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요코(Ono Yoko) 전시회를 보고
나를 사색하게 하는 개념들...
- Ono Yoko의 전시회를 보고
비오는 금요일, 추석 다음날이다. 막힐 것을 우려해 고향에서 미리 올라왔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신나게 달릴 무렵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집에서 짐을 풀었다. 이내 친구가 있는 부천으로 향했다. 아직도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친구를 태우고 서울로 들어섰다. 친구는 혹시 로뎅 갤러리에서 하는 "오노 요코 전 - Yes Yoko Ono" 볼 생각 있냐고 묻는다. 사실 다양한 문화분야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미술작품 전시회는 아직은 큰 재미를 못 느끼던 터였다. 그래도 선입견 없이 즐겨보기로 하고 삼성본관 옆에 있는 로뎅 갤러리로 차를 몰았다.
유리로 자연 채광이 되는 상태로 꾸며진 로뎅 갤러리.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 AMAZE(Amaze 또는 A Maze)라는 미로 형태의 아크릴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이들이 길게 줄을 이루고 있었다. 왼편을 보니 로뎅의 "깔레의 시민들" 조각이 보인다. 영국과의 전쟁으로 프랑스 깔레시가 영국군에게 포위당했을 때 도시를 구하기 위해 적군에 목숨을 던진 지역 귀족 6인을 기린 조각상이라고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상을 보여주는 상으로도 유명하다.
그 옆을 보니 소망나무가 두 그루 있다. 조그만 종이에 소망을 써서 걸어 놓으면 소망이 이루어진단다. 많은 이들이 종이에 소중히 소망을 적어 나무에 건다. 걸려 있는 소망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흰 종이에 숫자가 6개 적혀 있었다. 미술관에 와서도 로또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로뎅의 지옥의 문을 지나 오노 요코 전시실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사실 12일에 친구랑 오노 요코전을 보고 잘 이해가 안 가서 14일 혼자 다시 찾았다. 14일이 마지막 전시라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역시 다시 찾길 잘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14일에 왔을 때는 아리따운 큐레이터 언니가 작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어서 그런지 더 이해가 쉬웠고 공감도 많이 되었다. 거기서 들은 설명에 내 상상력을 덧붙여 한번 다음과 같이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재구성해보았다.
첫 번째 만남 - Ono Yoko & John Lennon(1966)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 부근 한 미술관이다. 한 동양 여자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시회 전날 비틀즈를 위해 특별히 Preview 행사를 가졌다. 비틀즈 존 레넌이 온다고 전시관장은 오노 요코를 현관까지 나가서 응접하라고 한다. 조금 있으니 존 레넌이 들어온다.
오노 요코 : 어서 오십시오. 제 전시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존 레넌 : 주위에서 참 특이하다고 하길래 한번 찾아 봤습니다.
오노 요코 : 한번 둘러보시죠.
첫 번째 존 레넌 앞에 놓인 작품이 "Yes Painting"이다. 이등변 삼각형처럼 생긴 사다리가 있고 그 위에 정사각형으로 생긴 액자가 천장에 걸려있다. 천장에서 줄로 돋보기가 매달려 있다. 사다리 앞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사다리를 올라가서 돋보기로 액자를 보시오'
존 레넌 : 이거 정말로 올라가서 봐도 됩니까?
오노 요코 : 사다리 앞의 지시문 대로 따르시면 됩니다.
존 레넌 : 한번 올라가 보지요.
존 레넌은 사다리에 올라갔다. 돋보기를 들고 액자를 보니 깨알 같은 글씨로 "Yes"라고 적혀있었다. 존 레논은 그때의 감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사다리를 올라가서 돋보기를 들여다보니 깨알 같은 글자로 "Yes"라고 씌어 있었다. 그것은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안심이 되었다. 바로 그 "Yes"가 나를 머물게 하였다.]
