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혁은 품에 날아든 서아를 안고 균형을 잡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다. 그 바람에 선글라스가 내려와 코에 걸렸다. 정신을 차린 우혁이 재빨리 서아를 밀어젖혔다. 두 사람 모두 얼떨떨한 상황이었다.
“뭐야?”
“부탁이에요. 그 책 저한테 넘겨주시면 안 될까요? 강우혁 씨한테는 큰 의미가 없을 테지만 저한테는 어렵게 찾던 아빠가 쓰신 책이란 말이에요.”
“아빠가 쓰신 책?”
“네, 그 책을 쓴 은장환 피디가 저희 아빠예요. 저는 돌아가신 아빠가 생전에 쓰신 책을 모으는데 그 책을 찾지 못해서 오래 기다렸거든요.”
우혁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서아는 그 와중에도 우혁의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깜짝 놀랐다. 연예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비록 아빠가 유명 드라마 피디였다고 하지만 아빠는 거의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연예인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었다.
미간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우혁이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서아에게 주었다. 명함에는 JK401 기획 장민석 대표라고 쓰여 있었다.
“네가 정말 이 책을 찾고 싶으면 이리로 전화해. 내가 널 믿고 내 전화번호를 함부로 줄 수는 없으니 우리 매니저한테 하도록.”
“그냥 지금 주면 안 돼요. 강우혁 씨한테 그다지 중요한 책도 아니잖아요.”
우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서아를 노려보았다.
“그걸 네가 왜 판단해? 내가 그 책이 중요하지 않으면 미리 주문해 놓고, 다른 사람을 시키지도 않고 몸소 찾으러 갔겠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라.”
아빠의 책을 되찾아야 한다는 마음에 우혁에게 뛰어들었지만 막상 우혁이 반말을 계속하자 기분이 상했다.
“이봐요. 내가 아무리 사정하는 처지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처음 본 사람한테 이런 식으로 반말을 해도 되는 거예요?”
우혁이 우습다는 듯 허리를 굽혀 집게손가락으로 서아의 이마를 콕콕 찔렀다.
“너는 반말 들으면 기분 나쁘고 나는 아저씨라는 말 들으면 기분 안 나쁘겠니? 내가 이, 강우혁이가 아저씨라니!”
“쳇!”
서아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쳇 소리가 튀어나왔다.
“너, 책 찾기 싫은 모양이구나. 싫으면 관둬라.”
강우혁은 몸을 휙 돌려 서점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서아는 재빨리 따라 나가 우혁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언제 전화해요? 아무 때나 해도 되는 거예요?”
우혁은 서아를 흘깃 보더니 인심 쓰듯 말했다.
“네가 전화하면 내가 시간을 정해주지. 알다시피 월드 스타 강우혁이 그리 한가한 사람은 아니거든.”
“풋!”
서아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혁이 허세가 심하다는 건 알았지만 자기 입으로 월드 스타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대박이었다.
“웃어? 너 지금 나 비웃었니?”
서아의 팔을 움켜쥐려 했던 우혁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고 물러섰다.
“너, 그런 식으로 하면 이 책 절대 못 받을 줄 알아라.”
우혁이 책을 흔들며 그녀 곁에서 멀어져 갔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자 금세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사무실로 들어간 우혁이 책상 위에 은장환 피디의 책을 내려놓았다. 책을 흘끔 본 민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 아직도 은 피디님 책을 사 모으니? 너도 참 그만큼 했으면 됐지…….”
민석은 혼잣말인지 아니면 우혁에게 하는 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혁은 그런 민석의 말을 무시하고 생각에 잠겼다.
은 피디님 딸이라면 서아 일거다. 서아 이야기를 할 때마다 피디님의 얼굴에 번지던 따스함이 잊히지 않는다. 중학생이었던 서아가 저렇게 많이 컸구나. 해마다 돈을 보내주면서도 서아가 어떻게 사는지는 알아보지 않았다.
턱을 고이고 생각에 잠긴 우혁의 어깨를 민석이 툭툭 치며 기획안을 내밀었다.
“이거 한 번 볼래? 연예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데 너 여친 없다고 섭외 일 순위라고 하던데.”
“됐거든. 카메라 앞에서 이벤트 하는 거 생각만 해도 오그라든다.”
“자식! 그런 것도 해보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다.”
“민석아!”
우혁이 갑자기 나지막한 목소리로 민석을 불렀다. 민석은 그런 우혁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 저런 표정과 목소리는 강우혁이 어려운 부탁거리가 있을 때 사용하는 버전이다.
“뭐야? 뭔데 이래?”
“오늘 이 책 때문에 은 피디님 딸을 만났어. 은서아 말이야.”
“그래서?”
“내가 그동안 한 것도 있고 하니 잘 살긴 했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좀 알아봐 주라.”
“그것뿐이야?”
“그럼 뭐가 더 있겠어. 참, 은서아 보고 네 연락처로 전화하라고 했어. 그런데 걔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아는 내색은 하지 말고. 그냥 저 책 때문에 연락하라고 했을 뿐이야.”
“나는 네가 더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혁은 민석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일어섰다.
“들어준다고? 알았어. 생큐!”
“야, 야, 내 말 좀 들어 봐!”
민석이 소리쳤지만 우혁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1인 기획사인 JK401은 장민석과 강우혁이 초등학교 4학년 1반 동창이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그렇게 오래되었고 그만큼 허물이 없었다. 강우혁의 K보다 장민석의 J가 앞에 들어간 이유는 케이제이보다는 제이케이가 더 발음하기 쉬워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