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Why are you walking?

2017.10.21. Day 18

by 메추리

20 Why are you walking?
- 2017.10.21. Day 18


다시 옮겨 도착한 숙소는 매우 훌륭했다. 비록 앞서간 동료 땜에 길을 빙 둘러 1킬로를 쪼리 끌며 와서 막판에 좀 짜증이 올라왔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순례자들에겐 단독 방에 2인 싱글 침대는 가히 호텔이라 할 수 있다. 가격이 인당 22.5유로(원화 3만원 정도)라 평소 자던 7천원(5유로)의 4배 수준 이상이어서 비싼 게 흠이지만 말이다. 수건도 2장씩 주고 침대 이불도 훌륭하다.

샤워를 하고 애들 4명을 불러 주방을 쓰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여기서 안자는 애들이 와서 요리한다고 난리 치신다. 다 미리 얘기 안 한 내 잘못이다. 결국은 착한 주인아주머니께서 삼계탕을 해 먹고 싶어 하는 처량한 눈빛의 배고픈 한국인 순례자들에게 주방사용을 허하셨다. 할렐루야!

그런데 냄비가 작아 닭 세 마리를 두 냄비로 나눠했는데도 불구 물은 넘치고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결국 주인아줌마가 큰 냄비를 주셨다. 순례자들에겐 모두가 사랑을 베푸신다. 그래서 끝나고 내가 따로 기부 좀 했다.

사수하고자 했던 삼계탕은 매우 훌륭했다. 국물에선 깊은 닭백숙 맛이 올라왔고 닭도 튼실한 게 맛났다. 젊은 친구들이 다들 인스타를 안 하는지 인증샷엔 관심이 별로 없다. 선인증샷 후식사를 모른다. 배가 많이 고파서 그런 건가? 하튼 나도 사진 찍을 새도 없이 닭다리를 들고 뜯고 있다. 쌀도 푹 익어 딱 백숙 맛이다. 참으로 용현이 이놈은 대단하다. 이 없는 양념으로 이렇게 깊은 맛을 내다니. 이러니 아무리 걸어도 살이 덜 빠지지.

게걸스럽게 닭을 쳐들고 뜯어먹었다. 그리고 그 국물에 닭죽을 끓여 또 먹었다. 정말 배 터지도록. 이렇게 먹으니 비로소 전 날 술이 해장된다.

8시 30분쯤 내방으로 가서 누웠다. 그리고 바로 잠들다.


새벽 12시에 순례기 쓰려고 깼는데 도저히 피곤땜에 안되어 이내 접었다. 다시 눈뜨니 6시다. 이때부터 40분은 내리 쓴 거 같다. 그리고 7:15 출발. 비가 새벽부터 살짝 흩날린다. 판초의 입을 정도는 아니고 해서 배낭 커버만 간단히 씌워 비 맞으며 걷는다. 비바람이 좀 치다가 곧 괜찮아진다.

8킬로를 걷고 8:55에 엘부르고에 있는 빠에 도착했다. 신라면을 3.5유로에 팔길래 먹었다. 유럽서 3.5유로(4,700원) 신라면을 보고 먹지 않는 다면 그건 실례인 거다. 라면 먹으며 전날 순례기를 완성했다. 덕분에 일행보다 30분 늦게 출발하는데, 언제 따라잡으려나?

걸으며 든 생각이 여긴 유독 El Burgo, Burgos 등의 지명이 많다. 덕분에 배도 부르고 좋다 ㅎㅎ

다른 유머도 하나 하겠다.

예수님께서 옷 사러 가서 결정하고 하는 말 아시는가? (어린애 하이톤으로) ‘얘루살램’

그래도 썰렁한가? 한국 돌아가면 나를 한대 패라. 기꺼이 맞아주겠다. ㅎㅎ

앞에 가는 외국인 두 친구가 진짜 빠르다. 내가 거의 뛰듯이 걷는데 거리가 거의 좁혀지지 않는다. 보폭이 달라서 그런가? 쩝! 계속 달린다. 결국 그 친구들도 제치고 그리고 그 앞선 친구들을 거의 제쳤다. 완전 탄력 붙었다. 거의 달리는 거랑 다름없다. 그렇게 달려 다행히 앞에서 쉬고 있는 일행을 발견했다.

11:29에 일행을 만났다. 오늘 17.62킬로를 온 거다. 엘부르고에서 여기까지 10킬로를 1시간 40분 안에 끊었다. 오 지저스. 지쳐서 좀 앉아 쉬려고 하는데 자기들은 많이 쉬었다고 바로 출발한다네. 우쒸! 나도 어쩔 수 없이 쉬지 못하고 따라갈 수밖에.