옆으로 돌아가니 흰 나무토막과 망치가 놓여 있다. 망치는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옆에는 못통이 놓여 있다. 아래 지시문에는 '매일 아침 못을 거울에, 유리 조각에, 캔버스에, 나무 또는 금속에 두드려 박으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존 레넌 : 이거 지시문 대로 못을 박을 수 있겠소?
오노 요코 : 5 실링만 내시면 박을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웅성 된다. 감히 그 당시 신화나 다름없는 비틀즈에게 5실링을 내라고 말하는 당돌한 여자가 있다니. 그냥 와준 것 만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존 레넌 :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내가 상상의 5실링을 당신에게 주겠소. 그리고 상상으로 못을 박겠소. 이건 되겠죠?
오노 요코는 순간 숨이 막혔다. 내가 주창한 개념 미술을 이렇게 정곡을 찌르듯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눈이 마주쳤다. 뭔가 통하는 바가 있다는 듯이 둘은 살짝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1년 후, 오노요코는 못이 박혀 있는 흰 나무토막 옆에 또 다른 작품을 하나 걸어둔다. 존 레넌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그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 이다.
오노 요코 : 이 작품은 당신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기 위한 거예요. 당신께 드립니다.
존 레넌 : 이건 흰 강철판에 못이 하나 박혀 있네요. 망치도 유리 망치고요. 또 관객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지시문도 없군요.
오노 요코 : 지난 작품은 쇠망치로 나무에 못을 박게 하는 그런 참여 작품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비참여 작품입니다. 유리 망치로 못을 박으면 망치도 깨질뿐더러 못도 박히지 않습니다. 당신 말대로 이 작품은 상상 만으로 참여하는 작품입니다. 비참여 작품이면서도 참여 작품인 샘이지요. 못은 우리 만남 1년 기념으로 하나만 박았습니다.
존 레넌 : ...
두 번째 만남 - Half a Wind
빈 방이 있다. 그 방에는 모두 반쪽만 있다. 액자도 반, 전화기도 반, 의자도 침대도 모두 반쪽이다. 모두 반으로 절개되어 있다. 왜 반쪽만 만들어 놓았을까? 전시실 앞에서 모두 웅성거린다. 그 방안에 유일하게 반쪽이 아닌 것은 오노 요코다. 어느 관람객이 이렇게 외친다.
관람객 : 왜 오노 당신만은 그 방에서 반쪽이 아니죠?
오노 요코 : 사람은 여자, 남자가 합쳐질 때 온전한 하나가 됩니다. 그러니 저 혼자 있는 게 반쪽인 샘입니다. 여러분, 컵에 물이 반이 차 있습니다. 어떤이는 반도 안 남았다고 하고 다른 이는 반씩이나 남았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보는 사람의 인식의 차이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관람객 : 그럼 당신은 무슨 의미로 이렇게 반쪽만 만들어서 전시를 했죠?
오노 요코 : 여러분은 반만 보고 나머지 반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남아있는 반은 즉 존재에 대한 충분한 인식 요구된다는 의미이고, 보이지 않는 나머지 반은 즉 부존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반으로 된 전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린 흔히 존재하는 반쪽만 인식하지 부존재하는 반쪽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든요.
멀리서 미소를 띠며 박수를 치고 있는 존 레넌이 보인다. 이것이 오노요코와 존 레넌의 두 번째 만남이다.
세 번째 만남 - A Blue Room
이 방은 흰색으로 된 방이다. 그런데 방 제목은 Blue Room으로 되어 있다. 방 입구에는 이 방이 푸른색으로 보일 때까지 이 방에 머물라고 적혀 있다. 그 방에 들어섰다. 십여분이 지나도 푸른색으로 보이지 않았다. 방 벽에는 20인치가 조금 넘는 스크린으로 하늘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 주고 있다. 유리가 없는 창을 들여다본다. 창 위쪽에는 '이곳이 아래쪽이다'라고 적혀 있다. 모든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존 레넌 : 저 벽에 길게 그은 직선은 무슨 의미죠?
