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2
(10코스, 15.6킬로, 화순금모래해수욕장-하모체육공원)
아침 7:30 알람이 울린다. 바로 못 일어나고 30분 더 잤다. 조금은 개운한 기분으로 아침은 간편식 콩비지찌개에 돼지 목살을 추가해서 먹었다. 생각보다 푸짐하다.
바로 나가지 못하고 휴가지만 아직 회사에 메인 몸인지라 회사 일처리를 좀 했다. 포트폴리오 주식 매각 및 자산 이전 관련된 사항이다. 순조롭게 풀릴 것 같다.
일처리 마치고 10:45에서야 집을 나선다. 오늘은 10코스. 10코스 종착지인 하모체육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택시로 화순금모래해수욕장으로 출발한다. 10여분 정도 지나 빠르게 10코스 출발지인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 도착한다.
12:12에 10코스를 걷기 시작하다. 첫 언덕의 헐떡거림, 그리고 이어지는 산방산이 앞에 보이는 검은 백사장. 거기서 잠시 리본을 놓치다. 백사장으로 이어진 올레길, 리본도 안 보인다. 한 아저씨가 알려줘 백사장 끝에 놓인 대나무 막대에 꽃인 리본을 발견하다. 딱 산티아고 메세타 고원 흙먼지 길을 가다 시야 거의 끝 지점에서 한 줄기 생명수같은 리본을 발견한 느낌과 같았다.
삼방산을 끼고 걷는 길, 유채꽃의 향연과 파란 바다. 저 멀리 한라산도 보인다. 해변을 끼고 계속 걷는 길, 파란 바다와 구름, 검은 바위가 조화를 이룬다. 산방산은 좌우가 균형을 이루지 않는데 그 묘한 아름다운 균형비가 있다. 그건 주상절리와 같은 바위와 그 사이에 있는 푸름의 조화랄까. 거기에 파란 하늘까지 배경을 삼아 주니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듯하다. 주상절리 아래 솟아나는 파랏 가지와 유채꽃은 그 풍경을 살짝 거들뿐.
산방산을 돌아가면 넓은 유채꽃밭이 펼쳐진다. 그리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거대한 목선이 보인다. 바로 하멜 표류기에 나오는 하멜이 타고 온 상선이다.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직원으로 1653년 1월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자카르타,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에 가던 중 폭풍우로 제주에 표류한 사람이다. 조선에서 14년간 억류되며 한양, 강진, 여수 등으로 끌려 다니며 유배당하고 결국 일본으로 탈출하여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가 쓴 하멜 표류기는 조선의 존재를 유럽에 알렸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사회, 풍습, 생활상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근데, 그는 자신의 억류 경험을 공유하고자 쓴 게 아니라 14년간 밀린 동인도회사의 임금을 받기 위함이었다니 그것 또한 아이러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이다. 1602년에 영국에 밀린 동방무역의 주도권을 차지하고자 소수의 자본이 아닌 일반 대중의 자본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네덜란드에서 나온 구조가 주주회사 구조이다. 풍랑과 해적 등 리스크가 상당히 큰, 그렇지만 한번 왕복하면 거대한 부를 모을 수 있는 향신료 관련 동방무역사업, 그들은 투입자본을 분산해서 리스크를 헷지 하려고 한다. 그래서 거대한 선단과 선원 등 자본이 필요한 동방무역을 위해 대중으로부터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 자금으로 선단을 꾸려 동방무역을 위한 배를 뛰웠다. 초기에 자금을 투자한 주주들의 소중한 이름을 배 밑에 새겨 넣었는데, 거기서 나온 용어가 Underwriter(증권 인수자)이다. 즉, 배 밑에(under) 이름을 새겼다(writer)라는 의미이다. 그 Underwriter가 지금도 쓰이고 있는데 일반인이 주식 투자하는데 업무대행을 해주는 증권사를 의미한다.
하멜은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이었다. 자본주의 논리에 아주 익숙해져 있던 사람인 것이지. 그가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 못하고 표류한 것이고. 그것도 자신의 책임 때문이 아니라 거친 바다 날씨 때문인 것이고. 그러니 그는 책임은 다했지 업무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니었던 거다.
