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6. Day 3
05 Stop Walking, Drink Water!
- 2017.10.06. Day 3
어제 점심은 얇은 햄이 올려진 감자파이 한 조각과 맥주 두 잔으로 해결했다. 사진 찍어 와이프에게 보내니 그렇게 먹음 쓰러진다고 난리다. 그래서 저녁은 풍성히 먹기로 했다. 바로 닭.도.리.탕.
같은 알베르게(숙소)에 묶는 한국 친구들이 닭도리탕을 하기로 한단다. 같이 먹을 건지 묻길래 와인 두 병과 하몽을 쏜다고 했다. 순례길 와서 닭도리탕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한 친구가 7개월째 세계 여행 중인데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등 양념이 다 있단다. 헉! 멋진 놈. 삼성전자에서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3년간 개발하다 1년 휴직하고 여행 중이란다.
그 친구 외에도 한양대 의대 본과 휴학하고 온 친구, 아일랜드 워킹 홀리데이 중 온 친구 둘 이렇게 다양하게 조패가 만들어졌다. 다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 연령대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자신의 꿈이 뭔지 알고 그 꿈을 찾아 여기 산티아고로 온 것 같다. 대견한 녀석들. 그러니 내가 와인을 안 쏠 수가 있나?
사실 순례기간 중 하루 예산으로 40유로를 책정했다. 원화로 54,000원 정도 된다. 보통 숙박이 아침식사 포함해서 10-15유로 하고 점심, 저녁 등 간식으로 25유로 정도 생각하면 40유로로도 충분하리라. 근데 이렇게 멋진 친구들 만나면 바로 예산 초과다. 뭐 어쩔 수 있겠는가? 다 내 업보지. ㅎㅎ
닭도리탕은 어쨌냐고? 현지에서 조달한 닭 두 마리와 감자 당근 등 야채 등에 적절한 한국 양념이 곁들여져 아주 맛있게 완성되었다. 거기에 냄비로 밥까지 해서 닭도리탕 덮밥으로 먹으니 그냥 눈물 난다. 와인 두병과 하몽도 순식간에 없어지고, 오늘 다이어트도 물 건너갔다.
아직도 시차 때문에 밤에 뒤척거린다. 새벽 4시에 똥을 한판 때리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6:30에 일어나 다시 한번 더 때리고 아침을 먹었다. 왜 이리 똥에 집착하냐고? 상상 마시라, 배탈이나 변비는 아니니깐. 그저 한번 걸어봐라. 도중에 큰 거 해결할 데가 없다. 거기에 성스러운 순례길 걷는 도중에 똥을 누기가 좀 그렇지 않은가?
7:40분 출발. 바로 흘러나오는 노래 Norah Jones의 ‘What am I to you’
What am I to you
Tell me darling true
To me you are the sea
Fast as you can be
And deep the shade of blue
아 좋다. 나는 당신에게 뭐지? 진실을 말해줘. 너는 바다고 빠르게 다가오는 아주 깊은 파란 그늘이지.
발걸음이 매우 가볍다. 1시간 반 정도 걸으니 오줌이 마렵다. 다음 카페까지는 40분은 더 가야 되는데 어쩐다? 어쩌긴 해결해야지. 급히 옆길로 5미터 들어가 물건을 꺼내 해결하려고 했다. 새벽엔 약간 쌀쌀해서 그런지 이 놈이 몸에 쪼그라들어 붙어 있다. 앞으로 쑥 꺼내 오줌을 갈기는데 좀 그렇네. 앗, 이게 튀어 손가락에 묻어부러. 노상방뇨라 벌 받은 거다. 쩝!
9시 33분 깊은 숲 속을 지나 탁 트인 공간이 나오자마자 Michal Lorenc의 ‘Ave Maria’(https://youtu.be/4Ug5vJiIzBI)가 흘러나온다. 아 진짜 눈물 난다. 미쳐버리겠다. 멜깁슨 감독의 ‘Passion of Christ’ 영화 중 십자가 지고 쩔뚝 쩔뚝 골고다 언덕 올라가는 장면이 아른거리며 눈물샘이 그만 터져버렸다. 한번 위 링크의 동영상 봐라 눈물 터질 거다. 장담한다. 특히 십자가 지는 장면과 어린 시절 넘어지는 교차편집 Scene에서 말이다.
아베 마리아가 다 끝나자 성모 마리아의 선물처럼 첫 카페가 나타났다. Thank God! 그러고 보니 금요일이다. TGIF. 여기서 오렌지주스와 에스프레소 한잔.
또 출발이다. 언덕을 올라와서 비탈을 걷는데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Kyrie(키리에,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기도문)의 절정으로 가고 있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 부분에서 또 눈물 왈칵. 이어지는 Dies Irae(디에스 이라이, 진노의 날)에선 나의 흐느적거림도 극에 달한다. 덕분에 감정에 푹 빠지니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윽고 와이프가 부른 Lorenc의 아베마리아가 나온다. 또 울컥. 왜케 잘 부른고얏!
