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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16. 2020

비극의 주인공 만들기 놀이

[2002년생이 운다] '평생을 감염병과 싸워'... 결국 수능까지  


 며칠 전 눈길을 끌었던 기사의 제목이다. 내용인 즉슨 지금 2002년 생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신종 플루가, 중학교 1학년 때 메르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코로나19가 유행하였고, 심지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수학 여행까지 취소되었으니 '저주 받은 세대'라는 말이 돈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어내려가다  분통이 터졌다. 안그래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힘겨워 하는 아이들이 이런 글을 본다면 어떻게 느낄까. '저주'에서 벗어나려고 더 용기를 가지게 될까, '아 이래서 안되는거구나.' 하며 실제론 있지도 않을  저주에 휩싸인 채 살게 될까.

일단, 저 세 가지의 감염병이 유행했던 것은 제각기 분절된 사건이다. 굳이 흐름을 찾자면 여러 환경, 기술적 요인들이 맞물려 감염병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확산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연속선상이라고나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세 감염병들은 2002년생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일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세월호 참사를 들먹이는 부분에서는 어이가 없다. 그 시기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애들, 중학교 3학년이었던 애들은 이미 죄다 자기들에겐 수학 여행의 추억이 없노라며 한번씩 투덜거리고 지나간 참이었다. 그때마다 듣기가 불편했는데, 그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들의 마지막 투정이 남아있었던 거구나.

 도대체 수학 여행을 못 간 것이 아이들에게 얼만큼의 피해를 주는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 수학 여행이 아니더라도 아이들끼리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만들 거리들은 여기저기 차고 넘친다. 학급 단합의 기회? 이런 건 케케묵은 이야기가 되었다. 개별화된 아이들은 각기 자신이 속해 있는 무리 속에서만 관계의 의미를 찾을 뿐이어서, 오히려 학급이 함께 하는 행사를 치르고 난 후면, 갈등이 있었던 아이들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거나, 은따를 당하는 아이가 대놓고 왕따를 당하고 만다든가 하여 그 뒤끝을 처리하는 게 더 정신이 없을 때도 있다.  수학 여행 업체들이 타격을 받았다면 모를까. 당시 왜 수학 여행을 취소했는지 정말 모르고 하는(지껄이는) 소리인지.


 '어듸라 더디던돌코, /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 마쟈셔 우니노라.'


수업을 하며 후렴구로 붙어 있는 '얄리얄리 얄라셩'을 열심히 읊다 조는 아이들을 보면  이것은 고전 시가인가,  아이들을 단잠에 빠뜨리는 주술인가 헷갈리곤 하는 '청산별곡'의 한 구절이다.


'어디다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고 했든 돌인가. 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맞아서 우는구나.' 라는 정도로 해석이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몇 백 년 전의 그 때 그 사람들도 어디선가 이유도 모르게 날아든 돌에 얻어 맞고, 울며, 누구를 의지할 수도 없이, 누군가를 원망할 새도 없이 힘들게 살아난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게 나의 삶이 아니었을까 하며 이런 노래를 불렀던 것은 아닌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인생과의 대결에서 '얄리얄리얄라셩'이라고 흥얼거리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던 것은 아닐지.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문제들이 내가 계획했던 길에 끊임없이 끼어드는 게 인생이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은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누구의 삶이나 두 시간 분량으로 압축해 놓으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누군가의 인생을 압축하며 돌이 날아들고 그것에 맞은 모습들만 골라 편집한다면 누구의 인생도 최고의 '비극'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기사라는 틀을 빌려,  굳이 끼워 맞추고, 누군가를, 특히나 이제막 용기를 가지고 인생 스토리를 꾸며 나갈 우리 아이들을, 클릭질 장사를 노린 손쉬운 손놀림 몇 번으로 서둘러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짓은 제발 그만 하기를.

우리 모두가 어디서 누구를 향해 돌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마다의 삶을 위태롭게 이어가는 시점이다. 펜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막 써내려 갈 아이들이 각자가 주인공인 자리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저마다의 찬란한 영웅담을 만들어 낼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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