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래서 더 가치 있다.
26년 새해가 밝았고 나는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살다 보니 참 많은 변수와 선택의 순간들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지난 1년만 떠올려 봐도 서울에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 본가에서 지내다가 다시 자취를 하고, 강아지에 관심을 가지게 될 거라는 것도, 유기견을 입양하게 될 줄도, 훈련사 자격증을 딸 줄도, 좁은 원룸에서 벗어나 먼 타지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와서 집 근처 동물병원에서 일하게 될 줄도 몰랐다.
훈련사 자격증을 땄으니 훈련소에 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자리를 알아보며 이사를 준비했다.
이사 전 청주에 있는 한 애견 훈련소에서 연락이 왔고 전화로 면접을 진행했다. 훈련을 포함하여 애견 관련 창업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준다는 조건으로 월급이 110만 원이라고 했다. 이사 온 집의 월세는 60만 원, 그 훈련소는 집에서 1시간 반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 지역이라 기름값도 장난 아닐 테고 부모님 차를 계속 몰고 다닐 수 없어서 장기 렌터카를 알아봐야 한다. 월세와 관리비 만으로 이미 빠듯하다. 하지만 급여는 개인 능력에 따라 인상도 될 수 있다고 하고 부모님이 생활비는 도와줄 수 있다고 걱정 말라며 잘 배워서 몸값을 올릴 생각으로 합격 통보를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훈련소에서는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한 기간을 넘어서까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다른 곳에 취업이 되길 바라면서 모조리 다 이력서를 넣었고, 훈련소를 비롯하여 동물병원, 유기견 구조 센터 등 다양하게 지원했다. 반려동물 동반출근이 가능하고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조건이면 망설임 없이 자기소개서를 새로 작성해서 이력서를 뿌렸다. 그러다 별생각 없이 당근 동네생활 탭을 보다가 애견 훈련소 채용공고가 보여 지원했다. 취업이 늦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우울함을 떨쳐내려 바니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러다 당근으로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도 볼 겸 하루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다는 제안을 했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였다. 바니를 데리고 가기로 했고, 자신 있게 약속한 날에 면접을 보러 갔다.
구조된 유기견들을 훈련시켜서 해외로 입양을 보내는 곳이라고 했다. 환경은 열악했다. 유기견만 몇백 마리가 있었고 너무 많다 보니 청결은 포기해야 하는 곳이었다. 내가 그날에 했던 일은 오전에 견사에 있는 아이들 밥과 물을 챙겨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것이었다. 대형견들이라 변의 무게도 무거웠고 변을 치우는 도구 자체도 무거워서 근력을 많이 필요로 했다. 허리를 계속 굽힌 채로 일해야 해서 허리도 아팠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이 일을 계속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니를 데리고 가보니 바니가 너무 불안해하는 게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집에 혼자 두는 것보다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곳에 일할 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면접은 긍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며칠이 지나 결국 다른 사람이 일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깐 좌절에 빠져있다가 다시 사람인에 접속했다. 동물병원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 날짜를 잡았다.
한 곳은 1시간 반 거리, 다른 한 곳은 50분 거리였다. 바니만 데리고 갈 수 있으면 어떤 일이든 배울 수 있고 견뎌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1시간 반 거리에 면접을 보러 갔지만 인근거주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바로 면접이 중단되었다. 그래도 원장님 인상도 너무 좋았고, 운전한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던 면접이었다. 어차피 운전하면서 가는 도중에 너무 졸려서 '아 1시간 반 출근은 무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된 게 다행이었다.
원장님께서 '지금 거주하시는 지역에도 동물병원은 많아요. 가까운 곳으로 잘 찾아보세요.'라고 하셨고, 단순하게 구글 검색창에 '00(내가 사는 지역) 동물병원 구인'이라고 검색했다. 잡코리아에 2시간 전에 올라온 채용공고가 있었다. 걸어서 20분 거리. 내가 바니를 데리고 여기서 처음 방문했다가 수술시간이라 진료를 못 봤던 그 병원이었다.
빛의 속도로 지원했고 몇 시간 뒤 면접 제안이 왔다. 면접날은 25년 크리스마스였다. 50분 거리의 동물병원 면접 하루 전날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면접을 보자마자 채용 확정이 되었고, 이제 모든 게 해결됐다는 안도감과 새 직장에 대한 들뜬 마음으로 다음날에 약속된 다른 동물병원의 면접을 취소했다. 이력서를 넣었던 22곳 중 4곳에서 면접을 보고, 그중 내 기준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곳에 취직이 되었다.
