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마지막 워밍업

20210317

by 메추리

마지막 워밍업


아침 7시에 눈 떠지는 건 뭐지. 커피 한잔 뽑아 와서 전날 이마트서 사둔 치킨 갤러드로 아침을 해결하다.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마이클 부불레(Michael Buble)의 재즈를 크게 틀어 놓고 회사 일처리 몇 개 하다. 집에서 크게 틀면 와이프에게 혼나는데 넘 좋다. 그리고, 오랜만에 포트폴리오 회사랑 통화도 했다. 다들 내가 관둔다는 소식에 놀라네. 투자한 Super Tree의 최성원 대표는 내가 나간다니 더 이상 언블락벤처스 지분 보유의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지분을 되사고 싶다고 하네. 흑, 감동이다. 우리 제주서 꼭 술 한잔 하자구.


오늘은 처음으로 등산화 챙겨 신고 나간다. 집에서 1.4킬로 거리에 있는 제주민속오일시장으로 갈 거다. 햇살도 눈부시고 발걸음은 더 가볍고.


오일장, 정말 없는 게 없다. 한참 돌아다니다 35년 전통의 오일식당에 들어왔다. 왜냐? 사람이 무지 많거든. 여기서 따로국밥과 고갈비를 시켰다. 우거지와 콩나물이 들어간 돼지국밥은 제주에서 먹어본 것 중 단연 최고이다. 맑고 구수하며 약간 단맛이 입에서 감돈다. 이어서 나온 고갈비는 겉은 살짝 그슬렸는데 살은 넘나 부드럽다. 고등어구이와는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듯. 겉바속촉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듯. 어찌 막걸리를 안 먹을쏘냐. ㅎㅎ 맛이 너무 좋아 매일 올듯하여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오일장이라 2,7일에만 연다 하네. 아쉽다.


이호테우 해변부터 해안도로를 따라서 걷다. 모자가 날라 갈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분다. 그래도 오후의 햇살은 제법 뜨겁다. 내도, 외도, 연대포구까지 내달린다.


다시 큰길 도로 옆으로 걷는다. 조금 더 걷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잔 하면서 여유를 가져본다. 왜 주변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빨리 걷는가?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데. 다시 걷는다. 이번엔 쉬엄쉬엄 주변을 둘러보면서.


애초 목표로 했던 고내리까지는 아직 2시간은 더 가야 한다. 이건 내일 코스로 남겨둔다. 그 대신 가문동 포구까지만 걷기로 했다.


가문동 포구 근처 해안가에서 아주 이쁜 성당 비슷한 건물을 발견했다. 얇게 썬 현무암을 쌓아 올린 아담한 건물, 임마누엘의 집. 십자가가 보여 옆 계단을 통해 올라갔다. 잔디밭이 잘 조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둥그렇게 돌을 쌓아 두었다. 실타래를 감듯이 말이다. 산티아고 걸을 때 벌판에서 많이 봤던 모양새 그대로다. 바로 앞을 보니 전면의 유리를 통해 건너편 바다까지 훤히 보인다. 작은 십자가가 탁자 위에 놓여 있고 그 앞에 의자 대여섯 개가 둥그렇게 놓여 있다. 아름답다. 그리고 잠시 기도했다.


5:10에 가문동 포구에 도착하다. 춥다. 버스를 타려고 보니 다시 19분을 걸어야 한다. 이건 15.5킬로를 걸은 나에게는 무리한 요구이다. 카카오 택시 부르니 바로 온다. 갈 때는 편하게 가자.


밤 8시 무렵 전화가 온다. 내가 만든 코그니티브의 현재 대표 범준이다. 가장 바쁜 3월, 조합원 총회 자료 작성하고 잠시 쉬러 내려왔다는. 역사 애월에 집 구해 놓으니 자주 오가는 군. 범준이와 제주에서 빈집 리모델링 서비스하는 '다자요'의 남성준 대표를 만났다. 혼자 며칠 있다 수다 떠니 넘 좋다. 덕분에 스타트업 업계 얘기 많이 들었다. 남대표는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는. 세상 좁더군.


제주 사는 남대표가 중문 쪽에 있는 올레 8코스가 요즘 제일 좋다고 알려준다. 벚꽃과 유채꽃이 만개했다네. 내일 가보려고 한다. 워밍업은 오늘까지, 내일부터 '놀멍 쉬멍 올레길' 본격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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