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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Oct 04. 2020

커피를 마시며

커피를 마시며

10월 초 일요일, 어제에 이어 대학로를 찾다. 커피 직접 볶는 집에 들러 에티오피아 커피를 하나 시킨다. 간 커피가루에 뜨거운 물이 닿으니 잔 거품이 일며 맑은 커피가 내려온다.

하얀 잔에 담긴 자주빛깔 커피를 보니 나의 대학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다. 1학년 작문 수업시간에 ‘커피’를 주제로 글을 써야 했다. 사실 그때는 커피맛을 잘 몰랐다. 커피만 먹으면 잠도 안 올뿐더러 배가 아파 바로 화장실을 찾곤 했었다.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커피는 단순히 잠을 쫓기 위한 음료에 불과했다. 그랬는데 왜 그때 커피와 관련된 낭만을 주저리주저리 썼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여친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지금은 커피가 좋다. 특히 맑은 드립 커피가 좋다. 적절한 산미가 돌며 약간의 달콤함이 올라오는 에티오피아나 꽃향기 가득한 파나마 게이샤가 좋다. 함께 마시는 커피보다는 홀로 즐기는 커피가 더 좋긴 하다.

30년 전 파릇파릇 청년시절 커피와 지금의 커피는 많이 다르지만 같은 건 오늘도 혼자 마신다는 거다. 가을바람 불어오는 창가에서 바람맞으며 커피를 마신다. 커피의 상큼함을 도와줄 무화과 타르트도 같이 먹는다. 바삭함과 달콤함이 입안을 즐겁게 해 준다.

중년. 외로운 시기이다. 아내와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있지만 요즘 계속 마음 깊숙한 곳에서 외로움이 올라온다. 그래서 홀로 대학로를 더 찾는지 모른다. 나의 근원에 자리 잡은 감성을 더 끄집어내기 위해서, 옛 추억에 더 잠기기 위해서, 그래서 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코믹한 연극을 통해 외로움을 잠시 잊고, 로맨스 극을 통해서 옛사랑을 소환하고, 비극을 통해서 나의 감정을 쏟아낸다. 그 쏟아냄은 나에게 있어 통쾌한 배설이고 카타르시스이다.

커피도 바닥이 보인다. 더불어 감성도 말라간다. 그래서 일어난다. 다시 감성을 채우기 위해 난 소극장으로 향한다.

가을의 산들바람이 나를 보듬어 주는 것 같다.

2020.10.04. 오후 2:06 대학로 어느 커피집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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