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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05. 2020

작은 즐거움


  졸업을 하며 학교를 완전히 떠나가는 아이들을 몇 해 맡아보니, 생각치 못하게 신경쓰이는 부분이 교실 뒷정리이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학교를 나오는 둥 마는 둥 하는 애들에게 청소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고, 그렇다고 수능을 앞둔 애들에게 교실 정리를 하자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올해는 2학기가 중반쯤 지나가며 나혼자 조금씩 정리를 해 나가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수능 시험장처럼 교실을 만들어 적응해 보자는 그럴듯한 명분도 내세웠다. 입시 일정 안내며, 대학별 책자며 하나 둘씩정리를 하다 마지막 모의 고사를 치르기 , 마지막 잎새처럼 붙어 있던 태극기마저 떼어내니 교실이 그야말로 휑해졌다. 제각기 자기 자리에 붙어 있거나 늘어져 있을 때는 별 거 아닌 거 같아 보이더니 죄다 치워버리자 교실이 썰렁하고 자못 삭막한 느낌마저 준다.

 어제 교실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텅 빈 게시판에 제 역할을 못하고 얼기 설기 박혀 있던 압정을 가지고 '코로나'라고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게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고,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교실에서 여기저기 꽂혀 있는 압정을 뽑아, 그것도 굳이 '코로나'란 단어를 새겨 놓는 모습이란... 아이들은 이렇게 작은 즐거움들을 만들어낼 줄 안다. 어른들보다 뛰어난 아이들만의 능력이다. 가끔씩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런 말도 안되는 입시의 압박감을 어떻게 견뎌낼까 싶은데, 잔재미들을 만들고 느낄 수 있어서, 그래서 하루를 또 지낼 수 있는 건가보다.

 오늘도 친구들끼리 담요를 바꿔가며 둘러쓰고 낄낄거리고, 셔틀콕 줍기의 달인이 되었노라며 뜬금없는 허세 잔치를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함께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 덕에 한결 젊어질 수 있는 것. 교사만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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