제 칸트와 같이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진 못하지만, 어쨌든 꼭 석 대 중에 한 대의 열차를 탄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피곤하다고 아침에 조금 더 자고 서서 오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찍 일어나서 앉아 오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퇴근길이다. 어찌 보면 퇴근길은 출근길보다 더 힘들다. 처음 전철에 탔을 때부터 사람들이 가득 차 있기도 하고, 그 전에 이미 회사에서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진 뒤인 까닭이다. 잘못하면 종점까지 서서 가기 십상이다.(실은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서서도 졸게 생긴 판이니 자리에 대한 집착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라는 책이 있다. 동양 고전에 대한 이야기인데, 실은 나는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선생님께서 감옥에서 오랫동안 사람을 관찰한 덕분에 지하철에서 누가 어디에서 내릴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적어 놓으신 부분이었다.(그렇지만 한 번은 앉지 못하셨다. 그 이유는 책에서 직접...) 나도 비록 감옥은 가지 않았지만(?) 서울에서 스무 해 넘게 생활하면서 늘 전철에서 사람들 관찰하고 있는데 이게 영 정확하지 못하다.


한 번은 앞에 앉은 사람이 계속 내릴 것처럼 역이 어딘지 바깥을 살폈다. 거의 매 정거장마다 그랬다. 처음에는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곧 내리겠구나! 처음 한두 번은 왜 내리지 않나 싶었지만 곧 도착할 것 같아서 확인하고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사람은 열 몇 정거장을 가는 내내 그러더니 결국 나와 같은 역에서 내렸다. 그 사람 잘못은 아니지만, 퇴근길에서 가장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순간이다. 앞에 앉은 사람이 아예 푹 자고 있다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게 되기에 차라리 괜찮은데, 뭔가 정리하는 행동을 할 때면 앞에 선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기대를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 내리려나?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는? 그러나 대체로 많은 경우 나의 기대는 어긋난다.


출근길을 항상 앉아 오니 내가 지하철에서 앉아 있는 시간은 50%가 넘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가끔은 퇴근길에 오는 지하철을 보고 자리에 앉으려고 거꾸로 올라가서 다시 타고 내려오는 날도 없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앉아 있으면 내 앞에 선 사람이라고, 나와 같은 기대를 품지 않을까. 그 사람도 분명 앉아 가고 싶을텐데. 그런 마음이 든 다음부터는 앉아서 하는 내 행동 하나하나를 신경 쓰게 되었다.


이제 나는 정말 곧 내가 몇 정거장 안에 내릴 것 같지 않으면 바깥을 살피지 않는다.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면 지금 내가 있는 역은 방송으로 확인해도 된다. 물론 우스개로 떠도는 이야기에 나오듯 우리가 지금 정차한 역이 어디인지 알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당장 내릴 게 아닌 다음에는 이 정도는 기다려도 된다. 혹시 내가 내릴 역을 지나칠까봐 정말 꼭 알아야 할 것 같다면 그때도 난 곁눈질로 슬쩍 본다. 또 오랜 세월 같은 역에서 갈아탔기에 내가 갈아타야 할 역의 분위기 정도는 대강 눈치 채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나도 실례(?)를 한다. 보통 출퇴근길에 늘 책을 읽는 편인데 출근길엔 절반 정도, 퇴근길엔 앉고 난 뒤에 약간만 가면 졸음이 쏟아진다. 내가 책을 접을 때면 앞에 선 사람이 큰 기대를 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큰 실례인 줄 알고 있다. 그래도 쏟아지는 졸음은 어쩔 수가 없다.


가끔은 자리에서 비켜서 거의 한 정거장을 서서 가시는 분을 본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격탓일텐데 전 정거장에서 다음 정거장으로 출발하자마자 자리를 비켜 주시는 분들이다. 어차피 이제 곧 내릴텐데 한 정거장 약간 안 되는 거리를 서서 간다고 뭐 얼마나 힘들겠냐는 건데 그야말로 도리를 아는 분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항상 나도 그런 자세를 본받아야지 하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출근길엔 늘 열차가 사람들로 꽉 차서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다들 조금이라도 환승하기 편한 칸에 타 있는 관계로 한 정거장 전까지도 꽉 차 있기 때문이다.(실은 핑계다.)




한 번 정말 기가 막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앞에 앉은 사람이 내리려고 해서 '드디어 앉을 수 있겠구나!' 하고 기쁨으로 가득 찼던 와중에 내리는 문 옆으로 기대어 서 있던 녀석이 새치기를 해서 내가 앉을 자리를 빼앗는 것 아닌가. 내리시는 분에게 비켜드리기도 해야 했으므로 나는 적극적으로 막지 못했고, 그놈이 앉으려고 들어올 때 다리로 막아 보았지만 심지어 그 다리를 뛰어 넘어 앉았다. 그 뒤로는 헤드폰을 쓰고 계속 휴대전화만 보면서 나의 시선을 외면했던 그 도덕도 없던 놈.(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얼굴도 닮았더라는)


우리가 서서 가건 앉아 가건 전철에 내야 하는 요금은 똑같다. 실제로 출퇴근길에는 서서 가는 사람이 앉아 가는 사람보다 훨씬 많기도 할 것이고. 모두가 지치고 힘들 때, 앉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자리를 비켜 주는 것까지는 힘들겠지만, 입석 승객이 너무 큰 기대에 부풀지 않도록, 그래서 나중에 더 크게 실망하지 않도록 아주 약간의 도리를 지킨다면 어떨까 싶다.


오늘 퇴근길은 과연 앉아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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