오노 요코 : This line is a part of a very largecircle.(이 직선은 아주 큰 원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아요)
존 레넌 : 내 생각이 짧았소. 이제야 이 방이 푸른색으로 보이오. 고맙소.
1966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본 "Yes Painting" 이후 3년 만에 오노요코와 존 레넌은 결혼하게 된다. 서로를 알아본 두 천재는 그 후 많은 이벤트를 벌린다. 반전 평화운동도 그런 이벤트 중에 하나다. 그들은 신혼여행으로 떠나서도 평화운동을 벌인다.
신혼여행 - Bed Peace
존 레넌이 결혼한다는 것은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킬 만했다. 그런 결혼 조차도 반전 평화운동에 이용하고자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이벤트를 꾸민다. 바로 잠옷 차림으로 호텔 침실로 기자들을 초청한 것이다. 기자들은 오노 요코의 기괴한 예술에 대한 기대감으로 뭔가 에로틱한 이벤트가 벌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호텔방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잠옷 입은 존 레넌과 오노 요코만 있을 뿐이다. 창문에는"Bed Peace"라고 적어 놓고 그들은 서로 안고 누워서 전쟁에 반대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기자들에게 멋진 포즈도 보여주고 때론 피곤한 듯 서로 안고 뽀뽀도 하고 이불도 덮어쓴다.
기자 1 : 이렇게 침대 시위를 하게 된 이유가 뭡니까?
존 레넌 : 전쟁이 싫습니다. 베트남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죽습니까. 빨리 이런 전쟁이 끝나야 합니다.
기자 2 : 지난번 앨범에서 두 분의 나체사진이 실렸는데 그건 무슨 의미죠?
존 레넌 : 그건 자연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자유를 상징하죠. 우리를 덮고 있는 가식을 다 벗어 버리고 서로 신뢰를 가지고 대하면 전쟁도 없어지거든요.
기자 3 : 사실 침실 시위를 한다고 해서 좀 더 쇼킹한 것을 기대했는데, 뭐 그런 건 계획에 없는 지요.
존 레넌 : 하하. 좀 더 지켜보십시오.
기자 4 : 반전 노래라도 하나 불러주시죠.
존 레넌 : Imagine을 부르지요.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천국은 없다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그러려고만 하면 어렵지 않답니다
우리의 발 밑에는 지옥이라는 것은 없고
우리의 머리 위에는
오직 확 트인 하늘만 있다고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 만을 위해 살아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오노요코의 자르기 퍼포먼스(Cut Piece Performance)
뉴욕 카네기 리사이틀 홀에서 펼쳐진 퍼포먼스입니다. 이 퍼포먼스는 뉴욕과 런던, 도쿄에서도 열렸다고 합니다. 오노 요코는 아주 아름다운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그 앞에는 가위가 놓여 있습니다. 아무나 순서대로 나와서 오노 요코의 옷을 가위로 잘라 내는 그런 퍼포먼스입니다. 오노요코는 퍼포먼스에 대해 차분히 설명합니다. 처음엔 어색한 듯 침묵이 지속됩니다. 제한된 시간이 40분이란 말에 관객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젊은 관객이 나와 원피스 팔 부분을 조금씩 잘라 가져갑니다. 그리고 점점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며 한 명씩 나와서 옷을 자릅니다. 이윽고, 원피 스는다 잘라져 나가고 내의가 나옵니다. 그 내의도 이내 잘려 나갑니다. 치마도 잘려지고 온 몸을 덮고 있던 옷은 이제 반도 남지 않았습니다. 내의를 잘라내니 브라가 나옵니다. 브라의 정 가운데를 어느 누가 잘라내니 다른 이는 브라의 끈을 잘라냅니다. 오노요코는 겨우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립니다. 그리고 40분이 되어 퍼포먼스는 끝납니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오노 요코의 몇 마디가 이어집니다.
