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건네는 당당한 인사
내가 처음 코딩이라는 것을 해 본 것은, 올해 봄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덩달아 잠이 들었다가 술 먹고 늦게 온다는 남편의 연락에 잠이 깨버려 원격 수업 준비나 할까 하고 컴퓨터를 열었다가 마침 그 날까지 수강료가 할인되며, 코딩에 대해 전혀 모르는 비전공자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는 광고 문구에 혹해 결제를 해 버렸다. 코딩을 진짜 해 봐야겠다 이런 생각보다 내심, 카드 결제 내역이 날아들 때마다 뜨끔뜨끔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을 괴롭히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
맨날 쓰는 검색창이나 한글 문서가 아니라, 통합 개발 환경이라는 뭔가를 설치하고, 강의 내용에 따라 기초적인 것들을 따라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클릭질이 아니라, 컴퓨터에게 언어로 내린 첫 명령.
'Hello world!'를 출력하시오.
print(Hello world!)
print라는 명령면 뒤에 뭔가를 쓰면 컴퓨터가 그 문구를 그대로 내뱉는 게 어찌나 신기했던지, 그리고 까만 창에 코드를 넣는 내 모습이 얼마나 있어보이던지, 그 자체에 도취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의를 연속으로 몇 개 더 듣다가, 만취해 들어온 남편에게 분노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나중에 다른 프로그램 언어 강의들을 들어보는데 죄다 첫 예제로 'Hello world!'를 출력하는 것을 들고 있어 왜그런가 이유가 궁금했다. 찾아보니 그게 C언어를 처음 만든 프로그래머가 자신의 책에 첫 예제로 제시한 후, 프로그래밍 언어의 첫 번째 예제로 굳어지게 된 것이란다.
데니슨 리치라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문구를 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Hello world!'라는 문구는 나같이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그 세계로 막 한 발을 내딛었을 때 내뱉는 자신만만한 인사 같았다.
삶을 살다 보면 무수히 많은 '첫 경험'을 한다. 처음으로 어딘가에 '합격'해 본 것, 그리고 '불합격'이란 딱지와 함께 거부당한 것, 혼자 처음으로 버스를 탔던 것, 부모님의 품을 떠나 처음으로 혼자 생활했던 기억, 처음으로 실물을 봤던 연예인 등등. 그러다 아이를 키워보면 아이들의 첫 경험들이 가족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아이가 처음으로 옹알이를 했을 때, 목을 가누다 자리에 앉고, 기어다니다 한 걸음을 내딛었을 때. 한글을 깨쳤을 때.
남들에겐 아무 것도 아니어 보이지만, 처음하는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이 만들어지고, 성장해 나간다. 뿌듯하고 기분 좋은 경험들도 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들도 많다. 그것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지가 한 사람의 인생 경로를 때마다 결정 지어 주는 게 아닐까.
고3 아이들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처음으로 '20대'를 맞게 되며, 그동안 자신을 보호해주던 학교라는 울타리를 떠나게 된다. 사회인으로 한 걸음 떼는 모습은 각자가 다를 지라도 모두들 자신의 자리에서 맞이한 세상에 당당히 인사를 건네며 시작해 나가길 기도한다.
'Hello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