그는 조선에 억류되어 있으면서 암흑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가고 자신의 책임이 아닌 회사 업무 수행으로 인한 재해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록하고 기록했다. 그 기록이 그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었고 그 희망이 있었기에 14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당연히 돌아왔으니 밀린 임금을 요구했을 것이고, 그 증빙이 하멜표류기가 된 것이고.
그가 표류한 지점이 서귀포 인근 산방산 아래다. 그곳에 목선을 기념으로 만들어 둔 것이다. 하멜의 후손들은 그걸 보고 뭐라고 느낄까? 이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그 목선 앞에 유채꽃이 활짝 피어있다.
하멜에 잠시 빠졌다 벗어난다. 이제 사계리 화석 해변을 지난다. 지금은 출입금지 지형인데 바위에 각종 원시 동물들의 발자국이 있다. 그것도 파도치는 검은 현무암 위. 그 해변도 참으로 아름답다. 저 멀리에서 형제섬이 보인다.
1:56에 형제섬 앞 ‘회양과 국수군’에서 회국수를 먹다. 식당 제목이 재밌다. 회국수는 중면과 방어 위 초장의 새콤함이 조화를 잘 이룬다. 맵거나 짜지 않고 딱 좋네. 거기에 곁들이는 맥주는 하멜이 고국 돌아가서 마신 맥주 맛과 같았으리라. ㅎㅎ
점심을 먹고 나서 2:30에 형제섬 배경으로 사진 하나 찍고 다시 출발한다. 찍은 사진을 와이프에게 보내주니 “언 년이 찍은고얏!” 불호령이 떨어진다. 헉. 올레길 걷는 한 여인에게 부탁한 건데. 귀신이다. ㅎㅎ
이젠 바람이 거의 돌풍 수준이다. 송악산 부근 해안길을 걷고 있는데 모자가 날아간다. 겨우 달려가서 잡았다. 그리고 한 동안 손에 들고 걷는다. 그렇게 바람과 싸우며 송악산을 한 바퀴 돌았다. 기암절벽, 검은 바위와 파란 바다의 대비,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가양도와 마라도. 참으로 아름답다. 이어진 솔밭길, 소나무가 바람을 조금 막아준다.
또 이어진 벌판 길. 다크 투어리즘이라 부르는 곳이다. 4.3의 아픈 역사와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곳. 아픈 역사도 역사다. 그것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도 후손들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레길에 다크 투어리즘 코스가 들어 있는 것은 탁월한 선택 같다. 그 언덕으로 들어선다. 일제가 구축해둔 해안포 사격 진지가 보인다. 더 내려가니 4.3 희생자 추모비도 있고. 그리고 그 앞에 거대한 조형물, 파랑새가 있다. 다크 투어리즘에서 희망을 보게 해준다.
일제가 전쟁 목적으로 구축한 제주도에 있는 제주 비행장(현재 제주공항)에 이어 서귀포 인근의 아뜨르 비행장터와 아직도 남아 있는 콘크리트 관제탑. 그 관제탑을 통해 저 멀리 보이는 삼방산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바람 또 바람. 아, 숲은 또 언제 나오는 건가.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 중 끊임없이 펼쳐진 흙먼지 날리는 메세타 고원을 걷다 숲을 기대하는 것처럼.
고추밭, 무밭 그리고 이름모를 아름다움 꽃. 아 숲이다. 아 포구다. 거의 다 온 듯. 해변 그리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 드디어 모슬포 인근 하모해수욕장 옆 10코스 종점에 도착했다.
4:47 11코스 시작점 도착. 18.94킬로, 25,121보 걷다.
P.S.
10코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아름다움의 연속이다. 산방산을 보기 위한 언덕, 그리고 이어진 백사장과 산방산을 끼고 도는 코스. 하멜도 만나고. 형제섬을 바라보며 계속 걷는 사계리 화석해변도 지루하지 않고 너무 아름답다. 송악산 한바퀴 도는 코스도 저 멀리 가파도, 마라도가 보이고 기암괴석이 이러지는데 야자수도 보이는 눈이 부신 코스다. 다만 바람만 약하다면 더 좋다. 조금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풍경의 아름다움에 빠져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온전히 자연에 자신을 맡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