[제가 이런 퍼포먼스를 런던과 도쿄에서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어디가 가장 거칠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런던입니다. 런던 사람들은 저를 찌를 듯이 가위를 들고 위협적으로 옷을 잘랐습니다. 옷도 거의 남김없이 말입니다. 왜일까요? 첫째는, 내가 존 레넌과 결혼해서 비틀즈가 해체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필이면 얼굴도 못생긴 동양 여자와 결혼했냐는 겁니다. 같은 퍼포먼스지만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전 처음에 이런 퍼포먼스를 기획한 것은 여자에게 억눌린 무언의 폭력에 대한 항거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의도가 영국에서 할 때는 점잖다고 여긴 영국 신사들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동양사람들에 대한 멸시에 대한 항거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다양하죠.]
후에 이 자르기 퍼포먼스는 이 작품이 폭로하는 억눌림에 대한 무언의 항쟁으로 인해 페미니즘 퍼포먼스의 역사에서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오노요코의 영화들
그녀의 영화는 실험적이다. 반전 평화 운동의 일환으로 365명의 남녀 엉덩이만 찍은 "엉덩이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실룩실룩 엉덩이만 화면 가득히 펼쳐진다. 검은 엉덩이, 흰 엉덩이, 털 난 엉덩이, 매끈한 엉덩이, 살찐 엉덩이, 살 빠진 엉덩이, 앞에 덜렁거리는 것이 보이는 엉덩이, 앞이 보이지 않는 엉덩이들. 그 엉덩이를 통해 뭘 나타내려는 건가?
그 옆방에 가보니 한 여자가 나체로 침대 위에 누워있다. 클로즈업 된몸 부위에 파리가 붙어 있다. 처음엔 클로즈 업으로 신체 부위 부위를 아름답게 담아낸다. 얼굴 주위를 파리가 맴돌더니만 유방 쪽으로 내려간다. 클로즈업된 유방의 유두는 아주 넓은 사막에 있는 야자수처럼 친근하게 보였다. 그리고 파리는 더 밑으로 내려간다. 배꼽 주위를 맴돌더니만 그 밑으로 내려간다. 수풀이 무성하다. 그 사이를 파리가 헤집고 다닌다. 그리고 파리는 더 밑으로 내려간다.
카메라는 점점 더 멀어진다. 처음엔 한마리가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내려간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는데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면서 수많은 파리가 여인의 몸에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처음엔 근접 촬영으로 드러난 여인의 우아한 나체로 인해 나의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갔지만 점차 볼 수록 파리가 우굴우굴 대니 지저분하고 역겹게 보였다. 같은 나체에 같은 파리지만 근접해서 볼 때는 에로틱하게 보이던 것이 멀리 떨어져서 보니 지저분하게 보인다. 과연 에로틱함과 지저분함의 경계는 뭘까? 이런 걸 느끼라고 이런 작품을 만든 것일까?
기타
"Play it by Trust"라는 20명이 체스 경기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원형의 크리스털에붙여진 "Pointness(뾰족함)"이라는 작품도 눈에 들어온다. 스푸운 세 개를 두고 붙여진 "FourSpoons"라는 작품과 그 옆에 스푸운 네 개를 두고 붙여진 "ThreeSpoons"라는 작품 앞에선 숨이 멎었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언어유희 같기도 한 그런 이름 짓기가 개념미술에서 중요하다고 한다. 개념 미술을 통해 철학적인 사고까지 하게 하는 그녀의 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외에도 많은 개념 미술 작품들이 나의 정신을 송두리째 흔든다. 그래서 금요일에 이어 다시 전시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도 로뎅 갤러리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오노 요코 하면 존 레넌의 와이프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정신세계와 예술 작품들은 존 레넌의 명성을 뛰어넘을 만큼 위대해 보였다. 그래서 존 레넌이 그녀를 보고 "The most famous unknown artist"라고 했는지 모른다.
하여튼 여러 가지 생각과 나의 정신세계를 뒤집어 놓은 모처럼 만의 훌륭한 전시회였다. 이런 전시회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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