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거꾸로 생각하기
월요일 아침, 함박눈이다. 세상이 순백으로 변했다. 아름답긴 한데 강남역으로 가는 교통편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길엔 설설 기는 고급 후륜 승용차들이 제법 보인다. 가기 힘들어 아예 길가에 버려진 것들도 보인다.
집을 나서면서 일명 '거꾸로 우산'을 들고 나왔다. 접히는 방향이 정 반대라 차 안에서도 우산을 쉽게 접을 수 있다. 그 편리함 때문인지 요즘엔 심상치 않게 눈에 띈다. 문득 '거꾸로 우산'이 언제 발명되어 출시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바로 구글의 도움을 받았다.
'거꾸로 우산'은 영국인 'Jenan Kazim'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는 2008년 장모님과 대화 중에 거꾸로 접히는 개념의 우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2010년부터 관련 특허를 획득하고 2014년 프로토타입을 거쳐 2015년 5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그 제품은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 당시 킥스타터 캠페인을 보면 'Revolutionary Inside Out Umbrella'라고 소개하고 있다. 첫 출시 당시만 해도 가히 혁명적인 우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우산의 정식 명칭은 발명자의 이름을 따서 'KAZbrella'이다.
이 우산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먼저 펼 때 일반 우산과 반대로 펴지기에 얼굴이나 눈을 찌를 염려가 덜하고, 접을 때 좁은 공간에서 비를 맞지 않으며 접을 수 있고, 보관할 때도 거꾸로 두기에 물이 흐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기존 우산의 형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전 2000년부터 그 흔적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 방식은 다 접혀 있는 것을 올리며 초승달처럼 펴지는 방식이다. 그 4천 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어느 누구도 안에서 밖으로 거꾸로 접히거나 펴는 우산의 개념을 제품화하지 못했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불편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우산에서 혁신을 이뤄내야겠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기존 우산이 충분히 불편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가.
아무튼 4천 년 기간 동안 혁신이 없던 우산을 Kazim은 해냈고, 현대의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하여 세상에 정식 제품으로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신논현 617호 골방에 있는 나도 들고 다니고 있고.
사실 아이디어 발상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이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기법이다. 브레인스토밍은 머리(Brain)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폭풍(Storm)이 몰아치는 것처럼 풍성하게 만드는 것으로, 타인의 아이디어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붙이는 식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만들어 내는 발상법이다. 이 기법은 후에 '밥 에벌(Bob Eberle)'에 의해 스캠퍼(SCAMPER) 기법으로 한층 진보하였다. SCAMPER 기법은 아이디어를 대체하거나(Substitute) 결합하고(Combine) 수정하는(Modify) 등등의 뜻을 품고 있는 영단어들의 앞글자를 조합해서 만든 용어인데 거꾸로 하는 것은 SCAMPER 중 제일 마직막 철자인 'R'에 해당하는 Reverse(뒤집기, 재정리하기) 방식이다.('기업가정신의 이해' 제12장 아이디에이션 워크숍 인용, 중소기업청/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발행, 이춘우 외 6인 공저)
Reverse 기법은 기존 것들의 모양이나 순서 등을 거꾸로 하거나 재배치함으로써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맥도널드가 주문 시 지불을 먼저 하도록 순서를 바꿔 테이블의 회전율을 높인 것이나, 누드 김밥처럼 김이 오히려 안으로 들어가서 주목을 받은 경우나, 이번 '거꾸로 우산'처럼 우산을 펴거나 접는 방식을 거꾸로 하여 편의성을 개선한 경우 등이 이 기법의 주요 사례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기법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1) 레이아웃이나 패턴을 180도 다르게 배치하면 어떨까, 순서를 뒤집어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 역할이나 위치를 다르게 바꿔보면 어떨까, 위아래를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 등의 질문을 자주 던져야 한다.('기업가정신의 이해' 제12장 아이디에이션 워크숍 인용, 중소기업청/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발행, 이춘우 외 6인 공저)
뭐 사실 위 두 문단은 '기업가정신의 이해' 중 내가 쓴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인용 표시 제대로 안 하면 욕먹는 세상이라 나도 철저히 자기 인용이지만 출처를 밝혀 둔다.
물론 Reverse 기법을 통해서도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발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근간에는 지금 쓰는 우산에 대한 투정(불편함 호소, 문제제기), 개선에 대한 공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관찰과 집중력이 있음을 결코 간과할 순 없다. 어쩌면 이런 사소해 보이지만 수천 년 무시되어 왔던 것들에 대한 투정이 세상을 바꾸는지도 모르지.
함께 글을 쓴다고 하면서 이번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몇 분은 여러 코멘트로 나를 도와주고 있다. 그중 LG전자 다니는 박만수는 '관찰은 조사와 다르다. 조사를 하면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 게 되지만, 관찰을 하면 고객이 뭘 모르는지 알게 된다. 성공적인 조사는 원하는 걸 줘서 고객을 만족시키지만, 성공적인 관찰은 생각지도 못한 걸 줘서 고객을 감동시킨다.'라는 주옥같은 의견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고맙다. 조만간 술 한잔 사야겠다. '거꾸로 우산'이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다.
난 오늘도 성공적인 관찰을 위해 눈을 부라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2017.12.18. 오후 9:54 617호 골방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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