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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Nov 22. 2020

연극 '아마데우스'를 보고

살리에리의 눈으로 본 모차르트

연극 ‘아마데우스’를 보고

-  살리에리의 눈으로 본 모차르트


지난 금요일 퇴근하며 바로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BBCH로 달려갔다. 바로  연극 아마데우스를 보기 위함이다.


영화 이전에 이 연극이 있었다.


이 연극을 볼 때까지만 해도 이 극은 영화 아마데우스로 대중에게 친숙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얘기를 그대로 무대로 옮겨 두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1979년 영국에서 먼저 연극으로 공연되고 그게 1984년 영화화되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거다. 그러니 이 연극이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엔 많이 늦은 2018년에 초연되었다.


첫 시작은 내려진 커튼(막) 앞으로 노인 살리에리가 휠체어를 타고 나와 고백을 한다. 자신이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어두운 무대 위 씁쓸한 읊조림과 회상이 오버랩 되며 막은 올라가고 과거로 돌아간다.


‘반짝반짝 작은 별’ 멜로디가 들려온다. 동요로도 유명한 이 곡이 청명하게 울려 퍼진다. 벌써 마음이 편해진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영화를 본 이들은 대부분 알겠지만 혹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적어본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살리에리가 음악으로 신에게 헌신을 맹세하며 음악적 재능을 위해 기도한다. 금욕적 생활을 유지하며 작곡가로도 성공을 거두면서 오스트리아 궁정악장이 된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애송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접하며 그의 천재성에 좌절하고 그의 방탕함에 분노한다. 신은 왜 공평하지 않는가? 더 망가지고 타락한 모차르트 같은 인간에겐 왜 음악적 재능을 주는 것인가. 왜 자신에겐 그런 재능을 주지 않는가 부르짖으며 신을 원망한다. 그리고 신과 모차르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는데.


흔히 천재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이 진짜 천재를 만나면 좌절하기도 한다. 더욱이 자신은 피 터지게 노력하는데 노력도 안 하고 지저분한 생활을 하는 놈이 더 음악적 성공을 거두니 더 참지 못했을 터. 천재를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의 좌절과 질투 그리고 분노가 극 전체에 걸쳐 이어진다.


그렇지만 극 전체가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가 오히려 어둡고 침울한 느낌이 지배한 반면 연극은 좀 더 밝고 코믹 요소도 많았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끊임없이 등장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있어 보는 내내 행복했다. 유머 코드도 나와 맞아서 많이 웃기도 했고. 이건 순전히 영화에서와 같은 하이톤의 특이한 웃음소리를 내는 최재웅 배우의 빛나는 연기력 덕이다.


1부는 모차르트의 천진난만한 모습, 비엔나 입성, 결혼, 그리고 오페라 연주 등이 펼쳐지며 마지막은 강렬한 레퀴엠의 진노의 날(Dies Irae)로 끝난다. 빠른 템포의 곡으로 내가 레퀴엠 중 ‘Introitus’, ‘Kyrie’와 함께 넘 좋아하는 곡이다. 20여분의 인터미션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지 몰랐다. 빨리 막이 오르고 2부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1부에서 이미 연극적 요소와 오페라가 결합되어 연극으로 포장한 오페라 느낌이 많이 났었는데 2부는 과연 어떻게 표현할까?


2부에선 좀 더 다양한 오페라가 나온다. 평민들의 사랑을 그린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하기까지 겪었던 살리에리의 방해와 모차르트가 돌파해갔던 에피소드도 재밌었다. 오페라에 발레는 당시 오스트리아에선 금지였다나? 더군다나 신분이 다른 사람과의 사랑은 동생 ‘마리 앙투아네트’를 파리로 보낸 조제프 황제 입장에선 용납이 되지 않았나 보다.


‘피가로의 결혼’ 오페라를 보니 문득 예전 총각시절에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ㅎㅎ 결혼 전 사귀었던 한 여인과 있었던 일이다. 결혼하자고 청혼한 이후 차이고 관계가 서머 서먹 해졌을 때 내가 사정해서 마지막으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피가로의 결혼’ 티켓을 하나 주며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공연 보러 오라고 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깔끔하게 양복을 입고 꽃 한 송이 들고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으로 갔다. ‘피가로의 결혼’의 막은 올라갔지만 내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있었다. 슬픈데 너무 슬픈데 그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피가로의 결혼’은 왜케 재밌는 고얏! 오페라가 다 끝나 가는데도 그 묘한 기분이란. ㅎㅎ


"내 입술은 지저분하지만 내 심장은 그렇지 않다오"

(오페라 작곡을 의뢰하는 살리에리에게 모차르트가 한 말)


이 연극은 오페라 장면에선 오페라 무대를 구현하고 실제 오페라 가수들이 멋진 아리아를 불러준다. 그래서 연극이지만 오페라적 요소도 있고 가끔 뮤지컬적인 요소도 있어 한 순간도 한 눈을 팔 틈이 없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교회에서 음악 작업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회로 명성도 얻고 음악 스승도 만나면서 실력도 키워나간 모차르트에게 있어 아버지의 죽음은 큰 후원자, 큰 버팀목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아버지 사후 모차르트는 더 방탕하게 되고 건강도 악화된다. 모차르트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아버지 복장으로 레퀴엠(진혼곡)을 의뢰하는 살리에리. 레퀴엠 작곡비를 주며 틈틈이 아버지 복장으로 변신해서 하는 작곡 압박, 돈이 부족해 그 압박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차르트. 결국 살리에리의 복수는 레퀴엠 의뢰 및 압박으로 모차르트를 죽이고, 레퀴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신이 주는 음악적 재능을 가로채는 것이었나? 이렇게 미치도록 두 대상에게 복수하고 싶었나?


