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2. Day 9
11 One-Hour Cold
- 2017.10.12. Day 9
어제 저녁은 해물라면으로 했다. 마트에서 산 해물(새우, 관자, 오징어 등)과 소시지를 잔뜩 넣어 한국인 친구가 준비해온 라면과 함께 끓였다. 역시나 와인은 내가 준비했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태리 셰프 출신 순례자가 스파게티를 산더미처럼 해서 나눠주고 있는 게 아닌가. 물어보니 미리 신청을 받아 인당 4유로 받고 팔고 있는 거였다. 보통 식당에 순례자 메뉴가 10유로 정도니 맛과 양, 그리고 귀차니즘을 고려했을 땐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나도 조금 맛봤는데 매우 훌륭하다. 참으로 대단한 친구다. 순례길 다니면서 돈도 조금 벌고 자기 재능을 베풀고. 내일은 나도 신청해서 먹어 보련다.
식사 후 한국서도 요리사로 근무한 경험 있는 Pau라는 친구와 어울렸다. 홍대 부근 스페인 식당에서 빠에야 요리를 주로 했었단다. 한국어도 몇 마디 할 줄 알고 괜찮은 친구다. 와인, 음식, 그리고 멋을 아는 친구들과 환상적인 밤을 보냈다.
오늘은 6:55에 출발했다. 다소 늦잠을 잤다. 한국서 사온 선블록이 다 떨어져 어제 나헤라(Najera)에서 산 스프레이형 선블록을 아침에 급하게 뿌리고 나오다가 그게 눈에 들어가 의도와 달리 새벽부터 눈물 흘리며 걷고 있다. 아침 기온 6도, 하늘 별을 보니 오늘도 춥고 덥겠다.
오늘은 앞에 플래시 비춰가는 아저씨 따라서 걸어 그런지 길을 덜 헤매고 있다. 복이다. 좀 있다 그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는데 ‘It’s so cold’라고 하니 ‘It’s only one-hour cold’란다. ‘Sun comes out, It will be OK’란다. 그러면서 코를 땅바닥에 휙 풀고 간다. ㅎㅎ
원 아워 콜드는 해가 뜨면 바로 없어진다. 그걸 알기에 반바지로 걷지만 그 한 시간 동안 콧물도 많이 나오고 춥긴 하다.
덩샤오핑. 중국의 지도자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위대한 지도자다. 하버드대 ‘에즈리 보걸’ 교수가 쓴 매우 두꺼운 ‘덩샤오핑 평전: 현대 중국의 건설자’를 보면 서양 학자의 객관적 시각으로 쓰인 덩샤오핑의 일생을 볼 수 있다.
난 이 평전의 내용 구성부터 맘에 들었다. 그는 1904년에 태어나 1997년 93세의 나이로 운명하셨다. 그의 일생을 보면 그가 권력의 전면에 드러나기까지 65년이 걸렸다. 이 책도 그 65년을 전체 책 구성 중 1/10로 가볍게 처리했다. 즉, 쓰촨성에서 태어나 프랑스 유학, 그리고 대장정 참가, 중화인민민주공화국 건설, 고급 간부로의 생활, 문화대혁명의 고난, 두 번의 추방과 복귀까지를 짧은 하이라이트로 빠르게 써 내려갔다. 맙소사. 인생에서 65년이면 모든 걸 이룬 나이대인데. 그런데 덩샤오핑은 그때부터 자신이 품었던 뜻을 이뤄가기 시작했고 드디어 1978년 74세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일인자에 오른다.
그는 실제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현대 중국의 건설자이다. 정치적으로는 모택동에 대한 존경은 유지하되 경제적으론 노선을 달리 감으로써 사회주의자들과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을 동시에 없앴고,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경제성장도 가속시켰다. 천안문 사태에 대한 진압 등 오점도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헌법을 개정하여 5년 중임 원칙을 세웠으며 이 부분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권력의 균형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상하이방인 장쩌민(1990-2003, 13년) 이후 공청단 계열의 후진타오(2003-2013, 10년), 혁명 자녀 출신인 태자당 계열의 시진핑(2013-2022, 10년 예정)까지 어느 한 계열이 연속해서 집권하지 못하도록 교차 정권수립을 거의 시스템화했다. 뭐 이게 시진핑의 야욕으로 어떻게 될지 올해 11월 19기 1중전회가 흥미로워지긴 하다.
이런 덩샤오핑이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65년을 모택동 밑에서 참고 견뎠다. 문화대혁명 시절 하방 당해서도 복귀 이후 생각을 정리하며 견뎠다. 그 오랜 인내 끝에 현대 중국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고 그것을 완수까지 해낸 거다. 장장 65년을 견디며 말이다.
그런데 난 고작 ‘One-Hour Cold’ 가지고 손 시럽 다고 콧물 훌쩍 거리며 난리를 치고 있으니. 한심하다.
그래도 추워 6.47킬로 걸은 8:10에 빠에서 따뜻한 커피로 추위를 조금 녹였다. ㅎㅎ
그리고 다시 걷는다. 한국에서 온 윤덕이랑 대화를 많이 했다. 의대 휴학하고 6개월간 돈 벌어 4개월간 배낭여행 다니는 친구다. 멋지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이십 대 초반인데 이렇게 주도적으로 살다니.
언덕. 10:10 휴식. 13.89킬로. 그리고 복숭아 하나.
멀리 산토도밍고가 보인다. 그때 ‘You raise me up’이 나온다. 앞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양팔을 벌리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내 몸이 살짝 들려짐을 느낀다. 발걸음이 가볍다.
12:05에 산토도밍고 알베르게 도착. 31,502걸음으로 22.33킬로를 오다.
점심 식사 중 스코틀랜드 지미(많이 뚱뚱하다)를 또 만났는데 자기는 도착했는데 배낭이 아직 도착 안 했다네. 이 친구는 가끔 다음 숙소까지 배낭을 택배로 보낸다. 이런 것을 한국애들은 ‘Donkey Service’라 부른다. 지 힘으로 자고 안 가고 당나귀 등에 태워 보낸다고.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했다.
You are faster than your bag!
좀 있다 스페인 셰프 순례자 Pau를 만났다. 오늘 저녁도 요리 할거냐 물으니 한단다. 얼마냐 물으니 5유로 한단다. 어제 보다 비싸다. 이내 이 친구는 스파게티가 아니라 소고기 스튜라서 그렇단다. 기꺼이 5유로를 지불했다.
세계 각지의 순례자들과 함께 즐기니 넘 좋다. 오늘도 아름다운 밤이 될것 같다.
2017.10.12. 오후 7:14 산토도밍고 숙소 소파에서 편하게 기대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