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Give a Hand

2019.02.25. Day 23

by 메추리

25 Give a Hand
2019.02.25. Day 23

새벽 2:30분쯤 일어나 늘쌍 하던 순례기를 써 내려간다. 어제 걷다가 너무 힘들어 애경 누님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새벽에 눈 뜨니 동영상을 하나 보내주셨다. ‘Helene Fischer’가 부른 ‘Ave Maria​’. 첫 소절 ‘아베 마리~이~아’부터 울컥해진다. 떨림이 있는 부분이 왠지 가슴을 더 두드린다. 이미 게임 끝난 거다. 평온해지며 눈물이 흐른다. 힘든다고 할 때 손 하나 내밀어준 것에,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음악을 보내준 것에.

순례기 쓰느라 사실 거의 2:30부터 눈은 떠 있었지만 4시쯤 브런치에 업로드하고 잠시 눈을 붙여본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거의 5시쯤이다. 같이 방 쓰는 친구가 일어나 짐을 정리한다. 나도 일어날까 하다 조금 더 누워있었다. 그러다 6:30에 일어나 어제 먹다 남은 볶음밥에 토마토 곁들여 먹는다.

7:30에 출발한다. 알베르게 아저씨가 마을 어귀까지 나와 방향을 알려주신다. 고마운 콴 아저씨.


다시 어제로 돌아가자. 기진맥진 상태로 알베르게에 겨우 도착하여 체크인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한 한국인 친구가 들어온다. 여기 와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빨래도 함께 세탁기를 셰어 하기로 했다. 세탁에 건조까지 해서 인당 3.5유로로 해결했다.

내가 가져온 신라면과 한국 친구가 알베르게 주인에게서 얻어온 볶음밥으로 저녁을 맛있게 해결하다. 그리고 다시 맥주를 한잔 하다. 자기 전 약간의 의무감으로 책을 읽다. 실상은 두꺼운 딜리트 책을 다 읽고 버리기 위함이다. 이제 진정 배낭에서 딜리트되는 거다. 그래도 버리기가 아까워 뒤에 오는 한국 친구들을 위해 알베르게 책장에 고이 꼽아 두었다.


계속 걷는다. 작은 마을 두 개를 지나 언덕 구간이 시작된다. 8킬로 넘어가면서 지친다. 다리도 아프고. 벌써 그만두고 싶어 진다. 오후도 아닌데.

9:46 10.56킬로를 와서 잠깐 쉬다. 기부제로 운영하는 언덕 위 작은 가게에서 요구르트와 사과를 먹다. 아픈 무릎에 파스도 넉넉히 바르고. 5유로 기부 후 사과 두 개 더 가져왔다. 그 친구랑 나눠먹고 10:11에 출발하다.

태양은 이미 뜨겁다. 오금도 더 땡겨오고 거의 기진맥진 상태다. 오른발 두번째, 네번째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쓰라리기 시작한다. 이러면 안 되는 데를 계속 외치며 걷는다. 평화를 찾으러 ‘Dona Novis Pacem, 도나 노비스 빠쳄, 주여 평화를 주소서’을 부르지만 ‘존나 더버서 빡침’ 상태만 계속된다. 어쩔?

아스토르가(Astorga) 시내로 가는 길은 왜 이리 언덕이 많은지. 오금이 저리고 아파 보폭을 좁혀 조금씩 움직여 높은 언덕을 올라간다. 딱 실신하기 바로 전인 11:45에 아스토르가 까페에 도착했다. 그것도 첫번째 보이는 곳으로. 17.86킬로를 이미 왔다. 이거 먹고 또 걸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먹자.

맥주 두잔, 코코아, 오렌지 주스 그리고 또르띠아. 왜 음료수를 많이 먹냐구? 스페인어를 못 알아들어 잘못 시켰다. 쩝!

오늘 목적지 라바날(Rabanal)까지 남은 거리를 보니 아직도 20킬로다. 지저쓰. 지금 이거 걸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물으니 자기는 전전 마을인 산타 까딸리나(Santa Catalina)까지 간단다. 남은 거리 10킬로 정도. 원래 목적지에 딱 절반 수준이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바로 포기하고 이 친구를 따라가기로 했다.

12:30 출발. 진심 죽을 맛이다. 그래도 계속 걷는다. 밉도록 뜨거운 태양과 얄궂은 언덕이 이어진다. ‘부엔’이를 집고 걷는데도 불구 오금은 계속 저려온다. 힘들다. 미쳤지 내가 미쳤지. 왜 돈 쓰고 와서 생고생하는지. 도나 노비스 빠쳄. 아니 존나 더버서 빡침.

계속 한국 친구 꽁무니만 따라간다. 점점 간격이 벌어진다. 좁혀야 산다. 이 친구 놓치면 난 오늘 끝이다. 비몽사몽 상태로 계속 따라간다. 오후 1시 넘어가면서 태양은 더 독해진다. 간격이 멀어질만하면 그 친구가 기다려준다. 힘들면 쉬다 가도 된다며 말도 건네주고. 그런데 여기서 쉬면 못 일어날 것만 같았다. 계속 가는 거다.

2:45에 27.94킬로 40,355걸음을 걸어 알베르게에 무사히 도착했다. God Bless Me. 바로 콜라 500밀리 원샷하다. 온몸이 쑤시지만 지금은 19도의 따뜻한 햇살 아래 너무 좋다. 참으로 노곤한 오후다.

샤워를 마치고 맥주 한잔의 여유를 갖는다. 지금은 어느 누가 천금을 줘도 안 바꾼다.

빨래 돌리며 다시 듣는 Helene Fischer의 아베마리아는 예술이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목소리에, 선율에, 이 곡을 소개해준 분께 감사하는 마음에.

비단 순례길 걱정해주는 애경 누님의 도움뿐만 아니라 같이 걸은 이 친구도 내가 진정으로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었다. Gave me a hand. 손 하나 내밀어 주었지만 받는 나는 크나 큰 힘과 도움이 되었다.

이 친구와 저녁을 함께 먹는데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자기도 순례길이 막바지로 가면서 어제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기로 결심했다고. 그런데 어제 나를 만난 것이고 오늘 함께 걸으니 너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보여 그냥 도와주고 싶었다고.

그렇다. 이게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원래 자기만 생각하던 사람도 바뀌게 되는 놀라운 마법이 있는 곳. 아직도 온몸이 쑤시지만 오길 잘했다.

Give a hand. 그저 손 한번 내밀자. 그럼 다 해결된다. 손 내민 사람이 오히려 더 큰 위로를 받는다. 어제 결심을 하고 바로 도움이 필요한 나를 만난 친구처럼 도와주면서 본인도 큰 위로를 받게 된다.

또 한 손이 다가온다. 와인 따라주는 손. ㅎㅎ 그런 와인도 들어가니 감동도 깊어진다. 아름다운 밤이다.


2019.02.25. 오후 9:02에 침대에 누워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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