레퀴엠 작곡의 압박에서도 다른 오페라 의뢰가 들어온다. 변두리 극장에서 하는 서민들을 위한 오페라다. 영화에선 장모가 따발총처럼 쏘아대며 구박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나오는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도 연극 중에 들을 수 있다. 이 고음이 연발하는 곡을 직접 듣다니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 ‘돈 지오반니’의 명장면도, 그 오페라에서 살아난 살리에리가 작곡한 모차르트 환영곡도 극의 재미를 더해준다. ‘돈 지오반니’ 하니 예전 2002년 체코 프라하에서 본 것이 기억난다. 단순 바람둥이 얘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버지의 얘기를 집어넣은 줄 몰랐었는데. 참,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오페라 장면은 다 체코에서 촬영했다는 건 안비밀  ㅎㅎ


“작곡은 쉬워, 결혼생활이 어려워 그렇지”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게 한 말)


모차르트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고 와이프도 떠난다. 살리에리가 레퀴엠 작곡 압박을 계속 넣고 끝엔 자신이 직접 악보를 받아 쓰며 허약해진 모차르트에게 곡 작업을 밀어붙인다. 그렇게 한 천재는 생을 마감해간다. 자신이 작곡한 레퀴엠이 자신의 죽음의 순간에 흘러나온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쓴 것처럼. 레퀴엠 ‘Kyrie’가 나오며 늙은 살리에리가 막 앞에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독백이 이어진다.


“신은 내가 살아남아 내 음악이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고통을 주셨다”


흘러나오는 느린 템포의 ‘반짝반짝 작은 별’. 원래 이 곡이 이렇게 슬픈 멜로디였었나?


이 연극의 주인공은 살리에리이다. 평범한 살리에리의 눈으로 바라본 모차르트 음악의 천재성을 그린다. 그런데 제목은 ‘아마데우스’이다. 연극과 영화 모두 남우주연상은 살리에리 역을 한 배우가 받았다. 마지막 살리에리의 대사도 우리에게 주는 '용서'다. 평범한 우리에게 주는 지극히 평범했던 살리에리의 용서 메시지. 뭔가 다른 느낌이다.


내가 본 캐스트는 지현준(살리에리), 최재웅(모차르트)이다. 지현준은 그 많은 대사와 복잡한 감정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서 폭발적으로 분출시켰다. 그의 독백, 대사 하나하나에 몰입되었고 울고 웃었다. 사실 지현준이 극을 다 이끌어 갔다. 모차르트 역의 최재웅도 천재의 광기를 멋진 웃음소리와 함께 잘 표현했다. 이 둘의 조합이 넘 훌륭해서 다른 캐스트 조합은 어떨지 모르겠다. 젠더 프리 역을 소화한 차지연의 살리에리도 좋다고 하던데.


연극이지만 오페라 공연도 나오고 뮤지컬 요소도 있고 무엇보다 20여 곡 가까이 나오는 모차르트의 음악은 3시간 가까운 연극임에도 지루함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극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한 주간의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벅찬 행복감까지 덤으로 채워준다.


음악이 있어 더 좋은 아마데우스, 대극장 연극에 어울리는 다양한 구성요소와 등장인물, 몰입하게 만드는 소름 돋는 연기, 반드시 또 보러 올 거다.


P.S.

실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사이가 좋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살리에리는 궁정악장으로 부와 명예를 다 얻은 사람이고 모차르트 사후 모차르트의 인기는 커가고 그의 곡이 인기를 잃어가자 그 후 음악 교육자로 후학들을 가르치며 후원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로는 슈베르트, 베토벤, 체르니와 모차르트의 아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궁정악장이 된 직후 '피가로의 결혼'도 직접 지휘를 했고, 모차르트와 함께 작곡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모차르트 VS 살리에리의 대결구도는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와 이 희곡에서 영감을 받은 피터 섀퍼의 ‘아마데우스’ 연극 영향이 크다고 한다. 바로 이 연극으로 영화가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모차르트의 천재성만 얘기하면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기에 연극이나 영화에서는 대결구도, 질투/복수 등의 요소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이 연극/영화 덕분에 살리에리 이름도 더 알려졌고 그의 곡에 대한 재해석과 공연도 있는 걸 보면 그도 복수의 화신(?)이란 오명 덕을 본 것은 아닐까?


2020.11.22. 오후 9:16에 쓰다.


오늘 아마데우스를 다시 보았다. 이번엔 차지연의 살리에리. 남성배역을 소화하는 여배우는 또 어떤 느낌일까? 살리에리가 콘스탄체를 유혹하는 장면을 제외하곤 감동을 주는 데 지현준의 살리에리와 별 차이는 없었다. 역시 두번째 볼 때 대사가 더 귀에 박히듯이 잘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 살리에리가 우리에게 베푸는 용서가 더 애잔하게 느껴졌다. (202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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