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대결과 스토리의 매력에 빠지다
뮤지컬 데스노트
- 아찔한 대결과 스토리의 매력에 빠지다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힌 자는 죽는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지루해진 죽음의 사신들이 인간세상을 가지고 놀아볼 재미로 데스노트를 인간세상에 하나 떨어 뜨린다. 그리고 그 노트는 법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던 한 남학생이 줍는다. 그 학생은 TV 화면 속 흉악범을 보고 호기심에 노트에 이름을 적어보고, 이내 긴급속보로 전해진 흉악범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데스노트인 것이다.
시작부터 나오는 익숙한 넘버들. 시원시원한 배우들의 가창력. 사실 두 사신의 데스노트 떨구는 장면부터 난 이미 매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은성의 천장을 뚫는 듯한 성량과 감성 풍부한 연기에 1막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면서 나도 빠져들었다.
1막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신비스러운 L의 존재. L로 빙의한 듯한 김성철의 연기는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와 같은 구부정한 걸음과 한껏 움츠리며 앉은 자세, 거기에 자폐증 걸린 듯한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고 난 그만 김성철 팬이 돼버렸다.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 흉악범들이 죽어가자 대중은 열광하며 그 노트의 주인을 키라(신)라 칭송한다. 데스노트에 재미 들린 라이토는 정의의 경계가 무너지며 서서히 괴물로 변해간다.
그럴 즈음 또 하나의 노트가 떨어지고 아이돌 스타 미사의 손에 들어간다. 미사는 키라로 칭송 받는 라이토의 도움으로 자신의 부모를 살인한 범인이 죽는 것을 경험했고 자신 또한 죽을 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있어 고마움과 연민을 느끼며 첫 번째 키라인 라이토를 만나고 싶어 한다. 미사는 얼굴을 알고 이름을 쓰면 죽는 라이토와 같은 데스노트의 능력에 더하여 키라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남은 수명의 절반을 포기하며 사신의 눈까지 갖게 된다. 즉, 얼굴만 보면 이름을 알게 되는 그 능력을 위해서.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하자. 그런데 이 스토리는 데스노트 영화를 본 사람이면 다 아는 내용인지라 스포까진 아닐 듯하다.
이렇게 재밌었던 1막은 내 뮤지컬 관람 역사에서도 거의 처음이다. 기대를 가지고 2막으로 접어든다.
미사의 화려한 음색. 테니스 코튼에서의 두 주인공의 격렬한 대결. 거친 경기만큼이나 서로 용호상박 하듯 부딪치는 두 배우의 열창, 난 숨이 멎었다.
데스노트는 조명과 LED 영상을 잘 사용했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같은 조명 잔치가 펼쳐진 뮤지컬이다. 빠른 극 전개에 맞춰 단조로운 무대는 조명과 영상으로 가득 차며 극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특히 라이토와 L의 테니스 경기 장면에선 무대 바닥이 거대한 테니스 코트로 변하며 화면이 빠르게 전환된다. 테니스 공이 라켓에 부딪치며 울리는 라켓 소리와 기싸움하듯 거친 음색이 동시에 격돌한다.
처음부터 스토리는 라이토의 류크와 미사의 렘이란 두 사신들이 두 주인공과 함께 극을 이끌어간다. 두 사신의 연기와 노래도 훌륭했다. 그래 뮤지컬이 이래야지.
이 뮤지컬은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면 안 본 그 상태 그대로 볼 것을 추천드린다. 내용이 뮤지컬에 잘 축약되어 보여주기 때문에 스토리를 미리 숙지하지 않더라도 내용 전개의 신선함에 그대로 빠지는 데 무리가 없다.
영화를 예전에 본 사람이라면 영화를 다시 보지 말고 그대로 뮤지컬을 보는 게 낫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면서 예전의 강렬했던 스토리를 떠 올리는 것이 뮤지컬에 몰입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거든.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아서 원작과의 비교는 불가능 하지만 영화 원작과 비교해서 보는 맛도 솔찬히 괜찮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지만 뮤지컬적인 요소를 넣다 보니 조금 변형된 부분도 있는데 그게 전체 스토리를 헤치진 않는다.
내가 본 뮤지컬 캐스트는 아래 사진과 같다. 물론 초연 때부터 라이토 역을 맡은 홍광호 버전을 보면 더 나을 수 있겠지만 고은성(라이토), 김성철(L) 캐스트도 충분히 즐기는 데 지장이 없다. 나 역시 고은성, 김성철 캐스트로 봤는데 뮤지컬 ‘머더 발라드’ 때보다 더 성숙한 대세 뮤지컬 배우로 성장한 고은성 배우를 볼 수 있어 매우 만족했다.
L역의 김성철은 L 그 자체였다. 역시나 가장 큰 성과는 김성철 배우의 발견이다. 완벽한 감정연기와 가창력은 미스 사이공과 지킬앤하이드에서 홍광호를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였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일본 작가 오바 츠구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며, 2006년작 영화 ‘데스노트’와 ‘데스노트: 라스트 네임’을 합쳐서 뮤지컬로 완성되었다. 초연은 한국의 씨제스컬쳐와 일본의 호리프로가 공동 제작하였으며 2015년 4월 일본 초연에 이어 같은 해 6월 한국 초연이 이루어졌으며, 2022년 올해 삼연부터는 판권이 OD컴퍼니로 넘어가서 현재 공연이 되고 있다. 제작사가 바뀌면서 무대 구성도 2층 구조에서 단층으로 변경되었고 LED 영상으로 다채롭게 바뀐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작곡가는 ‘지킬앤하이드’, ‘몬테 크리스토’, ‘웃는남자’, ‘마타하리’의 프랭크 와일드혼이다. 그래서 곡 자체도 훌륭하고 지킬앤하이드와 같은 이중인격의 갈등 모습이 ‘데스노트’에서도 라이토와 L, 류크와 렘의 연기와 각 넘버 속에서도 잘 살아 있으며, 그가 즐겨 쓰는 탱고 리듬도 이번에도 곳곳에 녹아있다. 물론 난 그의 대부분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마타하리’는 음악적으로는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아 개인적인 아쉬움은 있다.
넘 이 뮤지컬에 감동받아서 딸에게 얘기했더니 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랑 같이 보라고 예매까지 해주었다.
2022년 현재 공연되고 있는 대극장 뮤지컬로는 ‘데스노트’와 ‘웃는 남자’가 최고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프랭크 와일드혼 작곡에 창작 뮤지컬이란 점이 자랑스럽다. 이젠 뮤지컬도 세계적인 원작을 기반으로 외국 유명 뮤지컬 작곡자 및 연출가를 섭외해서 국내 창작되는 환경으로 바뀌었고 다시 해외로 역수출되는 상황이다. K-Pop, K-Movie, K-Drama에 이어 K-Musical도 K-Culture의 한 축을 담당해서 초기 영화 투자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뿌듯했다.
8/14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이 공연이 계속된다고 하니 꼭 다시 보러 가야겠다.
기억에 남는 넘버는 아래와 같다.
01 정의는 어디에
02 불쌍한 인간
04 데스노트
07 나의 히어로
08 게임의 시작
17 죽음의 게임
18 비밀의 메시지
21 놈의 마음속으로
관람일시: 2022.07.01. 오후 7:30
캐스트: 고은성(라이토), 김성철(L), 장은아(렘), 서경수(류크), 장민제(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