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파양과 학대 끝에 나에게로 온 아이
여느 때와 같이 퇴근 후 저녁 일과를 마치고 자기 전에 유튜브를 보던 중, 당근 앱에 들어가 동물구조 채팅방의 밀린 대화들을 읽던 중에 눈에 밟히는 아이가 있었다. 눈물과 눈곱이 코 옆 팔자 라인을 따라 길게 눌어붙어있고, 불안한 표정의 사진 한 장. 그리고 앞뒤가 안 맞지만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글을 올린 분은 Y다. 채팅방 내용을 맞춤법 교정 없이 그대로 옮기자면
(Y) 이아이 누가임보랑 입양가능하신 분 계신가요?
7_8개월됫데요 여아
아는 사람집에 왔더니
아이가 파양을 세 번 했었는데 아는 분들이 데리고 왔어요 근데
구박해서 제가 여기 올리는 거예요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어요
똥오줌을 못 가린데요
왜 이럴까요
저도 지금 막 와서 보는데 아ㅜ
어디민원넣을때있을까요?
이뻐하지도않는 사람한테 왜아이를 데려논건지
행*동에혹시 파양된아이들이잇나요?업체이런거요?지금 행구동에 파양된아이들잇늗곳어 데려왓다하던데요
아시는분계신가요?
(다른사람1) 업체있어요ㅜ컴투펫...
(Y)길카페쪽에서 쭉올라가면 잇다고하네요 왼쪽에. 맞나요?
(다른사람1) 그것까진 ㅜㅜ
(Y) 다시가져다주면 백만언줘야하고한다는데요?
지금상황이 아이데리고온분들은못키워서 제가아는분집에 키우라고 데리고오고 또 지금내가 아는분은 일주일전부터 데리고가라햇고
똥오줌못가린다고
서로지금 데리고가라이러네요 상황이
(다른사람2) 왜 돈을주라나요? 이해가안되네요
(Y) 지금 그러네요 파양된곳서 돈주고데리고왔다고 다시가져다주면 돈을주야된다네요
(다른사람2) 아궁 집에 냥이두마리있어서 멍이는 못데려오는데ㅠ
[얼마 전 구조된 고양이에 대한 내용 중략]
(나) 태어났을 때 환경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모견의 건강한 케어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환경이 계속 바뀌면서 안정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기회조차 없다 보니 불안함과 스트레스가 쌓여 배변을 가리지 못하는 게 당연해요... 그래도 보호자를 잘 만나면 문제는 충분히 개선될 수 있죠. 세 번이나 파양 된 건 사람의 잘못인데 상처는 아무 잘못 없고 말도 못 하는 동물이 감당해야 한다는 게 참 잔인해요. 저 아이는 임시보호보다는 평생가족을 만나야 할 텐데...
-다음날-
(Y) 우리지금아기 임보하실분 없나요?
말티푸 8갤정도됫어요
짓지는 않아요
여아에요
사료하고패드 다 해준더고하네여
애가순해요
얌전하구요
지금저나해보니 5~60줘야한데요
다시파양이라서
에휴
(다른사람3) 아이 중성화는 되어있나요?
(Y) 중성화안되잇어요
중성화해서 그럼입양할게요
아이가너무이뿌요ㅜㅜ
구해주고십어요ㅜㅜ
도와주세요 제발
이틀째제가보고있어요
안정댈때카진 제가 1년 사료패드간식해드릴케요 아기만행복하다면요
지원은 계속해드려요
도와주세요제발
여기서자꾸 구박받아요ㅜㅜ
어제오늘제가.왓어요 근데자꾸구박합니다
강아지에.기본이없어요
아침저녁으로 제가다니는데 ㅠㅠ
도와줘요ㅜㅜ
이름은 행복이에요 너무순해요착하고
이번달지나머 보호소보낸데여ㅠ
근데구조연대인데 왜이런가여?
도와주는이가업ㅇ네요ㅠ
도와줘요ㅛ
ㅠ
있는 그대로의 대화 내용이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요점만 파악하자면, 8개월 된 말티푸/중성화 안된 암컷/이름은 행복이/세 번 파양 당함/임시보호라도 좋으니 제발 구해달라. 바니 한 마리를 키우는 것만으로 이미 바쁘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한 마리 이상으로 키우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행복이가 마음에 걸려 고민 끝에 입양을 결심하고 채팅방에 입양 의사를 밝히기 위한 글을 올렸다.
