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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워이 Jun 13. 2024

흔치 않은 기회

댈러스 매버릭스, 그리고 제이슨 키드

23-24 NBA 파이널이 시작하고 당장 내일 3차전인데 이제야 첫 글을 올리고 있다. 게으름인지 무관심인지 모르겠지만 직업적인 압박이나 남다른 소명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면서도 매번 무언가 써야 하는 압박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볼만한 글을 써내고 마는 칼럼니스트들이 새삼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번 파이널이 시작되기 전 많은 이들의 관심은 어빙과 보스턴의 재회, 루카와 테이텀의 에이스 대결에 집중되어 있었고 3차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보스턴의 베스트 플레이어는 브라운이 아닌가 하는 논쟁, 승패를 떠난 루카의 퍼포먼스는 또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조던을 소환하고 있다. 그 와중에 부상에서 돌아왔던 포르징기스는 3차전을 앞두고 다시 드러누우며 명불허전 유리몸을 시전하고 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옛날 사람 축에 속하게 되어 그런지 선수들 보다는 댈러스의 감독 제이슨 키드에게 관심이 간다.

마크 큐반이 돈을 쏟아붓고 노비츠키가 팀을 접수하면서부터 서부 강팀의 이미지를 오랜 기간 유지해 오고 있는 댈러스지만 그 이전 까지는 리그 최하위 이미지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던 팀이었다. 1995년 제이슨 키드가 전체 2순위로 댈러스에 입단하면서  자말 매쉬번, 짐 잭슨과 함께 3J를 형성하며 잠시 꼴찌 탈출의 기대를 갖게 하였지만, 키드가 그랜트힐과 함께 신인왕 공동 수상을 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고 댈러스는 결국 플옵권 도약에 실패하였고 결국엔 3J도 모두 팀을 떠나며 해체가 되었다. 이후 키드는 피닉스와 뉴저지에서 기량을 만개하며 동부에서도 약체 이미지가 물씬 풍겼던 뉴저지를 파이널까지 진출시키며 우승의 문턱에도 가 보았다. 댈러스로 돌아온 것은 기량이 내리막길에 접어들 무렵이었지만 건실하게 리빌딩된 팀에서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주며 얼마 뒤 그 당시 초강팀 마이애미를 상대로 수비와 3점이라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팀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하게 된다. 이후 뉴욕으로 팀을 옮겨 커리어의 마지막을 보냈고 공백 없이 바로 브루클린(전 뉴저지)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브루클린에서 한 시즌만 머물고 바로 다음 시즌 밀워키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쿰보가 리그의 스타로 올라서는 과정에 기여했지만 팀 성적의 한계를 느끼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밀워키는 키드의 뒤를 이어 감독에 부임한 마이크 부덴홀저와 함께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키드는 밀워키 감독직 사임 이후 레이커스 코치를 잠시 맡다가 선수 시절 데뷔 팀이자 신인왕 수상과 우승의 영광을 함께한 댈러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팀 창단 최초 우승의 업적을 이룬, 짐 캐리를 닮은 릭 칼라일(현 인디애나 감독)의 뒤를 이어 팀을 맡는다는 것은 다소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난 감독으로서 키드의 성공을 믿지 않았다. 그는 건실한고 뛰어난 포인트가드 이미지에 반해 실제로는 다소 거칠고 고집스러운 인성을 가진 존재였고 이는 선수 시절에나 감독 시절에나 심심찮게 드러나는 단점이었다. 댈러스 부임 첫 해에 팀을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리며 성과를 내는 듯하였지만 다음 시즌 중에는 그 누구도 쉽게 받을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폭탄 같은 사나이 어빙을, 그것도 루카라는 리그 대표 온볼 플레이어와 함께 공존시키는, 당시엔 모두가 도박이라고 말하는 선수 영입을 하였으며 그 해 댈러스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러한 의구심을 타당한 것으로 여기게 하였다. 그런데 올 시즌, 이번엔 팀을 NBA 파이널까지 진출시켰으니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도 나름 인정받는 단계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생각보다 침착하게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게 내가 아는 그 키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하고 훌륭한 언변을 연일 뿜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냥 결과적으로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간에 댈러스의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 행보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언더독의 낭만과 함께 카이리 어빙을 재평가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한 팀 소속으로 선수 시절 신인왕과 NBA 우승을 경험하고 감독으로도 우승을 차지한 선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본인이 NBA를 집중해서 보기 시작한 이후로는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루카와 테이텀의 첫 우승보다 더 희귀한 역사의 기록이 제이슨 키드 감독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는 그렇게 주목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나라도 한마디 하려고 쓴다. 사실은, 보스턴의 전력이 우세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는데 막상 그것이 현실로 드러나니 댈러스를 응원하지도 않으면서도 볼 맛이 좀 안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스티브 내쉬의 팬이었기 때문에 선수 시절 라이벌로 많이 비교되던 제이슨 키드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내쉬가 못해본 건 결국 다하고 있는 것 같아 배도 조금 아프지만, 최근의 NBA가 잃어버리고 있는 듯한 리그의 레거시를 그래도 잘 담고 있는 존재가 제이슨 키드라고 여겨지기에 내친김에 그가 감독으로서도 우승을 차지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는, 리그가 소프트해졌다느니, 커리가 경기를 망쳤다느니, 아직도 조던 동영상을 돌려보는 오래된 농구팬들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나처럼 개인적인 소신으로 멀쩡한 선수를 어떻게든 믿지 않으려 하는 편협한 농구관의 소유자의 생각을 돌려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도한 개성을 드러내며 주위의 시선을 크게 개의치 않는 젊은 선수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리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실컷 써놓고 보니, 응원하는 팀이 없으니 별 생각을 다하고 있구나 싶다.(난, 여전히 덴버가 미네소타에게 패배한 것이 이해가 안 되고 있다.)


만일 내가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요한복음 10: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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