걷다 아일랜드에서 온 마이클을 만났다. 육십 초반 정도로 보이는 분이다. 아일랜드 하니 그 수도인 더블린이 생각나 혹 더블린에 사냐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사실 더블린 하면 핸델이지. 그 당시 독일에서 건너와 한물간 작곡가로 인식된 핸델이 ‘메시아’를 작곡한 후 런던에서 공연할 공연장을 잡지 못해 백방으로 뛰다 그 곡을 초연한 곳이 멀리 떨어진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할렐루야의 감동을 더블린에서 먼저 맛본 다음 그게 영국과 유럽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 거지.
뭐 좀 안다고? 나도 성가대 테너 파트를 몇십 년째 하고 있는데 한 번은 핸델의 메시아 작곡 계기와 초연한 얘기가 재밌어 극본으로 쓴 적 있거든. 그 극본 쓰고 딱 10년 후 내가 연출해서 우리 교회 무대에 올렸었고. ㅎㅎ. 뭐 극본 필요하면 말하시라. 기꺼이 보내드리지.
다시 마이클 나와라 오버. 마이클은 26년 정도 에너지 분야 엔지니어로 일하다 4년 전부터는 벤처캐피탈을 하고 있단다. 세상에 순례길 와서 벤처투자자를 만나다니. 그래서 얘기가 봇물 터졌다. 최근 성공한 엑싯이 뭐냐 묻길래 자동차 외장수리 모바일 서비스 ‘카닥’에 투자했고 그게 2년 전에 카카오에 인수되어 IRR 100% 넘게 달성했다고 알려주었다. 거기에 펀드레이징 분위기는 어떻고 어떤 업종에 많이 투자하고 등등. 순례길 와서 이런 얘기까지 나눌 수 있다니. 묘하다. 그리고 대화는 이어진다.
마이클: Why are you here?
나: Camino(순례길 이란 의미) Mama just called me.
마이클: Camino Mama?
나: I have met a lady before while I was passing by water taps. She said “Hey, Camino Mama says Stop Walking, Drink Water!”
마이클: A Ha!
그렇다. 까미노 마마가 날 챙겨주신다. 목마른데 넘 급하게 걸어가지만 말고 멈춰 물 한잔 하라고. 우리 인생길도 마찬가지겠지. 그래, 내가 왔다기보다는 카미노가 나를 불렀다. “희우야 여기 와서 걸어 그리고 너 인생을 더 멋지게 살아봐” 이렇게 말하려고 부른 것 같다. (참고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Camino de Santiago라 부른다)
나도 물었다. 왜 걷냐고. 그랬더니 6개월 쉬는데 걸으면서 앞으로 뭘 할지 생각해 본단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 “Camino Mama will help you”
마이클 아저씨 발걸음이 넘 빠르다. 그래서 난 천천히 갈테니 먼저 가라고 했다. 또 만나자고 하면서.
우린 5킬로 정도 더 걸어 ‘트리니다드 데 아레(Trinidad de Arre)’의 ‘Cafe Paradise’에서 다시 만났다. 마이클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난 맥주와 타파스 같은 미니 햄버거를 시켰다. 둘 다 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야외 좌석에서 여유로운 점심을 즐긴다. 내가 맥주를 빨리 먹어서 그런지 컵이 작아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잔은 금세 비워졌다. 맥주 사러 가면서 내가 말했다. “I wanna go to Paradise again” 마이클이 웃는다. 자기도 천국 또 가고 싶다고. 그리고 커피를 시켜 온다. ㅎㅎ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이클에게 다음과 같이 인사했다. One English guy said to me when I had a trouble in walking. Keep your pace. And I asked, you mean ‘keep the pace’ or ‘keep the faith?’ He said ‘both’.
킵 더 페이스, 마이클~
그리고, 5킬로를 더 걸어 오후 1:45 팜플로냐 대성당 앞 알베르게에 잘 도착했다. 오늘 총 23.7킬로 32,659 걸음.
샤워를 했고 빨래를 맡기고 잠시 쉬다 헤밍웨이가 팜플로냐에서 자주 들렀다는 Cafe Iruna(카페 이루냐)에 왔다. ‘노인과 바다’를 jolly 재밌게 읽었던 터라 그가 즐겼던 곳에 가고 싶었다. 그가 앉았던 자리인 진 모르겠지만 바에 앉아 맥주를 시켰다. 그리고 순례기 세 번째 이야기를 쓴다. 그도 여기서 글을 썼을 것이다. 맥주가 늘어날수록 글도 길어진다. 오늘 글이 길어진 건 순전 헤밍웨이 때문이다.
2017.10.06. 오후 5:57분 팜플로냐 카페 이루냐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