그런데 잠깐, 왜 면접을 보고 나서야 생각이 났을까. 바니를 데리고 출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것을. 반려견 동반 출근은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만약 데리고 와야 한다면 채용을 취소하겠다는 말에 잠시 당황했다. 바니는 실외배변만 고집하기 때문에 보호소에서도 며칠에 한 번 나가는 그 순간을 위해 꿋꿋하게 며칠이든 참았던 아이다. 방광염에 걸리게 할 순 없다. 그렇다고 낯선 공간에서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건 불안하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잃을 수는 없다. 초인적인 두뇌 회전으로 신속하게 대안을 떠올렸다.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집에 와서 짧은 산책이라도 시키고 다시 복귀하는 조건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내가 일하게 된 병원에는 상주하는 고양이들이 10마리가 넘고 입원한 아이들도 많다. 그리고 병원 냄새를 맡으며 케이지 안에서 하루 종일 스트레스받으며 바쁜 나를 기다리는 것보다, 유치원 같은 낯선 곳에 맡기는 곳보다, 조금 심심하더라도 편안하게 집에 있으면서 점심시간에 내가 집에 가서 잠깐이라도 챙겨주고 오는 게 바니입장에서도 더 나을 것 같았다. 어떤 곳에 가든 나만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생각해 보니 공간에 따라 더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9시까지 출근하라면 나는 어떤 곳이든 최소 20분 전에 도착한다.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메모장과 펜을 주머니에 꽂았다. 첫 며칠은 그냥 옆에서 구경하면서 병원 시스템을 이해하라고 하셨다. 느린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대기실과 달리 백스테이지인 처치실은 전쟁터였다. 수의테크니션은 신입인 나를 포함하여 3명이고 6년 차 베테랑 선생님과 이제 3개월이 된 다른 선생님 한 분. 그리고 원장님은 한 분이다.
잠시도 멍 때릴 틈 없이 베테랑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출근하자마자 하는 업무를 배우고 상주하는 고양이들과 장기 입원하는 아이들 이름을 외우는 게 먼저였다. 진료도 계속 밀리고 베테랑 한 명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하고 있는 상황에 질문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그래도 궁금한 것들은 질문하고 주워듣는 것까지 메모장에 적었다.
이제 잘 적응하는 일만 남았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취업했고 내가 원하는 분야니까 뭐가 힘들든 다 견뎌내고 극복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사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일보다 사람이다. 묘하게 투명인간인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라서 누가 텃세를 부려도 그게 텃세인걸 잘 모른다. 텃세 부리는 사람이 오히려 나의 해맑은 반응에 당황할 때가 많다. 그런 내가 투명인간이라고 느낄 정도면 그건 정말 텃세가 맞는 거겠지. 직접적으로 따돌리는 것도 아니지만 한 공간에서 괜히 물에 떠있는 기름 한 방울처럼 느껴지는 그 기분.
한 두 번 그런 기분 느껴본 것도 아니고, 고작 그런 걸로 기분 상할 필요 없다. 그 사람들도 나도 아직 초면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도 과거에 누군가에게 그런 기분을 의도치 않게 들게 한 적이 있을 수도 있다. 면접에서 원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달 일하고 때려치운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제 고작 이틀 일해본 나도 그분들 입장에서는 어쩌면 내가 그 부류일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걸까, 한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면 나도 투명인간이 아닌 '동료'가 되는 걸까. 내 할 일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럴 수 없는 곳들이 있다. 나는 그저 내가 어떤 일을 하든 잘 스며들 수 있고 쓸모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나만 바라보고 나만 기다리고 있는 한 생명을 위해 언젠가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주머니가 여유로운 날이 반드시 오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실외배변을 하는 바니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산책을 다니고 24시간 외롭지 않게 곁에 있을 수 있게 되기까지 고정 수입이 필요하고, 지금껏 힘들었던 날들이 다 어떤 목적이든 피와 살이 되었기에 내가 투명인간처럼 느껴지는 신입 나부랭이인 이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낼 것이다. 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뭐 하나 헛된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