(나) 정말 아무도 입양하실 분이 없다면 제가 고민해 볼게요. 7살 진도믹스(중성화 O/암컷) 한 마리 키우고 있는 상황이에요. 한 마리를 더 데리고 오는 게 절대 가볍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서 어제부터 계속 망설이고 있어요. 임보가 아니라 입양이 절실한 아이인 것 같아서요. 똥오줌을 못 가리든 똥을 먹든 상관없어요. 혹시 행복이를 한 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 신분 확인 절차도 거치고, 저희 강아지랑 같이 있을 때 서로 괜찮은지도 봐야 할 것 같아서요. Y님 제 글 읽어보시고 답변 부탁드려요.
(Y) 네읽어보께요
네 1년동안 패드사료책임지고 지원하겠습니다. 보살펴주세요 제발ㅠ
제가지금 2틀데이고잇었는데 순해요많이 그리고 배변이 아예안되지는않네요 패드에 응가하고 쉬는 거실에한번햇어요.
짓지를않아요 아이가
으르렁은 몇번들었네요
울강지랑놀때 으르렁
럭***님(나) 글보시구 번호남겨주세요
여기서 번호그러시면 당근아디로하나요?
1:1 채팅으로 넘어가서 대화를 이어갔다.
(Y) "낮시간에는 중성화가 안된 수컷 반려견이 집에 있어서 낮에는 지인 집에 맡기고 저녁에만 제가 집으로 데려와 돌보고 있어요. 파양당했던 이유는 똥오줌을 못가려서라네요. 제가 3일 데리고 있어보니 패드에도 싸긴하는데 집안 바닥 곳곳에 싸긴해요. 그걸로 파양했던 사람이 화장실에 가둬놓고 때렸대요. 제 지인한테 맡기는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 그 분 한테 맡기는건데 애 얼굴에 담배연기를 내뿜고 가만히 있는 애한테 소리를 질러요. 강아지에 대해 기본적인 걸 알려줘도 안듣고 자기 맘대로 하는데, 다른 지인들은 다 안된다고 해서 낮에 제대로 돌봐줄 수도 없고...불안해서 당근에 글 올렸어요."
둘째를 입양하기에 앞서 많은 걱정들이 밀려왔다. 정의감에 불타서 감당하지 못할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두 마리가 성격이 너무 달라서 둘 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쩌지, 내가 어떻게 해야 평온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검색을 해보며 둘째 입양을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써 내려갔다. 이름도 더 의미 있는 걸로 바꾸고 싶어 고민하다가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의 '도담이'로 결정했다.
이틀 후 날짜로 Y와 행복이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지속적인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날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 하루 전날 Y 행복이가 웃고 있는 듯한 사진 한 장을 보내며 부재중 전화가 2건 떠있었다.
나: "안녕하세요, 부재중이 떠있어서 다시 전화드렸어요~무슨 일이신가요?"
Y: "아~ 행복이가... 이뻐가지구요"
나: "네?"
Y: "행복이가 이뻐서요. 애가 너무 순하고 착해요. 3일 있어보니까 애가 앉으라고 하면 돌아요. 전에 그 사람이(파양한 사람) 도는걸 시켰나봐요. '앉아'는 아직 안해요. 근데 손도 주구요, 애가 너무 착하고 이뻐요. 제가 하고싶은 말은, 정 못키우겠다 싶으면 다른데 보내지 말고 저한테 연락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제 수컷 강아지가 중성화가 안돼있어서 행복이가 임신할까봐 제 남자친구가 얘 못키우겠다고 안되겠다고 해서 너무 아쉽지만 입양보내는건데...(행복이가 예쁘다는 말과 전 보호자에게서 감금 및 학대당한 이야기, 배변못하게 하려고 밥도 물도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 반복) 아무튼...예뻐해주실거 알지만 혹시라도요. 부탁드릴게요..."
나: "그럴일은 없을거에요. 걱정안하셔도 돼요. 그럼 내일 뵐게요~!"
Y: "아니면 지금 오실래요?"
그렇게 약속을 앞당겨 다시 옷을 입고 M과 함께 행복이를 만나러 갔다. 상황을 정리해 보니 행복이가 수차례 파양되는 과정에서 두 번째로 입양했던 한 부부는 화장실에 행복이를 가두고 때리며 밥은 물론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달간 데리고 있었던 사람은 Y의 지인이다. Y의 근무시간은 모르지만 나와 연락이 닿은 날을 기준으로 약 3일간 도담이를 보러 지인의 집에 갔더니 담배 찌든 내가 진동하는 집에서 도담이 얼굴에 담배연기를 내뿜고, 가만히 있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똥오줌을 많이 싼다며 물도 주지 않고, 사람 밥숟가락으로 한 숟가락도 안 되는 양의 사료를 밥이라고 주고 있었다고 한다. 직접 만나서 더 많은 얘기들을 들어보니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더 확고해졌다.
