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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17. 2020

내 일과 내 일이 아닌 일

 교실에 조회를 하러 들어가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분명 아이들은 죄다 앉아 있는데 교실이 어두컴컴한 그대로인 것이다. "전기 나갔니?"라고 물어보며 스위치를 누르자 교실은 금세 환해졌다. 그 이후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한파 주의보가 내려진 날인데 히터를 켜지 않은 채 냉골인 교실에서 덜덜 떨고 있다든지, 반대로 에어컨을 틀어놓고 춥다며 담요를 푹 뒤집어 쓰고 있다든지.

 

30명에 가까운 아이들 중 누구라도 버튼 하나만  눌러 크고 끼면 될 일이었을텐데, 그걸 안 하고 불편함을 견디고 있는 아이들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다. 예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 더 그렇다. 그렇다고 딱히 누굴 꼬집어서 잘못했다고 말할 수도 없어 그냥 슬쩍 내가 대신해주곤 했다.

 

 며칠 전에는 아이들이 원격 수업 기간일 때 교실에서 대학교 면접을 지도하려고, 교실 뒤편 책걸상을 면접장처럼 세팅했다가 정리를 하지 못한 채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았다. 이제는 뭐, 놀랍지도 않다. 책걸상은 그대로 둔 채 아이들은 주변 자리로 흩어져 앉아 있어서, 조회하러 들어갔다 부랴부랴 나 혼자서 교실을 정리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또 시키면 잘 한다. 누군가에게 교실을 비울 때 소등을 하고, 히터도 끄고 나가라고 하면 잘 한다. 대청소 날에는 우물쭈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 걸레를 쥐어주며 창틀을 닦자고 이야기하면 깨끗하게 곧잘 한다. 다만, '말을 하기 전'에는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매해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아이들의 성향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들이 피부로 와 닿을 때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이렇게 '내 일'과 '내 일이 아닌 것'의 구분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내가 해야 점수를 받을 수 있거나, 누군가가 하라고 일러 준 것들은 '내 일'이다. 그밖의 일들은 내 일이 아니다. 내 일이 아닌 것에 아이들은 관심이 없다. 아마 그동안 아이들이 살아온 세상이, 아이들을 둘러 싼 어른들이 그렇게 키워오고 가르쳐 왔던 걸 게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내 일과 네 일을 따져가며 자신의 몫을 채워넣는다고 잘 돌아가지는 않는다. 일단 내 일과 네 일이 명확히 구분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얼마만큼 내 일을 우리의 일로 확장해 나가고, 우리의 일이 내 일로 수렴을 해 나가는지가 그 사회 수준을 결정짓는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아이들은 부쩍 더 '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우리 학급 안에서 어떤 의미인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도통 관심이 없다. 거리두기를 하느라 사방으로 간격을 두고 앉아야 해, 교실에 들어가면 같이 있지만 모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가 남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제대로 느끼고 생각할 기회가 없다.


 이미 원격 수업의 시행 착오를 거치며 지식 전달의 공간으로서 학교의 의미는 퇴색하였다. 몇 번의 클릭질로, 수업 시간을 통해 듣는 것보다 훨씬 양질의 정보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느때보다 체감해 가는 시절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학교가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부분이 '우리'라는 개념일 것이다. 왜 집에 있는 넓고 편한 책상과 의자가 아니라, 좁고 딱딱한 책상과 의자가 있는 교실에 있어야 하는지, 왜 입맛에 맞는 음식들을 냉장고에서 꺼내먹는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급식을 줄을 서서 기다리며 먹어야 하는지, 내 일과 네 일을 따지는 곳에서는 아무 답을 줄 수가 없지만, 학교는 '우리'가 함께 하는 공간이라 의미가 있다. 이 안에서 사회 속에서 우리로서 존재해야 할 한 사람으로서의 생존을 배워가는 것이다.


 내 일과 네 일을 넘어선 우리에겐, 그래야 '내일'이 오는 게 아닐지.


  (교실을 나와 교무실에 가는데 아무도 없어 휑뎅그렁한 탕비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그 앞에 처량맞게 '북극곰을 지켜 주세요'라고  쓰인 사진 속에 북극곰이 처량맞게 앚아 있다. ' '내 일', '네 일'은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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