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싫다
즐거운 퇴근길이었다. 거의 다 읽어 가는 책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40분 가까이 남아 있었고, 그 사이에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 터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강렬하게 느껴지는 진동에 전화기를 꺼냈다. 오랜만에 걸려 온 친구의 전화였다. 생각해 보니 몇 달 전 친구에게 전화가 왔을 때는 받지 못했었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땐 친구가 받지 못했고, 간단히 카카오톡으로 안부만 전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최근에 내가 결혼식 사회를 본 게 이 친구 결혼식이었다. 나름대로 이 친구의 결혼생활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단 이야기다.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아이가 아파서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저런... 아내와 막 교대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친구는 폭풍처럼 요즘 느끼고 있는 생활에서의 불만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에서 느끼는 불만, 가정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 육아의 힘듦, 그런 와중에 둘째가 생긴 것에서 앞으로 찾아오게 될 변화 등등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중간에 내가 전화를 끊지 않은 게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병원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 내내 전화를 이어 갈 작정인 것 같았다. 중간에 단 한 번 내 안부를 묻기도 했지만, 자신의 힘든 감정을 토로하려고 전화를 한 마당에 내 안부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전화를 받고 있는 내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전화를 받았을까... 몇 달 전에 전화를 받지 못했던 건 신의 한 수였네.'
매정하게 느껴질까 전화를 끊지는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반응도 하지 않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40분 동안을 그렇게 시달려야 했다.
친구는 모두가 부러워 할 만한 좋은 회사에 다닌다. 네카라쿠배 중 한 곳이다. 내 기준으로 따지면 원래는 더 좋은 회사에 다녔다.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직한 것이다. 1년에 1억도 훨씬 넘는 돈을 받으면서 일주일에 재택근무도 2회 이상할 수 있을텐데, 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작
은 좋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내게 회사 생활을 불평할 게 되나.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런 심정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나한테 넘기지'라는 말이 목까지 튀어 올랐지만 아마 그랬다면 '너도 열심히 준비해서 옮겨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럼 너도 너가 좋아서 옮긴 회사인데 애먼 사람 붙잡고 불평을 하지 말던가.
나는 아이를 키우지 않기 때문에 육아에서 오는 힘듦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친구가 자신의 부인은 자기가 운전하는 동안엔 차에서 쉬지 않느냐고 이야기했을 땐 말 다했다.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가, 그게 아니더라도 실제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건 여성의 역할이기 때문에(이건 어떤 평등설을 주장해도 남자가 할 수 없다.) 나는 여성이 더 힘들다고 보는 편인데, 제수씨께서는 친구가 운전하는 동안엔 쉴 수 있다니 뭐.
그래도 이 정도까진 받아줄 수 있었다. 거기서 더 나가진 말았어야 했는데, 너는 아이가 없어서 여유 있게 시간 보내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느니 어쩌니. 내가 적극 권하긴 했지만 누가 보면 내가 강제해서 아이를 낳은 줄 알겠다. 친구 말이 맞다. 나는 아이가 없는 덕분에 좀 더 여유롭다. 그러나 대신 다른 친구들이 느끼는 육아의 기쁨과 환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강제로 선택당했다고 이야기하는 쪽이지만.
여건이 나보다 좋다고는 하지만 당연히 친구의 삶도 힘들 것이다. 나는 그 친구의 결혼식 사회까지 보았기 때문에 남들은 모를 수도 있는 몇 가지 사정도 알고는 있다. 사람이 자신이 선택했다고 해서 그 모든 힘듦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아니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나의 선택으로 빚어진 일임에도 힘들다고 투정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던가. 그러나 나는 그래도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도 당연히 힘들고 고민이 많겠지만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길거리의 노숙자에게 '나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물론 그 친구와 나의 격차가 이 정도까지라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지난 금요일에는 강남에 나갔다가 병원을 하고 있는 선배에게 들렀다. 처음부터 예정된 방문은 아니었고 그냥 지나는 길에 안부나 전하고 가려던 것이었는데 선배가 여기까지 왔는데 저녁이나 먹고 가라며 붙잡았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내 잘못이다. 나는 정말 안부나 전하고 가려던 것이었지만 받아들이는 선배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먼 데서 온 후배를 빈손으로 보내기가 불편했을 수도 있고. 미처 나도 그런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선배의 사정을 내가 다 짐작이야 할 수 있겠냐만서도 그래도 그 병원은 강남대로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네카라쿠배에 다니는 친구의 사정보다도 못한 내게 강남의 개업의마저 자신의 힘든 사정을 하나둘 토로하기 시작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래?' 당연히 사장님은 사장님의 고민이 있고,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다. 평범한 월급쟁이인 나보다 더 고민이 많을 거다. 딸린 식구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무리 그렇다 해도 좋소기업의 평범한 월급쟁이보다도 여건이 더 힘들진 않을 것 같은데. 심지어 선배의 남편은 서초에 위치한 로펌의 변호사이다. 부부가 1년만 일해도 내 생애소득만큼 벌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걸 다 경제적인 것으로 환산해서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선배가 차라리 다른 인간적인 고민이나 건강, 세상사에 대한 생각 등을 말했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고민을 듣고 있자니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민은 내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데에 미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마침 고민이 많았던 터에 내가 방문한 까닭에 그냥 나에게 토로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지.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토로의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누구나 사는 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가정 생활에서부터 직장 생활, 인간 관계, 경제적인 여건, 세상사에 대한 마음 등등 모든 것이 다 내 맘대로 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단 하나라도 어긋나는 경우 사람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문장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르다'이다. 하나도 결여되지 않았을 때 우리가 충만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면, 결여가 없는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겠지만, 결여된 대상이 다를 것이기에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나라도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게 가능하기는 할런지.
그렇게 만만찮은 인생의 고민과 어려움을 나눌 사람이 있어 어쩌면 우리 인생은 살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내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가 다른 사람의 중대질환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 앞에서 나 손가락에 가시 박혔다고 투덜대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반갑게 친구의 전화를 받았고, 반가운 마음에 선배의 병원에 방문했지만 도리어 나는 '사람이 싫어짐'을 느꼈다. 대충 내 삶의 여건을 모르는 사람들도 아닐텐데 내가 왜 이런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너무 훌륭한 인격자이기 때문이었을까.
젊었을 때는 세상에 넘치는 게 친구라고 스스로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던 시절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불혹을 넘기고 보니 아니었다. 모든 건 껍데기뿐이었다. 정말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그런 친구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친구의 전화와 선배의 병원 방문을 통해 재차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