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7. Day 29
31 매듭, 감사 그리고 순례
2015.10.17. Day 29
비행기 출발시간을 잘못 봤다. 그래서 아침부터 넘 여유 부렸나 보다. 와이프가 차려준 아침상에 쫄투 페북 페이지에 동영상 올리는 것 까지 하다니.
부랴부랴 와이프가 태워줘서 양재역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마침 한대가 지나간다. 또 10여분을 기다려야 한다. 수다 떠는 아줌마 둘이 택시에서 내리더니 자기는 중국 태항산 간다고 떠벌린다. 누가 물어봤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커버 씌워 보내고 환전을 하러 갔다. 오늘따라 현금카드 IC칩이 말썽인지 잘 안된다. 카운터에서 안돼 현금 지급기에서 인출해서 겨우 380유로(50만원 상당) 환전 완료. 이젠 여행자 보험 들 차례. 가는 날이 장날인가? 삼성화재 앞 대기자 수가 14명이다. 또 업무처리는 왜 이리 굼뜨던지. 거기서 거의 30분을 까먹은 것 같다.
후다닥 보안검사를 통과해서 루프트한자 게이트 쪽으로 달렸다. 보딩 시간 5분 전이다. 꼭 이럴 때는 탑승동까지 기차를 타야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또 뛰어서 올라갔다. 가기 전에 벌써 땀이 흥건해졌고 지쳐버렸다.
다행인 것은 탑승 마감 20분 전엔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는 점. 맞아, 더 할 게 있다. 하나는 내가 회사(IDG Ventures Korea)를 관두고 산티아고 간다는 것을 페북에 올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본사에 퇴사 의사를 통보하는 일이다.
제가 이제 IDG를 떠나 스페인 산티아고로 순례 여행 갑니다.
뭐 우리 인생도 순례 여행과 다를 바 없지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지의 길로 마냥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인생길도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다 걸어갔던 길이지요. 그래서 전 이번 순례 여행을 통해 그 먼저 간 선배들의 흔적을 확인하고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어보고자 합니다.
지난 8년이 IDG에서 너무나 편하게 한바탕 신나게 논 기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조금 덜 놀며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 작게나마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아직 회사 이름도 뭘 할지도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 또한 도보 순례를 떠나는 이에게는 역동적이지 않을까요?
저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주위에 좋은 분들이 많이 넘치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응원해주니 말이에요. 그 넘친 복에 대한 감사도 많이 드리고 올 예정입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제 힘만으로 오지 않았음을 잘 알거든요.
다녀와서 하나하나 흩어진 퍼즐들을 맞춰가려 합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자연인 이희우 올림
10분 만에 후다닥 페북에 먼저 올렸다. '좋아요'가 막 눌러지는 것 같다. 이내 어제 미리 써둔 이메일을 본사 대표에게 보냈다. 이젠 휴대폰 비행기 모드 상태.
11시간 넘는 비행은 지루했다. 가기 직전 1주 전에 루프트한자 프리미엄 이코노미로 바꾸길 잘한 것 같다. 좌석이 한결 쾌적하다. 델타항공의 같은 등급보다는 더 낫다. 그리고, 비행기 기종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화장실이 항공기 중간 부근에 반지하처럼 내려가는 곳에 있는 것이 특이했다.
영화 세편은 본 것 같다. 밥도 컵라면 간식 포함 세 번은 먹고. 거기에 와인 3잔에 맥주 한 캔까지 마시니 뮌헨에 도착했다.
여기서 마드리드로 환승한다. 그래도 같은 EU라고 입국심사를 한다. 왜 왔냐고 묻길래 '산티아고 순례길' 왔다 하니 웃으며 'Good Luck!'이란다.
또 대기시간이 이어진다. 탑승 게이트 앞 빠에서 소시지 두 개와 생맥주 한잔을 샀다. 역시 독일은 맥주와 소시지라는 고정관념을 깨버린 맛이었다. 맥주는 밍밍하고 소시지는 퍽퍽하고.
다시 마드리드행 비행기. 여기선 급 피곤이 올라와 거의 떡실신. 2시간 40분을 더 날아온 마드리드는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다.
수화물 찾는 곳에서 약간의 이상으로 시간이 좀 더 지체되었다. 그리고, 세관신고 없이 바로 나왔다. 택시를 탔는데 머리 짧게 깎은 젊은 놈인데 계속 구시렁대며 운전한다. 솔 광장 부근으로 들어왔다. 11시쯤 되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막힌 골목길을 이 놈이 엄청 헤맨다. 같은 길을 두 번째 돈다. 내가 구글맵을 보여줘도 자기 스마트폰 지도만 보며 계속 혼잣말을 한다. 그래서 그만 내리겠다고 했다.
구글맵 보행자 모드로 설정하고 쉽게 호텔, 사실 아주 비좁은 호스텔을 찾았다. 내가 봐도 찾기 어려운 곳이다. 간판도 작을뿐더러 오래된 건물 2층만 임대해 쓰는 호스텔이었다.
그런데 호스텔 입구를 못 찼겠다. 작은 문인데 문도 채워져 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비도 맞으니 기분이 꿀꿀하다. 인터폰을 찾아서 누르며 외쳤다. 'Guest, Guest'. 이때 내가 왜 이렇게만 말했는지 모른다. 하여튼 문은 열리고 체크인 잘하고 들어왔다.
침대를 보니 걍 눕고 싶었다. 샤워도 하기 싫고. 그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씻으니 피로가 한결 풀린다.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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