12:20에 두 번째 휴식. 21.5킬로 옴. 오렌지주스 한잔. 여기서 스페인, 멕시코 친구들이랑 맥주 마시며 작별인사와 마지막 사진 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들린 이번 빠는 엘비스도 왔다 간 듯하다. ‘엘비스 델 까미노’라 써져 있었다. 애들이 스페인어 (Del) 델이 무슨 뜻이냐고 얘기하길래 엘비스가 까미노 ‘델’꼬 왔겠지 했더니 또 웃는다. ㅎㅎ

바람과 햇살. 끊임없이 펼쳐진 직진 길. 바람 바람. 그리고 콧물.

아~ 마을이 보인다. 근데 가도 가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이런 마을도 처음이다. 보통은 마을이 시야에 나타나면 2킬로 정도 남는데 여긴 3킬로도 넘게 남은 듯. 그래도 멈추지 않고 걷는다.

2시 정각 오늘 목적지 만시아(Mansilla)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28.34킬로 38,718 걸음.

알베르게는 훌륭했다. 스페인 클라우디 아빠가 자신이 오늘 여기 묶는다고 우리를 위해 어제 대신 예약을 해준 곳이다. 5유로에 깨끗하고 아침까지 준다니. 또 한 번 지저스.

오늘도 어김없이 선맥주 후샤워. 알리오 올리오 스타일 스파게티와 함께 맥주를 들이켠다.

샤워 후 비누, 스포츠 습식 타월, 면도기 등을 다 버렸다. 까미노 내내 함께한 놈들인데. 면도도 콧수염과 턱수염만 빼고 깔끔하게 했다. 면도하니 살이 좀 더 빠져 보이긴 하다. ㅎㅎ

아, 여기에 체중계가 있다. 쌩장 출발 이후 만시아까지 거짐 400킬로 넘게 걸었는데 과연 체중이 얼마나 빠졌을까? 맙소사 그렇게 먹었는데도 4킬로나 빠졌다. 100킬로미터 당 1킬로씩 빠진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까미노는 다이어트엔 비효율적인 것 같다. ㅎㅎ 그게 아님 매일 밤 술과 음식을 좀 자제하던가.

미노와 토리. 미노는 첫날부터 함께 다닌 내 지팡이고 토리는 순례길 도중 주운 도토리다. 미노 이름은 까미노(Camino)에서 따왔고, 토리는 그냥 도토리에서 뒷부분을 가져다 쓴 거다. 좌 토리, 우 미노로 18일을 걸어왔는데 오늘이 브런치에서 첫선이라 이 두 친구에게 많이 미안하다.

모처럼 오후에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 ‘MINO’ 글자를 대나무 지팡이 손잡이 부분에 새겼다. 칼로 손잡이 부분을 평평하게 깎은 다음 거기에 한 글자씩 파내려 갔다. 글자 색인이 생각 보다도 더 힘들다.

그래도 순례자는 먹어야 걷는다. 오늘의 먹을거리 ‘돼지 두루치기’ 식재료를 사기 위해 스페인의 대표 할인마트 ‘디아(DIA)를 가기로 했다. 근처에 다 온 것 같은데 간판이 작은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또 한마디 날렸다.

디아가 오디야?

내가 애들 다 버린 것 같다. 미안하다. 이해해 주시라. 영 이해가 안 되면 나를 패라. 그 정도 맷집은 된다.

주방에서 마늘 까면서 옆에 앉은 프랑스 할머니와 얘기를 나눈다. 프랑스에서 63일을 걸어 1200킬로를 온 할머니께, 왜 걷냐고 물으니 ‘감사하기 위해서(Thanking)’라 답하는 거다. 자신은 좋은 남편에 네 자녀에, 넘 럭키해서 감사하려고 걷는단다. 아~ 이것도 감동이다.

나에게도 묻길래 나 자신을 좀 발견하기(Finding Myself) 위해 걷는다고 했다. 아영이는 울기 위해(To Cry) 걷는다고. 근데 그 울음이 긍정적인 울음이라고. 경로는 버리기(Throwing Away) 위해서 걷는단다. 자신의 욕심과 탐욕을 버리기 위해서.

지난번 왔을 땐 어느 캘리포니아 Lady는 ‘Fired, Divorced and Retired’된 이들이 위로받기(Being Comforted) 위해 걷는다는 얘길 들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각자 다른 이유로 걷지만 우린 같은 길에서 만났다(Different People, Different Reasons but Now We all are on Camino).

여러분은 왜 사시나요? 왜 인생길 걸으시나요?

스페인의 밤은 저물고 술은 더해간다.


2016.10.21. 오후 11:35에 꾸벅꾸벅 졸며 알베르게 주방 탁자에 앉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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