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빠책을 사모으는 남자

by 은예진

“그게 무슨 소리야? 은서아가 대학도 가지 못했다고?”


우혁은 민석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은장환 피디가 죽었을 때 우혁은 꽤 큰돈을 유가족에게 보내주었다. 그러고도 해마다 서아의 학자금 조로 수천만 원씩을 보냈다.


“서아 학자금으로 보낸 돈이 있는데 그건 어쩌고?”


“알아보니 서아 계모인 고윤희가 네가 보낸 돈으로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니는 것 같더라고. 그러면서 서아더러 이복동생 뒷바라지를 시키는데 이건 뭐 완전히 신데렐라 저리 가라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우혁이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돈만 보내면 되는 줄 알았다. 돈이 있으면 아무리 계모라도 서아를 제대로 보살필 줄 알았다. 서아가 이렇게 된 게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서아가 어떻게 산 건지 자세히 좀 얘기해 봐.”


“고윤희 머슴에 돈줄로 살았어. 하루 열두 시간씩 디저트 카페에서 일하면서 놀고먹는 계모랑 플루트를 하는 이복동생을 먹여 살리고 있어. 원래 르 꼬르동 블루로 제과를 배우러 가고 싶어 하는데 돈을 모을 수가 있어야지.”


“하, 나 참 기가 막혀서. 아니 걔는 나한테 하는 걸 보니까 맹랑하기 짝이 없던데. 알고 보니 숙맥이네.”


“그러게 너무 착해서 탈인 거 같은데. 계속 그런 식으로 살다가는 계모한테 인생 탈탈 털리고 껍데기만 남을걸.”


“아무리 그래도 내가 보내준 돈만 해도 어지간한 월급쟁이 연봉인데 어떻게 썼기에 서아가 대학도 못 가고 벌어서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는 거야?”


“네가 준 돈이 엉뚱한 놈한테 흘러간 거 같기도 하고…….”

“뭐라고?”


우혁이 휙 돌아서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황한 민석은 손을 흔들며 그건 정확한 게 아니니 못 들은 거로 하라며 쩔쩔맸다. 그때 민석의 전화벨이 울렸다. 민석은 낯선 번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받았다.


“여보세요?”


-저기, JK401 장민석 대표님이신가요?


“그런데요. 누구신지?”


-저 은서아라고 하는데요. 강우혁 씨가 책을 찾으려면 이리로 연락하라고 해서 전화드렸는데.


민석이 핸드폰을 내리고 우혁을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은서아라는 입모양을 본 우혁이 손짓하며 빨리 불러들이라고 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계신 곳을 알려주시면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 명함에 있는 주소로 찾아가면 되나요?


“강우혁 씨가 집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데 집은 함부로 알려드릴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말씀해 주세요. 제가 가겠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이 번호로 주소 보내 드릴 테니 오후 일곱 시까지 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민석이 우혁을 향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어쩔 거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나야 책 돌려주고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네가 그럴 놈이 아니지.”


우혁은 미간을 찡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그의 입에서는 서아의 이름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은서아라…….”






은서아가 보내준 주소는 가로수 길에 있는 알라메종이라는 디저트 카페였다. 여섯 시 오십 분쯤 도착해 문자를 보내놓자 은서아가 카페 문을 열고 타달타달 걸어 나오고 있었다. 긴 머리를 돌돌 말아 묶고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 하나만 입은 이십 대 초반의 서아는 대학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젊은 여자였다.


민석은 서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데 뭔가 정확히 꼬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예쁨이 있었다. 매일 접하는 미녀 연예인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예쁨이었다. 성형의 흔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얼굴은 자연스럽고 싱그러워 보였다.


처음 본 순간 봄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여자였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피곤한지 발걸음이 그다지 가볍지 않은데 그럼에도 생기가 가득한 젊음이 느껴졌다.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으로 서아를 보고 있던 민석은 가까이 다가온 서아가 창문을 두드리자 화들짝 놀랐다.


“장민석 대표님?”

“아, 네. 그러니까. 네.”


차창을 내린 민석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버벅거렸다. 산전수전 다 겪고 공중전도 겪어본, 예쁜 여자라면 날마다 질리게 보아온 민석이 지금 당황한 것이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은서아 씨. 타시지요.”


서아가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조수석에 올라탔다. 민석은 입을 꽉 다문 채 차를 몰아 우혁의 집으로 향했다. 서아는 낯선 남자의 차에 탄 것이 불편하고 어색한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우혁이가 은 피디님 책을 사 모으는 일에 좀 집착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책을 오래 찾아다녔어요.”

“저, 정말요? 저만 우리 아빠 책 사 모으는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이 또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그러게요. 저도 우리 우혁이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강우혁 씨는 왜 우리 아빠 책을 사 모으는 거예요? 우리 아빠랑 같이 작품을 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직접 물어보세요. 다 왔습니다.”


차는 한남동 타운 하우스 단지로 들어섰다. 단지 입구에서 경비실을 통과한 차는 꼬불꼬불한 길을 타고 올라가 언덕 제일 끝에 있는 집 앞에 섰다.


“여기가 강우혁씨 집이구나.”


서아는 차창을 내려 고개를 뺀 채 성처럼 우뚝 서 있는 우혁의 집을 바라보았다. 한남동 타운 하우스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라 모든 게 신기했다.


“여기 배우 윤채영도 살고 있다고 하던데?”

“네, 맞습니다. 바로 저기 사는데……. 어? 지금 들어오네요.”


서아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뒤따라 들어오는 빨간색 스포츠카를 바라보았다. 스포츠카가 멈춰 서더니 차에서 윤채영이 내렸다. 큰 키에 늘씬한 여배우가 세상 혼자 사는 것처럼 도도한 표정으로 내려 다가왔다.


“누구?”


서아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한 눈빛으로 윤채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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