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1. Day 8
10 I don’t know how to love him
- 2017.10.11. Day 8
어제 숙소는 기부로 운영되는 성당 소속 알베르게이다. 점심 먹고 들어가니 아직 몇 사람 없다. 샤워는 했는데 빨래는 세탁기가 없어 바로 포기. 그리고 누워 잠깐 눈을 붙였다. 뭔가 소리가 들려 깼는데 저쪽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순례자가 그런다. “You are snoring so loudly”
즉시 미안하다고 했다. 근데, 외국애들은 이렇게 대놓고 얘기하나? 기분은 좋지 않았다.
밖으로 나갔다. 저녁식사는 숙소에서 8:15분에 준비된다고 해서 맥주나 한잔 하려고 나선 거다. Bar를 발견하고 들어가려다 그 옆에 씨가 샵이 보여 먼저 들렀다. 씨가 얘기하니 쿠바 아바나 몬테크리스토를 바로 보여준다. 1개 7.9유로 하는 것 2개를 구입했다.
빠에 홀로 앉아 일몰과 함께 잠시 여유를 갖는다. 빅베이슨 윤필구 대표가 ‘순례기를 한번 시로 써보는 게 어떻냐’고 한 적이 있었다. 맥주 마시니 하필 그게 떠오를게 뭐람. 제길. 그래서 쓴 시다. ㅎㅎ
순례 1
발가락에 밴드 세 개
갈라진 발바닥
부어 오른 발목
까무잡잡 피부
길어지는 수염
빠지는 살
커져가는 끈기
깊어가는 생각
고독, 그리고
내 본모습과의 대면
이게 순례다
맥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그 담배가게에 다시 들러 Cigar 컷팅을 하고 성냥을 빌려 불을 붙였다. 알코올에 씨가 까지 빠니 잠깐 핑 돈다.
8:15분, 저녁식사 시간이다. 식사 전 순례자들 각자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아르헨티나, 핀란드, 이태리, 영국, 코리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소개 후 찬트를 부르는 시간을 갖는다. 주인장이 가사 내용에 대해 스페인어와 영어로 알려준다.
< Chant des Pelerins de Compostelle(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위한 노래 >
Ultreia Ultreia Esuseia, Deus, adju vas nos(계속 걷고 계속 걷고 성장하고, 하느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거다)
기도를 대신한 찬트가 끝나고 식사에 돌입했다. 사실 무료 숙박에 나오는 무료 식사라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풍성한 샐러드에 미트볼 요리는 여느 식당의 10유로짜리 순례자 메뉴보다 나았다. 기부를 부르는 정성과 맛이었다. 와인까지 부딪치며 같이 식사하는 모든 순례자가 만족해한다. 7유로 기부만으로 부족해서 오늘 식사 한 20인분 설거지까지 하기로 했다.
설거지 메인은 아르헨티나 세바스찬이 맡고 난 그가 씻은 그릇을 헹구는 일을 했다. 설거지하며 물어봤더니 이 친구는 아르헨티나 남극연구소에 근무한단다. 맙소사. 거기에 생물학자란다. ㅎㅎ 담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 로켓 타고 화성(Mars) 갈 때 꼭 델꼬 가야겠다. 혹 조난당할지 모르니 감자라도 키워 먹게 말이다. ㅎㅎ
오늘은 6:25 출발했다. 기온 6도라는데 체감기온은 어제보단 덜하다. 그래도 새벽엔 춥다. 40분을 걸어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와서야 하늘을 처음 본다. 오늘도 별이 총총. 덥겠다. ㅋ 근데 지금은 춥다 손끝에 입금을 불며 걷는다.
새벽 순례는 나의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별빛 달빛을 벗 삼아 홀로 고독에 빠지는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중 막달라 마리아가 부른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이 나온다. 이 곡은 팀 라이스가 작사를,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감미로운 곡이다.
I don't know how to love him.
What to do, how to move him.
I've been changed, yes really changed.
In these past few days when I've seen myself,
I seem like someone else.
I don't Know how to take this.
I don't see why he moves me.
He is a man, he's just a man.
And I've had so many men before,
In very many ways,
He’s just one more.
그 남자를 어떻게 사랑할지 모르겠어요
뭘 해야 할지? 어떻게 그 남자의
마음을 움직일지
나는 바뀌었어요 정말 예전과 달라졌어요
나를 보면 요 며칠 동안은 정말 다른 사람 같았어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남자가 어떻게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남자예요 한 남자일 뿐이에요
난 예전에 숱한 남자들을 만나봤거든요
그 남자는 그저 한 명 더에 지나지 않아요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중에서)
때론 나도 막달라 마리아의 심정이 되곤 한다. 나도 신을 어떻게 사랑할지 잘 모른다.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도. 그저 또 한명일뿐이라는 생각도 한다. 노래를 듣는 내내 계속 가사와 멜로디가 맴돈다. 어떻게 사랑하지? 내가 바뀐 건가? 아님 바뀌어 가고 있는가? 오늘 새벽 순례길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어쨌든 13.44킬로를 와 오전 9시에 첫 휴식을 갖는다. 오렌지주스와 사과하나 단출한 간식이다. 좀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지미를 또 만났다. 매일 아침 아론 이란 몰트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출발한다네. ‘와 좋겠다’ 맞장구를 쳐 줬는데 짜슥이 위스키 한 모금 안주네. 쩝! 직장 관두고 1년 여행 다니는데 첫 코스로 산티아고 왔다고 한다. 이런 친구들이 제법 많다.
매일 만나는 이태리 나폴리에서 온 빈첸코 부부도 반갑다. 강남스타일 노래도 알고 멋진 할배다. ㅎㅎ
가다 목도 마르고 힘들어 포도를 따먹었다. 첫 번째 거는 포도송이가 작은데 비해 엄청 달았는데 두 번째는 송이는 큰데 맛은 시었다. 작은놈은 영양분이 더 응축되어 단맛이 진해진 듯하다.
오늘은 도로 옆으로 계속 이어지는 지루한 길이다. 바닥도 딱딱하고 풍경도 그닥 재미없다. 그늘도 없고 쉴만한 Bar도 거의 없다. 그런데 가야 하는 거리는 30킬로 가까이 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포도밭과 먼지 펄펄 날리는 딱딱한 길이 나를 힘들게 한다. 까미노는 이렇게 매일 다르게 힘들다. 물집도 발바닥도. 오늘은 특히 뜨거운 햇살과 지루함 때문에 더 그렇다.
넘 힘들어 오히려 9시부터 쉬지 않고 네 시간을 내달려 이른 1:10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44,230걸음으로 31.19킬로를 왔다.
2017.10.11. 오후 8:53에 스페인 나헤라 알베르게에서 쓰다.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며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