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Day 36
38 산티아고, 야고보 무덤 위에 지어진
2015.10.24. Day 36
날자를 잊었다. 그런 날자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 건 순례기를 쓰려고 날자를 적기 위해서다. 이렇게 여기서의 시간은 나 모르게 흘러간다.
어제저녁 호텔은 한적하면서도 깔끔했다. 무엇보다 욕조가 있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산티아고 온 이래 처음 만난 욕조. 바로 뜨거운 물을 틀고 그 안에 몸을 던진다. 근육이 풀린다. 아 이런 게 또 행복이구나.
샤워를 마치고 간단히, 아니 무겁게 저녁을 먹었다. 역시나 문어숙회, 돼지고기, 샐러드다. 그거 다 먹고 나왔다. 그래도 쫌만 지나면 바로 다 소화된다.
이 45,000원 정도 하는 이 호텔의 최대 강점은 와이파이다. 너무나 잘 터진다. 여기서 두산과 NC의 플레이오프 4차전 하이라이트를 봤다. 두산, 올해는 뭔가 일낼 거 같다. 멀리 있지만 응원해본다.
산티아고의 공식 명칭은 'Santiago de Compostela,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산티아고라는 뜻이다. 산티아고 유해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할 때 이쪽 하늘에서 별빛이 반짝반짝 빛나서 찾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근데 왜 난 이때 NC 응원가가 생각나지? 반짝반짝. NC 팬들만 웃겠군. 인영이 보구 있나? ㅎㅎ
하튼 산티아고를 앞두고 잘 잤다. 아침 7시다. 초코바 하나로 가볍게 때운다. 밤새 비가 왔었나 보다. 지금은 조금 흩날리는 정도. 모닝 샤워를 했다. 사실 아침에 샤워하는 건 순례자들에겐 사치다. 8시 전에 출발해야 하는데 다인실에서 샤워는 언간생심. 혼자 쓰니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다.
배낭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비는 그쳤다. 이제 5킬로만 가면 도착이다. 구름이 많이 껴서 그런가 어둡다. 표지석이 잘 안 보여 여기와 처음으로 손전등을 꺼냈다. 내 자전거에서 떼어온 LED 전등이다. 이 시간 순례자는 아무도 없다. 외롭다. 그래도 처벅처벅.
마지막 구간은 고소산에서 산티아고로 내려오는 길이다.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순례자 그룹을 만났다.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인사했다. 이제 3.5킬로. 시내로 접어들었다. 서서히 해는 떠오르고 도시가 형체를 드러낸다.
까미노 표지판이 점점 자주 보인다. 많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거다. 근데 길이 의외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좌회전 우회전을 시키더니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게 한다. 투덜거리며 그 길로 접어드는데 저기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 첨탑이 보인다. 'Oh my God'이 저절로 나온다. 눈물도 나온다. 뭐 콧물도 약간. 아, 이래서 이 길로 접어들게 만든 거구나.
이제 힘은 들지 않는다. 배낭 무게는 잊은 지 오래. 덩달아 속도도 빨라진다. 다시 성당 첨탑은 사라졌다. 또 걷는다. 이제 성당 측면이 보인다. 오래되어 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첨탑 2개를 보니 또 눈물이 터진다. 입에선 'Oh my God'이 또 터져 나온다. 옆에 스페인 아주머니가 쳐다본다. 조금 더 측면으로 가니 순례자 세분이 사진을 찍어달란다. 사진 몇 장 찍어주고 내려와 성당 모퉁이를 돌았다. 오브라도이 광장이 펼쳐지고 산티아고 대성당이 나타난다. 오전 9:30분.
이상하게 느낌은 별로였다. 성당 보수공사 중이라 그런지 각종 건설장비가 성당 외관을 상당 부분 가리고 있었다. 다들 펑펑 운다던데 그게 아닌가 보다. 그래도 기념사진은 찍어야 될 거 같아 순례자들에게 사진 좀 부탁했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례자증서(콤뽀스텔라)를 받으러 가야 한다. 물어물어 그곳으로 갔다. 순례자여권(크레덴시알)을 내미니 어디서 출발했는지 묻고는 그 경로 동안 찍은 스탬프(세요)를 꼼꼼히 살핀다. 그러더니 순례인증서를 준다. 비록 마지막 111킬로 구간이지만 나도 완주했다. 이제 기분이 좋아진다.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본격적으로 완주의 기분을 느낀다. 사진도 더 찍고 말이다. 등산화를 벗어서 들고 찍지 못한 게 아쉬울 뿐.
배낭을 맡기러 가야 한다. 그리고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한다. 배낭을 맡기니 맘이 한결 더 편하다. 근처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또 문어(Pulpo)를 시켰다. 딴 거 시키려 해도 실패할 거 같아 맛이 검증된 문어만 시키는 것 같다. 거기에 고로케 몇 개와 계란 스크램블도 시켰다. 와인 한잔 하니 몸이 풀린다. 12시 정오에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다.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30분 전에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러 쉬를 하는데 오줌에서 문어 냄새가 올라온다. 쩝! 문어를 너무 많이 먹었어. ㅋㅋ
미사 30분 전임에도 불구 성당은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난 앞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내 옆엔 핀란드 할머니가 앉아 있다. 가볍게 인사했다. 그 할머니는 의자 아래쪽에 받침대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게 발 받침대가 아니라 무릎 꿇고 기도하는 데라 밟으면 안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성당 정면엔 야고보상을 가운데 두고 화려한 황금빛의 부조들이 장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순례자들을 잇는 중재자로 그 가운데 야고보가 앉아 있다고 한다. 그 지팡이를 든 온화한 모습의 야고보는 이 성당의 가장 큰 축복인 듯.
