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4. Day 1
03 Jolly Hard, Jolly Tired!
- 2017.10.04. Day 1
오늘은 영어 단어로부터 시작해야겠다. ‘Jolly’, 이 단어 들어보셨나? ‘아주’, ‘매우’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졸라’와 비슷하다. ‘졸라 좋아’를 영어로 하면 ‘jolly good’이 된다. 내 생각에 아마도 우리나라 졸라에서 건너간 게 아닌가 싶다. ㅎㅎ
왜 jolly부터 시작하는지 아시겠는가? 오늘은 ‘jolly hard’, ‘jolly tired’ 하기 때문이다. 명색이 VC 대표이면서 경영학 박사인데 한글로 쓰면 격 떨어질까 봐 영어로 쓴 점 이해하시라. 사실 오늘 프랑스 ‘쌩장’에서 스페인 ‘론세스바예스’까지 코스가 산티아고 순례길 중 제일 힘들다는 걸 미리 알고는 왔지만 이리 힘들 줄은 미처 몰랐다.
바욘에서 6:45에 기상하여 쌩장 행 7:40분 기차를 탄 것까진 좋았다. 쌩장에 8:40분쯤 도착하자마자 헤매기 시작했다. 가벼워 보이는 대나무 지팡이와 순례자 상징인 가리비 껍질을 산 후부터 30분 넘게 길을 헤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어 물어 나폴레옹이 스페인 정복을 위해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는 바로 그 나폴레옹 코스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코스는 총 26킬로 구간으로 해발 170미터부터 시작해서 1450미터까지 21킬로를 올라가고 5킬로를 내려가는 코스다. 21킬로를 올라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면 끊임없이 내리막 없이 6시간을 넘게 올라가고 1시간 반 정도를 정신없이 내려온다 생각하면 된다. 그것도 아주 딱딱한 아스팔트 같은 길을. 나폴레옹은 군사들 데리고 왜 이 코스를 사용했나 몰라. 괜스레 나까지 힘들게끔. 물론 나폴레옹은 말을 타고 갔겠지만 병사들은 직급이 낮은 죄로 무기도 들고 생고생을 했을 텐데.
마라톤도 그렇고 등산도 그렇고 보통은 첫 땀을 흘릴 때가 가장 힘들다. 다 워밍업이 필요하거든.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운토(Huntto)까지 첫 상승구간도 결코 쉽지 않았다. 거기까지도 거의 혼신의 힘을 다해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잠시 쉬며 커피와 바나나까지 먹었으니 체력도 보충했다 생각했다. 그다음 오리슨(Orisson) 대피소까지 구간도 나름 참을만했다. 초반에 다리에 힘을 줘서일까, 오리슨 봉우리까지 올라가던 도중 그만 왼쪽 종아리에서 쥐가 나버렸다. 다리가 너무 아파 걸을 수 없어 자리에 앉아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지나가던 외국애가 ‘Are you OK?’라며 묻는다. 힘없게 ‘I am OK’라고 얘기했지만 속마음은 ‘안 오케이, 안 오케이라고’ 말하고 싶었지.
이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다. 바로 올리브영에서 산 하이힐 신는 여성들 종아리 근육 풀어주는 파스 ‘휴.족.시.간.’ ㅎㅎ. 뜯어 근육이 뭉친 종아리에 붙이자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정상을 향하여. 정상을 8킬로 정도 남겼을 때 파스 약효가 떨어졌는지 다시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났다. 땀과 범벅이 되어 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비비며 파스를 또 붙였다. 오른쪽 놈도 뭉쳐지는 것 같아 거기엔 근육 풀어주는 연고를 잔뜩 발랐다.
조금 호전되는가 싶고 길도 평탄하여 쭉쭉 많이 걸었다. 역시 똥이나 평탄한 길은 나올 때 많이 빼줘야 한다.
근데 왜 자꾸 종아리 근육이 뭉치는 거지? 산티아고 온다고 헬스장에서 걷기나 러닝 같은 유산소 운동 보단 다리 근육운동을 넘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진작에 많이 걸을 걸.
다리도 쥐 때문에 아픈데 온몸은 소똥 냄새인지 모를 정도로 땀으로 범벅이다. 그때 마침 응급구조 표지판(912번)이 보인다. 막 전화 걸고 싶어 진다.
한 한국 젊은이가 올라오는 게 보인다. 저 아래 다리 아프기 전에 인사만 한 친구다. 몇 마디 물었더니 의대 휴학생이란다. 영어도 제법 하는 것 같아 그 친구에게 ‘쥐가 나다’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물었다. 혹 스페인 약국에 가면 써먹으려고. 그 친구 왈 ‘쥐는 Mouse 아닌가요?’ 헉! 그래서 내가 그럼 ‘I have a mouse in my leg’이라 하면 되겠네?
이제 거의 정상이다, 정신은 비정상이지만. 다리도 아프고 실신 직전이다. 이 곳에 올 때는 ‘로버트 컬’의 ‘솔리튜드’에서 처럼 깊은 고독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고독은 개뿔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그저 빨리 도착해 얼음 동동 콜라 먹고 쉬고 싶어 진다.
종아리 쥐 사건 이후 사진도 거의 찍지 못했다. 모든 게 귀찮았다. 정상 부근에선 뭐 첨부할 사진이 없네. 쩝!
시작이 있음 끝이 있는 법, 오후 5:10분 드디어 도착. 장장 8시간이 넘게 걸렸다. 원래 코스가 26.3킬로인데 헤맨 거리 포함 론세스바예스 이곳 숙소(알베르게)까지 총 32.9킬로에 44,437걸음을 걸었다. 애플 와치에 알람이 와서 보니 오늘 1,879 칼로리를 소모해서 목표의 400%를 초과 달성했다고 멋진 애니메이션과 함께 나를 위로해 주려 한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너의 위로가 필요 없다. 너는 닥치고 밥(충전)이나 먹어라.
샤워를 하고 빨래를 맡기고 저녁을 먹었다. 캐나다, 독일, 스위스 등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10유로 하는 순례자 메뉴를 먹었는데 코스요리에 와인까지 가성비 훌륭했다.
식사 후 돌아오는데 다리가 넘 아프다. 쩔뚝쩔뚝 겨우 걷는다. 계단 내려올 땐 난간을 잡아야 겨우 내려온다. 내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만사가 귀찮아 빨래는 세탁 서비스 맡겼다. 내일 아침에 건조까지 된 내 옷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나마 이게 위안거리다.
내일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순례자들 꽁무니나 따라서 다녀야겠다.
에고 힘들다. 오늘은 좀 일찍 자야겠다.
피레네 산맥 오르다 떠오른 질문 몇 가지가 있다. 답해줄 사람은 해주세요.
1. 무거운 옷을 입고 등산하는 것과 배낭에 넣고 등산하는 것 중 어느 경우가 덜 힘들까?
2. ‘쥐가 나다’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나?
2017.10.04. 오후 9:16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