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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24. 2020

보물 찾기

 시아버지는 한평생 시장 모퉁이에서 그릇 가게를 하고 계신다.  인부도 몇을 부렸고, 트럭도 몇 대가 있고, 물건을 쌓아둘 곳이 없어서 남편이 쓰던 방에도 주전자가 한가득 쌓여있던 시절도 있었다던데, 아이엠에프 때 그간 벌어둔 돈을 다 잃으시고, 지금은 월세 십 몇 만원짜리 작은 가게를 하나 지키고 계신다. 시아버지가 계시던 시장도 한때는 도시에서 가장 크고 붐비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아마 세어 보진 않았지만 시장의 '유동인구'보다 시장을 통과하는 동네 똥개들의 '유동견(犬)구'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사람이 없으니, 물건이 쌓이고, 물건 위에는 먼지가 쌓인다. 비염이 심한 남편은 시아버지의 가게에 가기만 하면 연신 재채기를 해대지만, 몇 십년어치 먼지를 뒤집어 쓴 그릇들 속에는  몇십 년전의 모습이 고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여전히 쓸모 있는 것들도 있어 숨겨진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그릇들 사이의 좁은 틈을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을 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보기에는 다 비슷비슷한 '스댕' 그릇 같은데도, 두께나 재질에 따라 '급'이 나뉜다는 시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고급 스댕'을 찾아 보기도 한다.

 지난 여름에 시아버지의 가게를 찾았을 때, 먼지가 너무 많아 보여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길다란 상자가 눈에 띄었다. 상자를 꺼내보니 뚜껑에는 한지가 붙어 있고, 그 위에 먹물을 묻혀 직접 쓴듯한 일본어가 쓰여 있다. 호기심에 뚜껑을 열었더니 짜잔. 번쩍이는 회칼이 위용을 드러내었다.

 "어머어머, 이것 좀 봐. 어쩜 이렇게 끝이 예리하지. 회칼 만져 보는 건 또 첨이네. 진짜 잘 들 게 생겼다." 나는 마치 보물찾기에서 1등 상품이라도 찾은 양 호들갑을 떨어대는 내 뒤로 시아버지는, "그거, 30년전 원가가 5만원짜리여야. 좋은 거여."라고 한 마디 덧붙이셨다. 어차피 둬봤자 팔리지도 않는다며 다 가져가라셔서, 비슷하게 생긴 상자 몇 개를 더 찾아 차에 실었다. 차에 탄 남편은, 예전에 장사가 한참 잘 될 때 수많은 식당에 도매로 그릇을 납품하곤 했는데, 당시엔 우리나라 칼이 잘 들지 않아서 그릇을 보러 온 사람들이 그렇게나 일본 칼을 찾았고, 그래서 직접 수입을 해 오신 거라고 설명을 곁들였다.

 칼은 정말 남달았다. 본업은 회를 써는 거긴 하지만, 김밥을 자르니 김밥이 두부처럼 잘려나가고, 몇 번 칼을 왔다갔다 해야 잘릴 고기의 기름덩어리도 단번에 쓱 하고 떨어져 나간다. 가져온 칼들은 친정에도 드리고, 이모께도 드리고, 학교 선생님들께도 나누어 드렸더니 써보고 다들 너무 좋아하셨다.


 칼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의 유명한 대장간에서, 솜씨 좋은 대장장이의 섬세한 손길에서 탄생했을 그 칼은, 자기가 바다 건너 한국 땅에 와서, 한국에서도 작은 도시의 작은 시장의 작은 가게의 선반 위에서 30년동안 잠자고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칼은 '칼'로서 너무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다른 상황들로 인해,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가게의 구석진 선반 한 켠만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능은 타고 난다지만, 그것을 알아봐주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마련되지 않을 때 먼지 낀 상자 속의 칼처럼,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 대신 어릴 적 나를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계신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딸로 태어나, 학교 문턱도 넘어 보지 못한 분이었는데, 말씀을 하시면 얼마나 논리적이고 달변이신지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가 나처럼 학교에 다니셨으면 공부를 진짜 잘했겠다 생각이 들었을 때가 있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재능을 미처 펼쳐보이지 못한 채,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한 채 지내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런지. 세상은 점점, 돈이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작은 재능에도 해가 잘 드는 곳에서 제때 물을 주고, 양질의 토양을 주고, 고가의 비료를 쏟아부어 큰 꽃을 피울 수 있게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고만고만한 울타리 나무 정도로 크길 소망하며 재능이고 뭐고, 생각할 새도 없이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둘의 삶의 사이는 더 속도를 내어 멀어지고 있다. 교육은 그 벌어진 틈사이를 메꿔놔야 할 터인데, 공교육이 미치지 못하는 틈마다 사교육이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그 사이를 더 벌려 놔 버려 맥이 빠질 때가 있다. 그래도, 그럴수록 교사들은  '보물 찾기'를 할 때처럼,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들여다 보고, 성적표의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 아이들의 능력을 알아봐주고, 길러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저마다 가진 보물을 알아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여든을 넘기고 일이 힘에 부치신 시아버지는 이제 곧 가게를 정리하실 거라고 한다. 물건이 도저히 팔리지 않으니 아는 상인에게 한꺼번에 고물로 쳐서 값을 받고 넘기시겠단다. 방학이 되면, 가게를 다시 찾아 그릇들을 다시 골라봐야겠다. 고물 취급을 받기 전, 먼지구덩이 속에서 여전한 쓰임의 능력이 있는 그릇들을 챙겨와야겠다.


    여러모로 마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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