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Nov 19. 2020

텅 빈 사물함을 보며

 예년보다 늦게 시작해서 일찍 마무리 되어버린 한 해이다.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 수에 찔끔찔끔 개학이 미뤄지는가 싶더니, 처음으로 '원격'으로 개학을 맞이했고, 원격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 맞은 상황에, 그때까지만 해도 머릿속 깊이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것이 개학이라고 새겨져 있는 교사들은 '개학일'과 '등교일'이란 말 조차도 마구 혼재해서 쓰다 '원격 수업'이란 말도, 아무도 없는 교실도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올해 마침 복도마다 새로 구비된 크기가 커진 사물함은 텅 비어있는 채로 3월과 4월을 보냈다.

 그 어느때보다 예민한 1학기였다.  불안정한 시기에 금값이 치솟듯, 어수선한 상황에서 대입에 보증이 되는 것은 숫자라고들 여겼는지, 소숫점 차의 점수조차에도 아이들은 울고 웃었고, 내가 남보다 잘해야만 하는 등급제의 싸움에선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를 비롯한 교사들은 행여나 문제 오류가 생겨 예민한 아이들의 눈에 걸려들어 문제가 생길까  골머리를 싸매고 출제를 해놓고 그래도 불안해서 문제를 몇 번이나 되풀었다. 내 옆자리의 수학 선생님은 애들이 수행평가를 너무 잘 해내 지필고사에서 등급이 나누어져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려운 문제만 출제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푹 쉬시기도 하셨다.

시험 감독을 가 보면, 손을 덜덜 떨며 문제를 풀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아이들에게도 교사에게도 지옥같은 고사 기간이 끝나고, 각자 받아든 성적표를 토대로 진학 면담이 시작되었다. 명색이 학부모 동반 면담이라 이름은 붙였건만, 그 시기에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었기에 학부모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하고만 개별적으로 약속을 잡아 짧은 여름 방학 기간을 쪼개서 만났다. 나같이 학부모포비아가 있는 교사들에겐 이때만큼은 코로나가 더없이 좋은 핑곗거리가 되기도 했고, 사실 부모의 바람이나 욕심을 걷어낸 자리에서 아이들과 더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도 있었다.

 여름방학은 언제 했는지도 모르게 끝이 나 있었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정말 걷잡을 수 없이 교실은 붕괴되고 말았다. 올해는 가족 여행 등을 사유로 출석이 인정되는 '체험 학습'이 코로나 감염에 대한 우려로 가정 학습을 하는 경우까지도 범위가 확장이 된 덕에(?) 결석자들이 속출하였다. 심할 때는 한 학급에 서너 명만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고, 아무리 수업에 열정적인 교사들이더라도 '자습해라.'라는 말을 던져 놓고 멍하니 교탁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변화하였지만, 관습적인 행정 업무에는 변화가 없으니 2학기 때 담임 교사의 주업무는 수업도, 학생을 마주하는 것도 아닌, 결석 서류를 챙기는 일이 되어 버렸다.

  매달 장편 소설 분량 만큼의 서류들이 모아졌고, 제출을 하지 않은 아이들에겐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하며 어떻게해서라도 받아내야했다. 결석계의 학부모 서명을 하도 본 탓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제는 학생부에도 나오지 않는 학부모 이름까지 몇 분은 기억했을 정도다.

 아이들은 이번주까지만 학교에 나온다. 대학 입학을 위한 절차들이 마무리 되었고, 2학기 교육활동은 실질적인 의미가 덜해, 이제 다음 입시생이 될 1,2학년 아이들이 3학년 아이들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우리 교실은 수능 시험장으로 사용된다고 해서 이번 주 내내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짐을 다 가져가라고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하나 둘씩 아이들의 사물함이 텅 비워져 가고 있다. 조용한 복도가 참 편하고 좋다고 느꼈던 적도 분명히 있는데, 비워져 가는 사물함을 보고 있으니 예년처럼 수능 하루 전날 걱정스런 아이들에게 잘 할 수 있을 거란 응원을 해 줄 수도 없고, 수능을 보고 온 다음날 아이들의 어깨를 다독여 줄 수 있는 기회도 올해는 사라졌구나 싶어, 마음이 허하다.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과는 매해 함께 웃었던 몇 가지 일들이 추억으로 남건만, 올해는 아이들과 간직할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늦게 왔다가, 일찍 가버린 아이들의 빈 자리는 오래도록 이렇게 '텅 빈 사물함'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천천히 가 보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