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물고기는 세로로 죽는다
이번 글들은 어쩌면 독자들과 함께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매일 공유하며 호흡하면서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글이 완성되어 가는 느낌이다.
일주일 째 와이프의 해외 휴가로 애들을 보느라 정신 없다. 새벽 1시, 이제서야 빨래와 설겆이를 마치고 탁자 앞에 앉는다.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밤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도착할 와이프가 깨끗한 주방을 보고 기뻐할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다.
전날 오후 ‘무료 현직자 취업 멘토링 서비스’를 하는 코멘토의 이재성 대표가 찾아왔다. 내가 있는 패스트파이브 6층은 오늘 저녁에 있을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로 어수선했다. 그래서 3층으로 내려왔다. 앗! 여기엔 수제맥주가 있다. 후배는 커피 난 당연 맥주다. 그리고 얘기가 이어진다.
오늘 무슨 글 쓸지 고민이다 했더니 그 후배는 왜 이번엔 디자인 씽킹인지 묻는다. 그래서, 지난 번 책이 린스타트업 기반에 실행(Execution)을 강조한 책을 썼으니 이번엔 그 앞단에 해당되는 사업 아이템의 발굴 분야를 쓰고 싶다고 했다. 사업 아이템 발굴은 아무래도 문제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 있어야 되며, 문제를 인식하고 정의하기 위해서는 관심 영역에 있는 고객 또는 사용자들에 대한 이해, 즉 공감(Empathy)이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나보고 그 얘길 오늘 쓰란다. 짜슥! ㅎㅎ
그렇지만, 난 오늘 이 얘기를 자세히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이 부분은 앞으로 두고 두고 우려먹어야 되는 이번 글의 핵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 천천히 천천히.
한달 전부터 딸래미가 학교 실험과학에서 선물 받아온 물고기 구피 한마리를 키웠다. 태어나서 움직이는 것 키워 본 적은 창업자와 딸래미 밖에 없어서 구피를 어찌 키울 지 걱정도 되었다. 한 3주 정도 지나서도 이놈의 구피가 잘 살아 있다. 한마리라 외로워 할 것 같아 지난 주에 구피 세마리를 더 사왔다. 그런데 일주일 새 두마리가 죽었다.
첫번째 구피의 죽는 모습을 잘 관찰해 보니 구피는 기운이 빠지면 가로로 지탱을 못하고 세로로 선다. 그리고, 다시 가로로 돌아가려고 발버둥 치다 결국 하얀 배를 드러내며 죽는다. 두번째 구피도 똑 같은 패턴을 반복하다 죽었다. 가로로 살다 세로로 죽는다.
사람은 직립보행을 하며 세로로 살다 죽으면 가로로 돌아간다. 일어나려 발버둥 치면 다시 설 수 있으나 다리 힘이 빠지면 이내 주저앉고 눕는다. 세로로 살다 가로로 죽는다.
가로로 살다 세로로 죽는 구피나 세로로 살다 가로로 죽는 사람이나 각자의 시선에서 보면 상대방의 패턴이 이상할 수 있다. 단지 살려고 발버둥 치는 방향만 다를 뿐인데. 사람의 시각으로 보니 물고기가 가로에서 세로로 죽는게 이상할 뿐 물고기 시각에서 보면 사람이 이상한거다. 그런데, 원래 그런거야 라고 치부해 버리면 의심도 하지 않게 되고, 차이를 발견할 수 없게 되며 거기서 아무 통찰력(Insight)을 이끌어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난 살려고 어느 방향으로 발버둥 치고 있나? 그 방향이 맞는 방향인가?
디자인 씽킹 창시자 IDEO 대표 '팀브라운'은 그의 책 '디자인에 집중하라'에서 대상 잠재 소비자를 언급하며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깊은 혜안을 얻기 위해서는 남들과는 전혀 다르게 살고 생각하고 소비하는 극단적인 사용자들을 찾을 수 있는 가장자리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규분포 곡선의 평균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통찰력보다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극단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덕후(통계학에서는 아웃라이어라 부른다)들을 통해서 얻는 통찰력이 더 많다는 것이다.
우린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저 '저 친구는 왜 이래, 왜 별라?'라고 무시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다름의 차이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력도 방치하게 된다.
그런면에서 보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관찰을 방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도 삐딱선을 타면서 후배의 얘기대로 하지 않고 엉뚱한 물고기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지 ㅎㅎ
2017.12.16. 02:18에 홀로 식탁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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