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세요
연극 ‘터칭 더 보이드’를 보고
- 인간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세요
Touching the Void
인간이 만든 기계적인 소리가 아닌 태초의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소리. 특히 빙하로 뒤덮인 거대한 안데스의 시울라 그란데 빙벽 사이로 부는 원시의 바람 소리이면서, 어쩌면 우리 마음속 깊은 공허로부터 들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본 연극이다. 물론 두 달 전에 대학로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았지만 연극으로 대학로를 찾은 건 2년 만이다. 많이 무심했었다. 미안하다 늦어서.
그리고, 예전에 연극 보면 항상 들렀던 ‘삼촌은 총각’이란 이자까야에서 늘 먹던 시메사바(고등어 초회)를 시켰다. 내가 늘 이곳을 찾는 이유는 주인장 아저씨가 진짜로 총각인지 궁금해서이기도 하지만 여기선 빠에 홀로 앉아 연극 후기를 편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터칭 더 보이드는 연극열전 아홉 번째 작품이다. 연극열전 시리즈 중 자폐증 동물박사 얘기를 다룬 ‘템플’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번에 다시 하는 걸 보니 여전히 템플 팬들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또 보러 올 것이다. 연극열전은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엄선해서 무대에 올리는 것 같다.
스토리는 시울라 그란데 등반에 나선 조(Joe)와 사이먼 두 등반자와 베이스캠프 매니저 리처드, 그리고 조의 누나 새라가 조의 등반사고로 치른 초야에서 만나 조가 정말 죽었는지, 어떤 과정으로 조난을 당했는지, 살기 위해 어떤 역경을 거쳤는지 조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등산을 그렇게 반대했던 누나도 동생의 등반과정을 경험해보며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서 힘든 결정도 내리며 조가 왜 그렇게 오르려 했는지 공감해 가는 내용이다. 조는 홀로 얼음 틈새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상황 속에서도 환상 보고 마음(누나)의 소리를 들으며 남은 힘을 다 끌어내며 고군분투한다.
등반을 소재로 한 연극이라 얼마나 무대장치를 잘했을까, 어떻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연기를 펼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한낮 기우에 불과했다. 암벽 등반과 로프에 매달려 대롱대롱 매달려 펼치는 연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거기에 유명한 등반인은 다 죽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리처드가 부르는 노래는 얄밉기도 하지만 감정을 정점으로 이끌게 한다.
“황홀경에 빠진 사람과 물에 빠진 사람 모두
두 팔을 들고 있다”
그렇지! 황홀감이란 극도의 들뜬상태에서도 물에 빠져 죽기 직전 절박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두 팔을 든다.
조의 죽음을 앞두고 셰익스피어의 죽음과 관련된 시가 흘러나온다. 네이버 검색의 도움을 받아 실어 본다.
죽음은 무서운 것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
차갑게 굳어 썩는 것
아직 온기 있고 느낄 수도 있는 몸이
흙 한 줌이 되는 것
보이지 않는 바람 속에 갇혀
우주에 매달린 세계 속을
난폭하게 밀려다니는 것
내가 상상한 가장 비극적인 인간보다
나빠지는 것
죽음은 내가 상상한 가장 비극적인 인간보다 나빠지는 것이란 말에 가장 공감이 많이 되었다.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도 생명이 있는 한 비극을 바꿀 수 있기에 죽음은 비극적인 인생보다도 나빠지는 것이기에. 이 구절은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큰 힘을 줄 것이다.
극을 관통하는 대사는 단연 ‘왜 산을 오르는가?’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유명한 산악인 조지 맬러리의 말인 ‘산이 거기 있으니까’로 이어진다. 이 질문과 대답에 대해 주인공 조는 대답에 앞서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답도 인간은 항상 발전하길 원하고 그렇기에 나무에 올라 가지 끝의 열매를 따며,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하며 스스로 성장해 간다고. 즉, 인간은 본성적으로 오르길 원하고 성취하는 것을 즐기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것이 공허와 터치하는 것이지. 빙하 사이로 흐르는 바람이 만들어낸 태초의 공허한 소리는 어쩌면 꾸며지지 않은 우리 내면 본연의 소리이며 우린 그걸 터치할 수밖에 없다고, 마치 자연스럽게 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클라이머들에겐 ‘산을 왜 올라’라는 질문은 ‘왜 살아’라는 질문과도 같을 것이다. 그 대답도 ‘삶이 거기 있으니깐, 생명이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하니깐’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본다면 ‘산을 왜 오르는가’라는 질문은 틀리지 않았다.
이 연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그리고 2003년 영화로 먼저 만들어졌다. 영화를 보지 않아 영화와 연극을 비교해서 쓸 수 없어 아쉽지만 연극 만으로도 내용을 생생하게 이해하고 연극적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그것으로 만족한다. 모르지 추후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글을 업데이트할 수 있을지도.
시메사바에 술은 술술 들어간다. 아 인생이 이런 거구나. 생명이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것을 또 느끼고 집으로 돌아간다.
산 오르길 좋아하는 모든 이들이여, 이 연극을 꼭 보시라.
연극 관람일시: 2022.08.20. 오후 7시
극장: 아트원씨어터
캐스트
- 조: 신성민
- 새라: 이진희
- 사이먼: 정환
- 리처드: 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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