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1
(5코스, 13.4킬로, 남원포구-쇠소깍다리)
왜 갑자기 5코스냐고? 오늘은 위미에 사는 친구 은익이를 만나서 함께 걷기로 했거든. 가끔은 거꾸로도 놀멍 쉬멍 걷는 거지 뭐. 약간의 일탈이랄까?
알람을 8시에 안 맞춰 놨다면 못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잠에 푹 빠져 있었다. 10분을 더 침대에서 미적거리다 일어났다.
두부와 소시지 1개, 계란 2개로 아침을 해결하다. 커피를 마시며 마이클 부불레의 노래를 듣는다. 차는 부불레의 재즈와 함께 번영로를 거쳐 경마공원 옆을 지나 시원하게 달린다. 12시쯤 서귀포 오른쪽에 있는 위미항에 도착해서 위미에서 참치 양식하는 친구 은익이를 만나다.
2월 가족여행 시 만난 이후 몇 주 만에 보는 은익이는 여전하다. 일단 점심을 해결해야 했기에 근처 식당에서 성게 미역국을 먹다.
위미항은 올레 5코스의 중간쯤에 있다. 오늘은 5코스를 거슬러 올라 4코스 시작점이 있는 남원까지 왕복하기로 했다. 이 코스는 은익이가 주로 산책하는 코스라고 한다. 왕복하면 14킬로 정도 나온다는.
혼자 걷다 친구랑 얘기하며 걸으니 좋다. 출발할 때는 햇살도 따듯하고 바람도 별로 없었는데 조금 걸으니 거의 강풍 수준으로 바람이 거세다. 은익이는 덥다고 옷도 가볍게 입었는데 걱정이다.
동백 군락지를 거쳐 바다 옆으로 난 오솔길. 바람만 빼면 멋진 코스다. 가다 보니 금호리조트가 나온다. 그 옆으로 바다를 끼고 나 있는 산책로가 일품이다. 바다 전망과 동백꽃, 그리고 잘 다듬어진 길이 이름답다. 올레 홈페이지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로 꼽힌다는 '큰엉 경승지 산책길'이다. 분명 과장이 아니다.
걸으며 친구의 참치 양식사업 얘기, 내가 회사 그만둔 얘기, 주식 등 투자 얘기 등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하며 걸으니 힘도 덜 든다. 인생 참 모른다. 토종 압구정 출신이 제주 내려와서 힘들다는 참치 양식을 하고 있는지. 코로나로 인해 사업 영향은 없는지 걱정도 되고. 참치 사이즈가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지금은 1미터가 넘는다고 하네. 그놈들 사료값도 많이 들겠다.
내 첫 직장 KTB 시절 삼성물산 다니던 은익이는 내가 도와줘 KTB로 이직했다. 그리고, 먼저 KTB를 떠는 은익이는 HB인베스트먼트에 자리를 잡았고, 내가 스타트업을 거쳐 VC로 컴백할 때 은익이 도움으로 HB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소중한 친구다.
1시간 더 걸어 남원에 도착했다. 올레 안내소에 들어가니 올레 패스포트를 판다. 아 여기도 산티아고와 똑같구나. 여기에 스탬프를 찍어야 완주 후 기념 완주메달을 받는구나. 그래서 패스포트와 올레 스탬프가 찍힌 티셔츠를 샀다.
다시 위미로 돌아간다. 친구가 갈 때 풍경과 올 때 풍경이 다르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그래서 올레길 정방향으로 완주한 분들이 역방향으로도 걷는 거구나.
올레 화살표는 파란색(Blue)과 주황색(Orange)으로 되어 있다. 올레 패스포트에는 올레 블루와 올레 오렌지로 나와 있는데, 블루는 제주 바다의 푸른 물빛을, 오렌지는 제주 밀감의 주황빛을 상징한다고 한다. 권역으로 말하면 블루는 남쪽인 서귀포시 권역을, 오렌지는 북쪽인 제주시 권역을 말한다. 코스를 정방향으로 걷는다면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되고, 역방향으로 걷는 다면 오렌지 화살표를 따라가면 된다. 화살표와 더불어 리본도 각각 파랑과 주황색 리본 한 쌍이 한 세트다.
1코스는 파랑의 출발점인 성산 광치기 해변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표선, 남원, 서귀포, 모슬포, 용수 등을 거치며 해안 따라 서귀포권역을 다 돌고 제주 권역으로 올라온다. 17코스를 걸으면 제주시 도심으로 들어온다.
늦었지만 올레 뜻도 한번 설명을 해야겠다.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을 말한다. 집에 갈 때 여유 있게 놀멍 쉬멍 걸어가야 된다. 주변도 즐기면서. 그것이 올레길을 만든 취지가 아닐까?
그런 올레길을 오늘 총 3시간 걸어 3:50에 은익이 집에 도착했다. 14.35킬로, 19,309보를 걷다.
은익이 집에서 커피에 천혜향을 먹었다. 땀 흘린 후 먹는 천혜향은 참으로 달다. 돌아올 땐 반찬거리 없냐며 깍두기도 싸준다. 고마워 친구.
숙소로 와서 그 깍두기에 돼지덮밥으로 저녁을 해결하다. 제주는 바람이 더분다. 춥다.
P.S.
5코스를 중간 지점인 위미부터 역방향으로 남원포구까지 갔다 다시 위미로 돌아왔다. 동백나무 군락지와 바다를 끼고 걷는 길, 큰엉 즈음의 산책로가 일품이다. 가끔은 왕복으로 해도 갈 때 풍경과 돌아올 때 다른 풍경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