미사 시작 10분 전에 수녀님이 나오시더니 미사에서 부를 성가를 하나 알려주신다. 청아한 수녀님의 목소리에 따라 순례자들이 노래한다. 한마디 한마디씩. 그리고 미사는 시작된다.
몇 번 더 일어나고 않기를 반복하고 신부님 강론 듣고 등등 하니 약간 졸리기까지 했다. 뭐 스페인어를 알아 들어야지. 미사는 거의 마지막으로 가는 것 같다. 신부님들이 떡을 떼어 나눠주는 성채 의식 순서이다. 나도 앞으로 나가 줄을 섰다. 혀를 내밀라 하신다. 그 혀 위에 둥근 것을 올려주신다. 그걸 입에 물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터졌다. 아주 격하게.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엎드려 울었다. 왜 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계속 나왔다. 이건 순전히 다른 느낌의 감동이었다. 순례를 완주해서, 야고보(산티아고)를 뵈어서, 예수님 사랑이 감사해서 운 울음과는 다소 달랐다. 계속 꺼억꺼억 우니 오른쪽 핀란드 할머니는 티슈를 챙겨주기고 왼쪽 할아버지는 등을 두드려 주신다.
성당 앞 광장에 도착했을 때도 이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성당 안에서, 그것도 약간 지루했던 미사가 끝나고 떡을 떼어먹은 후 빵 터지다니. 나도 날 잘 모르겠다.
미사는 마쳤다. 천천히 성당을 둘러봤다. 아름다운 부조들이 여럿 보인다. 사이사이 작은 예배당들도 보이고. 좀 돌아가니 긴 줄이 있길래 섰다. 제단 정면에 있는 야고보상을 만나러 가는 줄이다. 올라가서 야고보상 등을 안았다. 따스함이 밀려온다. 재단 밑으로 좁은 계단이 있어 내려갔다. 'Juan Pablo xxxxxxx'라 적혀 있는 사람의 묘다. 그냥 지나쳐서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성당을 나왔다.
이젠 성당 박물관을 둘러볼 차례이다. 하나하나 보면서 3층까지 올라간다. 성당과 붙어있는 한 건물 안에 박물관을 꾸며놓은 것이다. 다 올라가니 넓은 공간이 나온다. 첨탑이 좀 더 가까이 보인다. 거기서 사진 촬영을 하다 며칠 전 만났던 '프랑스와' 할아버지를 만났다.
프랑스와: Did you see the tomb of James(야고보, 산티아고)?
나: Not yet!
프랑스와: Do you know where it is?
나: I don't know. Let me ask her.
마침 옆에 박물관 안내직원이 보였다. 물어보니 예배당 주 제단 바로 아래 있단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다시 예배당을 찾았다. 가서 보니 아까 지나쳤던 곳이다. 내가 본 'Juan Pablo'는 야고보를 추앙한 다른 분 이름인 것 같다. 다시 보니 입구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Sancti Iacobi'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오 야고보여 이 우매한 순례자를 용서하소서. 보고도 지나친 엄청난 무례를 용서하소서. 야고보의 유해 위에 세운 성당이란 사실을 잊었음을 용서하소서.
바로 그랬다. 성당 제일 정면 제단 아래가 그분의 무덤이다. 그의 유골함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기도한다. 순례길 무사히 마침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앞날의 축복을 구했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우리나라의 건강한 발전도.
뭐 대통령 바꿔달란 기도는 하지 않았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ㅎㅎ
성당을 나왔다. 지금부턴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산티아고 기념 T도 샀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호텔로 움직여야 한다. 배낭을 찾아서 다시 무장하고 호텔로 출발이다. 비 맞으며 구글맵을 보고 걷는 것이 고역이지만 호텔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짐을 풀고 샤워까지 마치니 여기가 천국이다. 비도 그쳤다. 이젠 주린 배만 채워주면 된다. 다시 산티아고 대성당 쪽으로 향한다. 그 주위가 식당이 많거든. 한 식당에 들어갔다. 혼자 왔는데도 해물 바베큐와 빠에야가 된단다. 다른 집은 다 2인 이상만 해준다는데 여긴 1인분이 된다. 이젠 문어도 질렸다.
양이 푸짐하게 나왔다. 약간 양념도 되어 있어 짭짤 고소하다. 또 와인이 속을 달래준다. 와인 역시 신이 만든 최고의 선물이다. 그래서 주님이라 부르는지도. 잠시 후 나온 빠에야도 예술이다. 해물과 노란색 물이 든 빠에야. 드디어 산티아고 와서 처음 먹어본다.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대로 뻗었다. 산티아고 오기까지 가졌던 긴장이 다 풀린 탓이다. 새벽 2시에 눈은 떠졌지만 글은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잠자리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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