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고 싶지 않은 불행했던 기억들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를 보고
- 지우고 싶지 않은 불행했던 기억들
“아무도 이 사실을 몰라야 한단다.”
왜? 그건 그 속에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지.
이 뮤지컬은 ‘메리 포핀스’라는 동화를 바탕으로 한다. 동화이지만 약간 무서운 스토리 전개이다. 어떻게 보면 동화는 강한 선악 대비 구조로 되어 있고 때로는 독약과 마녀도 나오는 등 섬뜩한 내용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 극의 배경은 1920 - 1930년대 독일이다. 고아 네 명을 입양해 키우던 한 가정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고 아버지 그라첸 박사가 사망한다.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보모 메리는 네 아이를 구한 후 종적을 감추고 네 아이들은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형사는 이 사건을 추적하다 수첩 하나를 남기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십 대 초중반의 아이들은 왜 기억이 사라졌을까.
이 극을 어떤 이는 ‘심리 추리 스릴러 뮤지컬’이라 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찾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밝히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최면 등이 나오고 아이들을 향한 이상했던 실험도 나오면서 극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극은 전개된다. 결국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범인도 밝혀진다.
네 아이는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불행했던 과거를 다 잊을 수 있는 최면을 다시 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 불행까지도 간직하며 살 것인가. 극은 다음과 같은 대사로 끝이 난다.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이 불행과 동행하겠습니다.
마지막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했다. 나도 수많은 불행과 행복의 순간이 있었다. 살아온 인생에서 불행을 다 삭제한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어둠이 있어야 빛의 소중함을 더 알듯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2012년 창작극으로 초연을 한 이후 올해가 다섯 시즌째라고 한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각기 다른 한 아이의 시선으로 각색해서 매 시즌마다 새로운 재미를 준다고 하는데 난 이번이 첫 관람이라 전작과 비교할 수 었어 더 부연설명은 못하겠다.
전반적으로 이 극은 뮤지컬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연극적인 요소가 좀 더 강하다고 생각된다. 달리 말하면 뮤지컬 넘버 중 극을 마치고도 입속을 맴도는 넘버가 없다. 살짝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다고 멜로디가 어색했다던지 배우들의 가창력이 부족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단지 내 취향과는 조금 맞지 않았다는 것이지.
술 먹을 때 아쉬운 취기가 다음 술잔을 부르듯 약간 허전한 공연은 다음 공연을 부르는 법이다. 그래서 공연 마치고 나오던 5시 무렵 6시에 시작하는 연극으로 바로 현장 예매했다. 역시나 대학로라 이게 가능해 좋다.
11월에도 중년 남자의 대학로 배회는 이어진다.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뜨듯이 다음 주엔 다음 주의 더 멋진 공연이 있다. 그래서 오늘 밤도 행복하다.
2020.11.07. 오후 8:24 대학로 어느 술집에서 쓰다.
#블랙메리포핀스 #심리스릴러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