도돌이표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며 횡설수설하는 Y의 말을 남자친구 M이 끊으며 '그래서 지금 울타리를 받을 수 있나요?', '중성화를 언제 시킨다는 거예요?' 등 확실한 대답으로 정보를 얻고자 물었다. Y는 '중성화는 일단 보고 내일 병원 가서 날잡을거라데요. 제가 말했어요. 중성화해서 보내라고. 1년 동안 사료랑 간식이랑 배변패드 지원해 주라고. 말했더니 해준다데요. 애가 너무 순하고 이뻐요... 진짜... 성대수술 했다는 말도 들었는데 거짓말인 거 같아요 쉰소리가 하나도 안나거든요. 혹시 키우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꼭 저한테 보내주세요... 애가 똥은 패드에 보는데 소변만 다른 바닥에 싸요. 이해해 주세요.'
M이 말을 끊었다.
"말씀하시는 문제들은 저희가 다 감당하고 알아서 잘 키울 테니까 아이는 지금 데려갈게요. 배변패드랑 사료 먹이던 거 있으면 일단 지금 주세요."
행복이가 쓰던 울타리와 장난감, 밥그릇 등 전부 지인 집에 있다고 했다. Y가 가진 배변패드 몇 장과 행복이에게 먹이던 사료 한 줌을 받았다. 이제부터 행복이 이름은 도담이라고 말해주었다.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안아보고 싶다는 Y에게 도담이를 안겨주었다. Y는 안도와 걱정이 섞인 눈물을 흘리며 도담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가, 행복하게 살아. 학대당하지 말고...
내가 못 키워서 미안해...
작별인사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낯선 개체를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될 바니가 걱정되었다. 계획형 인간인 나에게 대책을 세울 시간도 없이 찾아온 변수는 언제나 스트레스다. 도담이를 하루빨리 데려와 안정된 환경을 주는건 좋지만, 적어도 예정된 날에 데리고 왔다면 격리할 자리를 만들 시간이라도 있었을 거다. 원래 키우던 한 마리와 새로 데려온 다른 한 마리를 아무렇지 않게 첫날부터 합사 시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동물에게 갑작스러운 공간 공유는 엄청난 충격과 스트레스를 가져다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격리를 시킬 방법이 없었다. 바니에게 높이가 맞지 않아 당근에 올렸던 밥그릇은 다행히 도담이의 높이에 잘 맞았다. 그런데 울타리, 하우스, 케이지, 방석 중 안정감을 줄 만한 공간이 없었다. 바니를 계속 하우스에 있게 하는 것도 왠지 잘못된 방법일 것 같았다. 도담이는 그저 새로운 공간에서 정신없이 냄새를 맡으며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바니는 경계심을 한가득 품고 도담이가 가까이 올 때마다 으르렁거렸다. 나의 선택으로 첫 째 바니에게 혼란을 주어 미안해지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일단 바니를 잠깐 하우스에 넣어 두고 문을 잠근 뒤 도담이에게 냄새 맡을 시간을 주었다. 집안을 둘러보다가 서재로 쓰는 방에 책상을 벽 쪽으로 밀어 공간을 넓힌 뒤 내가 쓰던 방석 두 개를 붙여 도담이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울타리가 없다 보니 돌아서면 바닥 곳곳에 도담이의 대소변이 보였다.
자정을 10분 남겨두고 다음날 바로 배송되도록 울타리부터 급하게 주문했다. 아침이 밝아오고 도담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두 마리를 격리시키기 위해 도담이가 있는 서재의 방 문을 닫고 출근했다. 점심시간에 잠깐 집에 와서 도담이의 배변패드를 갈아주고 바니 산책을 시키고 밥 먹을 시간 따위 없이 다시 직장으로 향했다.
도담이를 입양한 지 6일째가 되는 오늘, 진한 팔자주름 같던 눈물자국은 옅어지고 '앉아'에 앉는다. 퍼피 전용 사료를 정량 급여하고, 잘 먹어서 배도 조금 통통해졌다. 하루 종일 장난감 삼매경이지만 잠도 잘잔다. 바니의 경계심도 줄어들어서 이제 도담이의 울타리 근처에 엎드리거나 주변 냄새를 맡는다.
강아지 두 마리의 보호자로서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평한 사랑과 관심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M과 같은 생각으로 바니와 도담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이제 더 이상 입양은 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유기견들이 넘치지만 현실적으로 모두 구해줄 수도 없으니. 혼자만의 비현실적인 바람이지만 강아지 경매장, 번식장, 펫샵들이 언젠가 다 없어지고, 넘쳐나는 유기견들이 모두 구조되어 청결한 시설에서 입양 전까지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기초 훈련을 받고,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 까다로운 기준의 보호자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반려동물 양육이 가능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