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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20. 2020

뱉어내기

 아이가 돌 무렵을 막 지나 한창 정신이 없을 때였다. 육아를 도와주러 오신 어머니가 딸 입에 뭐라도 더 넣어주고 싶으신 마음에  생선을 구워 저녁을 한상 차려놓고 기차 시간에 맞추어 막 집을 나서셨고, 칭얼대는 아이를 얼레고 달래며 밥과 생선 살을 한 점 막 떼어 입에 넣었다. 꿀꺽, 하고 목구멍으로 음식물이 넘어가는 순간, 뭔가 찜찜하다 싶더니 가시 하나가 목에 박혀 버렸다. 밥을 주먹만큼 크게 떠서 한꺼번에 삼켜 보아도, 물을 한 대접을 마셔도 목이 따끔거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지하철에 타고 계신 어머니를 다시 호출하였다.  아니, 딸 자식 뭐라도 좋은 걸 먹이고 싶으셔서 가시는 순간까지 시간을 쪼개 진수성찬을 차려 놓으신데다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한참 오르막에 위치한 우리집에 힙겹게 돌아오신 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다고, 나는 순간 울컥해서, 짜증을 내고 말았다. "아, 정신없는데 생선을 주시면 어떡해요."  어머니가 아이를 봐 주고 있는 사이, 나는 인터넷으로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병원을 검색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병원에서 가시가 박힌 것을 빼는 몇 초는 잠깐이지만 잊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의사의 지시대로 혓바닥을 있는대로 늘어뜨리고 혀가 다시 들어가지 않게 붙잡고 있으라고 해서, 혀를 잡고 있노라니 입 옆으로 침이 뚝뚝 떨어지고 구역질이 나던 순간, 의사는 능숙한 솜씨로 가시를 빼냈다. "참 큰 가시네요. 좋은 생선 드셨나봐요."

 의사는 내 목을 이리저리 보더니 작은 가시는 음식물이나 물을 먹어도 빠져서 내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엔 큰 가시가 박힌 탓에  음식물을 무리해서 삼키다가 가시는 더 깊이 들어가고 목 안에 상처가 많이 났다면서 항염제를 처방해주었다. 그 후 며칠간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은 조금씩 따끔거렸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중 마음에 가시가  박힌 채 지내는 아이들이 있다.  얼핏 봐서는 잘 티가 나지 않지만 한 걸음만 다가가서 보면, 아이가 따끔거리는 모습들이 느껴진다. 혼자서 꿀꺽 삼켜보려했지만, 삼켜지지 않아 마음 속에 더 깊이 박혀버린 가시들이다. 이런 아이들을 발견하면,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하자고 요청하곤 한다. 어설프게 가시를 건드리려 하면 더 깊숙이 들어가버린다. 의사가 하던 대로 갑자기 '쑥' 파고 들 때 아이의 말문이 열릴 때들이 있다. 특히 죽음을 생각하거나 시도했던 아이들의 경우가 그렇다. "


 "오늘 아침 뭐 먹었니?"

"안 먹었는데요."


"야, 오늘 날씨 참 좋다. 야, 너 그때 죽었으면 오늘 하늘도 못봤겠다. 나는 엄청 다행인 거 같은데 안 그러니?"

"근데 너, 그때 자살 시도 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어?"


누가 보면 섬뜩한 대화라 여길지 모르겠지만, 주변부를 빙빙 도는 이야기보다, 태연하게 화제를 불쑥 꺼내면 아이들은 장벽을 허물어버리고, 기대보다 더 깊이 있는 속 얘기들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내가 더 딱히 해 줄 것은 없지만, 가슴 속 상처를 깊이 묻고 사는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출발점이 된다. 아직, 아이들의 마음은 여리디 여려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빨리 치유가 되어 가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가슴에 박혀 있는 가시를 알아봐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꾹꾹 집어 삼키려고만 들다 더 큰 상처를 만들곤 한다. 

 사실, 가시를 빼주는 의사의 역할은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 부모든, 교사든, 친구든, 아니면 일기장도 좋다. 

눌러 삼키려고 하지 말고, 어딘가에 뱉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하고,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줄고, 스트레스는 가득한 올해 아이들은 마음에 품고 있는 가시들이 있는지, 더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마음을 후벼 파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된다. 

  수능 시험을 2주 앞두고 등교의 마지막날을 맞은 오늘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보다는, 수능 유의 사항과 코로나 확진자 증가 소식을 전하며 당부할 말들이 많아 마음이 무겁지만, 그저 어느 때라도, 내가 문을 연 이비인후과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목의 통증을 덜었을 때처럼, 아이들이 언제나 힘든 마음을 뱉어낼 수 있는 자리에 있겠노라 약속을 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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