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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25. 2020

운(運)

 월요일 아침, 다들 피곤한 얼굴로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P선생님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교무실에 들어왔다. 

"저, 어제 사주를 봤는데요, 내년에 대운이 들어온대요!" 한 치도 알 수 없는 사람의 인생을 예측해 주는 '운'에는 모두가 관심이 있는지, 누구보다도 이성적이었던 과학 교사도, 집안 대대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분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다지 이성적이지도 않고, 신자이긴 하지만 독실하지 않은 나는 질문 행렬에 앞장섰다. 

 "얼마에요?", "잘 맞혀요?", "뭐라 그래요?"


  P교사는 꽤 오래 전부터 교직을 계속할 건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누가 소개를 해 줘서 전화를 걸어보게 되었다고 했다. 상담료는 3 만원. 본인의 사주를 보더니 그쪽에서는 내년에 대운이 들어오고, 교사라는 직업을 먼저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교직이 어울린다며 교사로 평생을 하면 좋을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P는 2021년이 너무나 기다려진다는 말을 남기고 학급으로 돌아갔다. 

  

 생시(生時)에 따라 사람의 성향과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주팔자는, 누가 봐도 과학적 근거는 약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인 말들도 난무한다. 그러나 누군가, 단돈 3만원에 나는 잘 될 거라는 굳은 믿음을 주었다면, 그리고 그 말의 힘으로 내일을 살아갈 수가 있다면, 그것 또한 쓸데없는 소비로 치부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옆에 있던, 선생님이 한 마디 거들었다. 

 "나도 아들과 사이가 그렇게나 안좋아서 한참을 상담 받으러도 다니고 맘 고생을 엄청 했잖아. 해도 해도 안되니까 누가 사주라도 봐 보라고 해서 속는 셈치고 가 봤는데, 타고난 성향상 그럴 수밖에 없대. 나랑 아들이 너무 상극이라 안 맞는 거고, 내가 아들을 끌어 안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요즘도 아들놈 때문에 불쑥 불쑥 화가 치밀 때가 있지만 그 때 그 말을 생각하면, 아들이 여전히 이해는 안되어도, 아 그럴 수밖에 없구나. 하고 납득은 되는 것 같아."


모든 것을 타고 난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도 위험하지만, 내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은 '운'의 영역으로 잠시 미뤄두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싶다. 제아무리 4차 산업혁명 어쩌고 하는 21세기임을 자처해도, 저 먼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운명 예측'이 한편에서 계속되는 이유일 것이다. 


 복권을 떨어지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낮디 낮은 확률임을 뻔히 아는데도, 누군가는 당첨되기 때문에 그 누군가가 내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믿음으로 복권을 구입하고, 당첨일을 기다린다. 내 능력이나 노력으로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당첨될 가능성은 낮지만, 기다리는 마음은 편하다. 


  고3 담임을 하며 가장 힘든 점은 '할 수 있어, 잘 될 거야'라는 긍정적인 말보다 '안 될 것 같은데' 따위의 부정적인 말들을 아이들에게 더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누적된 데이터와 경험치를 가지고 보기 때문에, 대략적인 상황이 가늠이 되고, 그 안에서 최선의 진학 방향을 잡고 싶은데 자신의 기대가 앞서는 아이들의 시각이 교사들과 엇갈리는 순간이 너무 많다. 과정과 결과는 대충 정해진 흐름대로 간다. 교사들이 제일 상향 지원이라고 권해준 학교를 하향으로 생각하고 원서를 쓰고, 대부분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 될 거야'라는 말만 들어온 아이들은 '역시나 안되는구나'만을 경험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만다.


  그동안 나는 3만원짜리 전화 상담 사주가보다, 몇 천원짜리 복권보다 더 못한 교사였던 것이다. 

 

 아이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말을 한 마디 얹고, 그렇지 않고에 따라 당장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아이의 긴 삶에서는 그것이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 보지를 못했다. 다 큰 어른들도 '대운'이라는 한 마디에 삶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는데, 하물며 이제서야 본인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살아 낼 아이들은 오죽하랴. 

 

 이제, 올해의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세 번이 남아 있다. 수능 수험표를 나누어줄 때, 수능 성적표를 나누어 줄 때, 졸업장을 나누어 줄 때. 이 순간만큼이라도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언제 올지 모를 '대운'을 기다릴 수 있게. 그래서 당장 발 아래 놓인 결과보다는 먼 목표를 향해 꾸준히 갈 수 있게.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10대를 마무리하며, 20대를 맞이할 수 있게. 믿음의 말들을 전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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