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글은 한땀한땀 꾹 눌러서 써야...

by 메추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신영복 선생님께서 세상과 이별하셨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15척 벽 안 감옥에서 보내신 분이 고이 잠드셨다. 옥 안에 오래 살다 보니 바깥세상은 전세살이 같다고 표현하신 그분이 전세 생활을 마치셨다.


부끄러웠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선생님의 책을 사 두고도 몇 페이지 읽다 어려워서 그만두었던 책을 선생님 사후에 읽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런 가슴 절절하고 담담한 얘기를 왜 이제야 접했는지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20년의 수감생활 한땀한땀의 기록을 단 하루 만에 읽었다는 죄책감이 동시에 들었다.


20대 정열적인 청년에서부터 마흔의 중년으로 넘어가면서 선생님도 시간의 의미를 느끼신 것 같다. 처음엔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해 훈계 비슷한 어조가 나중엔 존경으로 바뀐 것도 그렇고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인고의 세월만큼 부드러워졌다.


책은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새기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읽고 접한 것들을 생각으로 정리하고, 꼭꼭 누른 생각들을 한자 한자 엽서에 담아 20년간 보낸 서신을 모아 만든 책이라 글자 하나하나에 힘이 있다. 마흔이 넘어서도 어머니에게 야한 농을 적은 고사를 보낸 사연은 모자간이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옥살이를 이십 년 가까이 뒷바라지 해준 형수님, 계수님(제수씨)과 대화하듯 쓴 편지글들을 읽다 보면 흡사 연애편지 분위기도 느껴진다. 때론 세상에 하고 싶은 자신의 말과 강의를 작은 엽서에 꾹꾹 담아 가족 편에 보낸 듯한 선생님의 고뇌도 느껴지긴 하다.


감옥이라도 필시 시간이 많은 편이 아닐진대 끊임없이 읽을 책을 정해 보내달라 하고 그것을 일일이 챙겨준 부친의 정성도 대단하다. 처음의 걱정조나 안부조의 편지보다는 대화조의 편지로 보내달라고 아버지에게 투정 부리는 편지는 신영복 선생님의 솔직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그렇기에 20년 가까이 편지로 지적 대화가 유지되고 서로의 성장은 물론 선생님의 외로움도 많이 가셔졌을 것이리라. 그게 무기수로 복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원동력이 되었겠지.


난 뭔가? 주말 이틀 동안 방에서 뒹굴며 뭐했는지. 선생님은 감옥에서도 조카들의 학업걱정, 방학걱정 들을 하고 계셨는데 난 애들에게 디즈니 채널 틀어 놓고 편히 침대에 누워 (비록 선생님의 책을 읽었지만) TV 소리나 줄이라고 문 닫으라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으니 선생님 글을 읽는 자세가 안된 셈이다.


그게 내 그릇의 크기임을 이 이 책을 보며 새삼 느꼈다.


물론 그것만 느낀 건 아니다. 글 쓸 때 글자 한자 한자의 힘에 대해서도 강하게 느꼈다. 이 점은 앞으로 내 글쓰기에도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시대의 정신이며 어두움 속에서도 결코 헛된 희망만을 얘기하지 않으시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셨던 분이 아직 더 후배들에게 들려주실 얘기가 많으실 텐데 너무 일찍 세상과 이별을 고하셨다. 슬프고 슬프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