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보낸 둘째 아이의 알림장을 보니 이런 과제가 있었다.
' - 나의 꿈에 대한 발표 생각해두기
-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잘하는 것, 부족한 것, 노력해야 할 것, 앞으로의 다짐 등'
아이는 내용을 확인하더니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 난 꿈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고르지?"
내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아니, 피아니스트였다기보다, 진로와 진학의 방향을 조금씩 구체화해야 될 무렵, 피아노를 택하고 싶었다. 5살 때부터 동네 피아노 학원을 다니다 6학년 무렵, 어머니 친구 동생분이 이웃 동네에 피아노 학원을 여셔서 그곳으로 옮겼는데 그 선생님은 그동안 꾸역꾸역 악보만 읽고 따라치던 내 연주를 듣더니 기가 막혀 하시면서 기본적인 테크닉부터 곡을 해석하는 방법까지 죄다 새롭게 알려주시는 거다.
바로 집앞에 있던 학원에서, 걸어서 30분은 족히 걸리는 곳으로 옮겼고, 새로운 선생님은 늘 나긋나긋하고 친절하던 이전 피아노 선생님과는 달리 피아노를 칠 때마다 호랑이 기운과 불호령을 뿜뿜 내뿜었지만, 마치 피아노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듯한 기분에 취해, 몇 년간 열심히 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드디어 중 2가 되었다. 친언니처럼 가까이 지내던 사촌 언니가 전해에 예고로 진학을 했던 영향이었는지, 피아노 선생님이 펌프지을 하셨던 건지, 공부에 진력이 난 건지, 아무튼 난 '피아노'를 나의 진로로 결정하고 부모님께 통보하였다.
"저 예고 갈래요."
지금 생각하니, 엄마와 아빠는 이 말에 온갖 생각을 다 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겨우 동네 피아노 학원이나 다녔던 애가 뭘 하겠나 우려도 되 셨을 거고, 얼마 전 분양 받은 아파트의 계약금을 마저 내려면 지금 상황에서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데 돈이 오죽이나 많이 들까 하며 수도 없이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리셨을테다. 그렇게 무리해서 돈을 들여 대학을 보낸다한들 나중에 돈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셨을 거 같고.
그때부터 내 꿈을 좌절시키려는 엄마와 아빠의 협공이 시작되었다. 피아노를 아예 모르는 엄마는 틈만 나면 내가 얼마나 피아노를 못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확인을 시켜주셨다.
"너정도 치는 애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가끔 어디서 칭찬이라도 듣는 날이면,
"그 사람은 원래 그렇게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잖니. 누구한테나 다 그런 식으로 얘길 하더라."
예고에 다니는 사촌 언니를 만날 때면,
"00가 너 때문에 주제도 모르고 예고 바람이 들었잖냐. 좀 말려봐라."
등등의 말들이 날마다 귀에 가시가 되어 들어와 박혔다.
성격이 급한 아빠는 거실에 있는 피아노를 칠 때면,
"어우 시끄러워. 아빠 티비 봐야 돼. 좀 조용히 해!"라며 호통을 치시곤 하셨다.
하필이면, 나와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동갑내기 친구 C는 집이 부유해서 C가 피아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니,당시 내 일기장을 보면 비극의 주인공도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나는 피아노 학원을 관뒀다. 정확히는, 피아노 학원이 문을 닫아 관두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다.
아마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본격적인 갈등을 겪기 전, 자연스레 마무리가 되어 다행이다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현실 모범생'이 되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무슨 과를 가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았다. 뭔가를 생각하려고 할 때마다 "너는 못해."라던 말들이 족쇄가 되어 나를 끌어다 주저 앉히는 기분이었다.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서도 4년동안 해야 되는 일만을 했을 뿐,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본 적이 없다. 이걸 해볼까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늘 그 자리에 도로 주저 앉아버렸다. '성공'과 '실패'의 양갈래길이 시작될라치면, 난 언제나 안전하게 '포기'라는 길을 고르고 말았다.
성공을 했다며 인정 받은 이들이 들려주는 경험담 속에서는 늘 도전하는 본인과, 그것에 반대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난 부모님의 반대를 이겨낼 정도의 깜냥도, 의지도 없었던 것이기에 꿈을 포기했던 것이 맞는 결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결정은 내가 내려야 했었던 판단이었다. 내 삶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가지들 중 어떤 것을 쳐내고 어떤 것을 키워나가야할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가지가 커 나가다 시들거나 부러질지언정, 그 주체는 나여야했다. 나름 진지했던 고민과 노력의 싹이 뎅겅 잘려나가고나서 그 후유증은 꽤 크고 오래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가 퇴직금으로 사 주신 피아노는 지금 내 집 거실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이 뚱땅거리며 치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건반 위에 손을 얹어 보았다. 피아노 소리를 듣던 둘째가 바닥에 엎드려 한창 그림을 그리다가 이렇게 외친다.
"아, 맞다. 엄마 나 피아니스트도 되고 싶어."
그러더니 곧 손가락을 꼽아 자기의 꿈을 세어 본다. "피아니스트, 패션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이돌 가수, 발레리나, 개 훈련사"
사실 지금과 같이 빠른 속도로 달라져 가는 세상에서는 나는 애초에 아이의 인생을 '가치져 줄 ' 능력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그저 무엇이든 부딪쳐보고 스스로 깨닫고 느껴가며, 그 안에서 실패라는 쓰디쓴 약과, 성공이라는 달콤한 약들이 적절하게 아이를 키워가길 기다릴 뿐. 그래서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꿈을 주욱 나열한 후 한 마디 덧붙여 주었다.
"꿈을 꼭 하나만 골라야 되는 건 아니야. 지금 네가 바라는 것들을 다 해 볼 수 있는 일들을 새롭게 꿈꾸어도 좋아."
나도 이제서야 꿈을 꿀 용기가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