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Go Forward, Look Backward!

2017.10.07. Day 4

by 메추리

06 Go Forward, Look Backward!
- 2017.10.07. Day 4


어제는 헤밍웨이 덕분에 긴 순례기를 쓸 수 있었다. 카페 이루냐 앞에 펼쳐진 광장과 많은 상점들, 그중 씨가 샵이 보인다. 씨가 하면 쿠바산이지. 급 쿠바 몬테크리스토가 피고 싶어 진다. 샵 안으로 들어갔지만 낱개로 팔지 않아 그냥 나온다.

돌아오는 길에 산티아고 순례길 상징인 가리비가 그려진 티셔츠와 목걸이를 샀다. 순례자 코스프레 차원에서. 그것을 들고 팜플로냐 대성당의 성금요 미사에 참석했다. 성가대의 선율을 들으며 조용히 기도했다. 안전한 순례 일정과 무사귀환을 위하여. 거기에 약간은 우리 가족의 행복과 나의 미래를 위해. 독자들을 위해선 기도하지 않았다. 이해하시라.

성당 앞 알베르게는 비교적 한산했다. 방 안 12개 침대 중 절반만 차 있었다. 뭐 한적하면 화장실 쓰기도, 샤워하기도 편하고 좋지 뭐.

밤 9시, 밖에 노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 숙소 로비로 나왔다. 한국 청년이 한 명 있길래 얘기를 시작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산티아고 순례길 온 친구인데 쌩장에서 로그르뇨까지 갔다 다시 돌아가는 일정이란다. 그 친구와 비슷한 코드가 많이 있어 얘기가 술술 풀렸다. 쿠바도 마찬가지. 사실 이번에 쿠바 아님 산티아고 둘 중에서 어딜 갈까 고민하다 산티아고로 오게 된 건데 그 친구도 그렇단다.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헤밍웨이, 체 게바라에 쿠바 씨가까지 얘기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11시에 침대로 왔다. 누웠는데 1시에 또 눈이 떠진다. 아직 시차적응이 안되었다. 그리고 밤새 뒤척였다.

이른 새벽 샤워하고 아침을 챙겨 먹고 7:35분 숙소를 떠났다. 순례길도 4일째가 되니 서서히 배낭, 몸, 등산화가 한 몸이 된 것 같다. 근육도 안정되어 가고 발걸음도 가볍다. 쿠바 하바나를 생각하며 브에나 비스타의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팜플로냐 시가지를 막 벗어날 무렵 탁 트인 황토색 밭이 펼쳐진다. 왼쪽엔 태양, 오른쪽엔 미처 사라지지 못한 달, 그 사이로 걸어간다. 기분 좋다. 내가 언제 해와 달을 관통해서 호기 있게 걸어갈 날이 또 있겠는가?

몸이 많이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은 로션도 바르고 스트레칭도 해서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발가락 물집은 이제 시작이다. 왼쪽 약지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더니 오른발 약지와 엄지발가락 바닥으로 확장되었다. 전날 밴드를 붙여 응급조치를 했음에도 물집이 다시 잡히며 쓰리기 시작한다.

이때 산타나의 ‘Smooth’가 나오면서 부드럽게(스무쓰하게) 위기를 넘긴다. 어떻게? 멜로디가 너무 좋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선율에 맞춰 통통 뛰며 걷게 되더라. 음악이 주는 긍정의 힘이다. 이윽고 첫 카페로 향하는 마지막 언덕이 나타난다. 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며 걷는데 귀에선 쇼팽의 녹턴 9번이 흘러나온다. 음악이 힘을 빠지게도 하는구먼. 음악이 주는 부정의 힘이다. ㅎ

두 시간 반을 쉬지 않고 걸어 10시경 첫 카페에 도착한다. 오렌지주스, 에스프레소, 바나나와 복숭아 각 1개를 구매한다. 오렌지주스의 새콤한 맛과 에스프레소의 진한 쓴맛이 교차된다.

멀리 풍력발전소의 거대한 팬들이 돌아가는 언덕이 보인다. 페르돈(용서) 언덕이다. 바람이 세게 분다. 그것도 뒤에서 불어주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언덕은 제법 높다. 계속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멋진 풍경이 보인다. 내가 이미 지나온 길이다. 근데 높이 올라와 뒤를 보니 뭔가 다르더군.

2년 전 산티아고 순례 일정 중 새벽에 언덕을 헐떡거리며 걸을 때다. 난 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 8구간(110킬로)만 걷는 일정으로 온 터라 기존 30일 가까이 700킬로를 걸어온 강철체력 순례자들을 따라잡을 수 없음에도 불구 무리하게 앞 순례자 꽁무니만 보면서 쉬지 않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전날 만난 영국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Look backward, it’s so beautiful!”

난 앞만 보고 걸었다. Go Forward, Go Forward. 뒤에선 아름다운 태양이 뜨며 물안개가 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가끔 뒤돌아 봐야 한다. Look Backward.

우리 인생도 그런 거 아닌가? 앞만 보고 성공을 위해 돈을 위해 달려만 온건 아닌지. 가끔 뒤돌아 보며 나의 발자취도 보고 잘 왔는지 잘못 왔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을 텐데. 그 발자취가 아름다웠는지 지저분했는지도 봐야 앞으로 나가는 방향성을 조절할 수 있을 텐데. 그래 페르돈(용서의 언덕) 정상을 앞두고 이런 기억이 떠올라 참으로 다행이지. 신께서 용서해 주시겠지.

이제 페르돈 정상(790미터)이다. 바람은 매우 세졌다. 옆에 철판으로 만든 순례자 상들이 보인다. 순례자 무리 중 마지막 순례자의 말(Horse)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별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바람이 지나가는 곳’

페르돈 정상엔 바람이 정말 세다. 그래서 풍력발전을 하는 거겠지. 이곳, 별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나도 바람맞으며 지나갔다.

이후 급경사가 있었고 내리쬐는 10월의 강렬한 태양도 있었다. 뜨거운 햇빛에 약간의 바람 도움을 받아 오후 2시 좀 넘어 오늘 목적지 ‘푸엔테 라 레이나’에 잘 도착했다. 37,674걸음 27.64킬로.

도중에 12시쯤 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은 바나나와 사과껍질을 정리 안 하고 그냥 간다고 어르신들에게 욕 직살나게 얻어먹었다. 정신이 버쩍 들었다. 담부터 더 조심해야겠다. Humble Me, Lord!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옷 널고 빠에야와 맥주를 먹고 순례기를 쓰고 이제 자련다.

2017.10.07. 오후 9:41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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