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누구보다도 앞날에 대한 계획과 미래의 꿈이 명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면 아주 어릴 적부터였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고작 열 몇 살 짜리가 뭘 안다고 그렇게 자신만만했었나 싶다. 덕분에 난 대학 원서도 수월하게 썼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게 정말 수월한 선택이 맞았나 싶기는 하다. 나는 나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다.
스물여덟에 첫 회사에 들어갔다. 너무나도 수월한 입사였다. 어쩌면 첫 취직이 너무 쉬웠던 까닭에 그 이후로 자신만만함이 지나쳤던 것인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회사를 일 년 조금 넘게 다니고 대학원으로 돌아갔다. 대학원으로 돌아가면서 못내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군대까지 포함해서 5년을 떨어져 있었던 곳이었다. 예전 같을 수가 없었고 내가 받는 느낌 또한 그러했다. 그때 차근히 따져 보았어야 했는데. 어린 시절부터의 계획이라고 위풍당당하게(?) 사표를 냈던 내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솔직하게 말하면 위풍당당하지 않았다. 첫 회사에, 사람들에 정도 많이 들었고 쉽게 사표를 내지 못했었는데, 고작(?) 이 정도 작은 열매도 손에 쥐고 포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별로인 사람이 될까 싶었다. 그런 오기에 더 마음을 다 잡고 회사를 나왔었다.
그랬다면 대학원이라도 잘 다녔어야 했는데. 돌아가면서 느꼈던 첫인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와 세상의 구정물이 5년이나 든 채로 돌아간 대학원은 같을 수가 없었다. 우선, 경제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이 무척 컸다. 대학원에 복학한 게 서른이었는데 나이 서른에 지도교수에게 내 생사여탈권을 다 맡긴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전공이 이공계였다면 그나마 나았으려나. 그러나 인문학은 논리의 학문이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이기기 쉽지 않은. 결국 내 생사여탈권은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맡겨졌던 셈이다. 그래도 회사까지 그만두고 돌아온 곳이었는데. 이왕 시작한 거라면 독하게 마음 먹고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결국 나는 2년만에 다시 대학원도 그만두었다. 그 이후의 삶은 드러난 바와 같다. 시간은 많지만 돈도 없고 경제적 여유도 없고 사회적 지위도 없다. 그렇다고 첫 회사에 다닐 때처럼 직장동료들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저 많은 시간을 꾸역꾸역 때우면서 살고 있다.
나는 2년만에 달랑 석사학위 하나 들고 나왔지만 그래도 그 냉혹한 현실 속에서 버티고 버텼던 많은 친구들은 이제 나도 예전에 그토록 꿈꾸어 마지 않았던 대학교수가 되었다. 물론 하나둘 세어 본다면 되지 않은 사람이 더 많겠지. 그런데 되지 못한 사람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잘 된 사람의 소식은 늘 들리고, 늘 보이다 보니 결국 항상 잘 된 사람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모습이 내가 꿈 꾸던 모습이었는데' 물론 그들도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같이 대학원 생활을 해 보았기에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을지 상상이 된다. 그러나 현재에 남은 것은 영광뿐.
첫 회사 동료들도 자주 만난다. 누구는 꼬여서 아직까지 대리를 벗어나지 못한 친구도 없지 않아 있지만, 과장을 단 친구가 대부분이고 일찍 차장이 된 친구도 있다. 내가 계속 그 회사에 다녔다면 어땠을까. 처음 입사했을 때는 자신만만했지만 마흔이 넘어 생각해 보면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발탁되어 일찍 승진하는 두세 명 안에 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평균 정도였겠지. 그래도 그 회사는 대기업이다. 부침은 있었지만 친구들은 적지 않은 월급에 또 적지 않은 상여를 받아가며 나름대로의 가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 지금 나는 그 회사의 신입사원이 받을 정도의 월급을 겨우 받고 있다. 그나마 내가 신입사원 때 받았던 것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게 위안이려나.
링컨이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던데, 그 말은 잘 모르겠지만 나이 마흔이 되고 보니 자기 인생은 책임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40년을 살고 나니 지난 40년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인생이 정말 많이 달라진다. 어제도 두 명의 대학교수와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20, 30대엔 나름대로 힘든 생활을 했겠지만 40대가 되어 그렇게 열매를 거두고 있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또 어떤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친구는 적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의 가계를 알차게 꾸려 나가고 있다. 회사원이 받는 월급이라는 게 로또 상금만큼은 안 되겠지만 몇 년, 10년 이상 누적되면 상당히 큰 금액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연봉 차이는 근속 연수를 더할수록 더욱 벌어지고 있기도 하고.
어느 쪽이 되었든 사람이 꾸준해야 했다. 10년 이상 그렇게 꾸준하게 했다면 대성공은 하지 못했을지라도 뭐라도 되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느 쪽도 되지 못했다. 얌전히 회사를 계속 다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독하게 마음 먹고 돌아갔던 대학원 생활을 정말 독하게 이어 가지도 못했다. 한심하게 말하면 이쪽에서 조금 간을 보고, 저쪽에서 조금 간을 보다 이도저도 아닌 생활을 이어 나가게 된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다. 지난 40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제 인생이 길어져 앞으로도 40년 가까운 삶이 더 남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40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렇게 인생이 길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어려서 삶의 계획과 꿈과 진로를 정할 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경솔했다. 고작 열 몇 살 짜리가 무얼 알았다고. 실은 지금의 나는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남은 4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잘 모르고 있다.
한 번 우물쭈물해 버리니, 그리고 여기에서도 발을 담그지 못하고 다른 데서도 발을 담그지 못하니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향을 잡는 것도 쉽지가 않다. 우물쭈물하면서 그렇게 살게 되는 게 내 인생이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매우 우울해져 더욱 어쩔 줄을 모르겠다. 차라리 버나드 쇼라도 없었다면, 이런 내 인생을 돌아보며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명언이라도 남겼을텐데 이젠 그조차도 어렵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