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파트타임 근무로 바꾸겠다는 서아의 말에 알라메종 김 사장은 뭐가 문제냐고 화를 냈다.
“급여가 더 많은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파트로 알라메종 일도 같이 할 생각입니다.”
“아니 왜? 서아 씨 파티시에가 꿈이잖아. 그럼 파티시에 일을 해야지 무슨 일을 한다는 거야?”
“사장님이 매번 말씀하셨잖아요. 르 꼬르동 블루를 나오지 않은 애들이 어떻게 제과를 알겠느냐고요. 그래서 어렵더라도 돈을 더 벌어서 르 꼬르동 블루로 유학 갈 계획입니다.”
“네가?”
김 사장은 뭐가 못마땅한지 반복해서 ‘네가?’를 중얼거리며 서아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왜요? 저는 르 꼬르동 블루 가면 안 되나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알았어. 알았으니 그만두지만 마라.”
김 사장은 정말 삐진 티를 내느라 입술을 샐쭉거리며 돌아서 가버렸다. 뒤에서 보고 있던 은지가 다가와 사장의 뒤통수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저 인간 네가 솜씨 좋은 건 알아서 그만둘까 봐 걱정은 되나 보다.”
“내가 솜씨가 좋다고?”
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은서아, 그럼 네가 솜씨가 좋지 누가 솜씨가 좋냐? 너, 잘난척하는 르 꼬르동인지 꼬락서니인지 출신들보다 더 잘하는 거 사람들이 다 알아.”
“에이, 무슨.”
서아는 은지의 말이 어림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은지는 그런 서아가 답답하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었던 모양인데 입을 벌리려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남자친구 전화를 받은 은지는 앞에 있는 서아도 잊은 채 헤헤거리며 전화받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서아는 밖에서 기다리는 우혁 때문에 은지가 신경 쓰였던 터라 재빨리 자리를 떴다. 은지는 퇴근 시간이 겹치면 팔짱을 끼며 가로수 길을 돌아다니자고 조를 때가 많았다. 오늘도 혹시 그럴까 봐 걱정했는데 은지의 남자친구가 구해주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 음이 들렸다.
<좌측 건물 유료주차장에 있음.>
‘우와 강우혁 진짜 귀신같네.’
서아가 중얼거리며 주차장을 찾아갔지만 막상 어떤 차가 우혁이 탄 차인지 알 수 없었다. 아침에 그녀를 데려다준 차는 검은색 SUV 포르셰였는데 주차장에는 그 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두리번거리고 있자 바로 그녀 앞에 있는 은색 벤츠에서 경음기 소리가 났다. 화들짝 놀란 서아가 바라보자 장 대표가 문을 열고 나왔다.
장 대표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서아의 이름을 불렀다.
“아, 안녕하세요.”
서아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장 대표도 따라서 고개를 숙인다. 우혁의 수려한 외모에 비하면 장 대표는 그냥 일반인지만 일반인으로 보면 꽤 잘생긴 얼굴이다. 거기다 우혁과 막상막하인 키에 인상이 좋아서 믿음직스러운 스타일이다.
장 대표가 조수석 문을 열자 안에서 우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혁이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장 대표는 재빨리 조수석 문을 닫고 뒷좌석 문을 열었다.
“타세요.”
아무 생각 없이 올라탄 서아는 그제야 자기가 우혁과 나란히 앉아야 한다는 걸 알고 주춤거렸다.
“뭐야? 조수석에서 같이 탈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뒷자리에 나란히 앉는 건 신경 쓰여?”
서아는 대답 대신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문질렀다.
“민석아, 백화점으로 가자.”
“방 안 꾸며도 된다니까요.”
“쉿.”
우혁이 이 사이로 바람소리가 나게 쉿, 쉿 거리며 가만있으라는 눈치를 주었다. 서아는 하는 수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장 대표도 우혁도 입을 다물고 있자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침묵이 견디기 어려워진 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뭐?”
“강우혁 씨는 일 안 하세요?”
“응?”
“저한테 신경 쓰는 거 보면 엄청 한가해 보여서요.”
운전하던 장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키득거렸다. 우혁은 헛기침을 하며 좌불안석을 못하는 눈치였다. 서아는 자기가 뭘 또 잘못한 건가 싶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야, 원래 아티스트들이 작품 안 할 때는 한가하잖아. 작품 들어오면 이제 정신 없어져.”
“서아 씨, 잘 물어봤어요. 우혁이가 일이 들어와도 안 한다고 계속 튕기는 바람에 제가 속을 많이 썩고 있거든요. 야, 우혁아, 너 서아 씨한테 일하는 것 좀 보여줘 봐.”
“시끄러워. 제대로 된 책을 가지고 와서 말해. 어디서 하나같이 나까(삼류 스타일)만 들고 와서 일하라고 야단이야.”
장 대표가 백미러로 우혁을 힐긋 보며 한숨을 쉬었다. 서아는 그런 장 대표의 얼굴을 보며 저 일도 쉽지 않구나 생각했다.
백화점에서는 자연스럽게 우혁 옆에 장 대표, 그 옆에 서아가 섰다. 선글라스를 쓴 우혁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에스컬레이터를 탔지만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을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아는 고개를 숙인 채 장 대표 옆에 바싹 붙어 걸었다. 우혁은 그런 서아가 못마땅한지 흘끔 보더니 자리를 바꿔 그녀를 가운데 두고 섰다.
“저리로 가세요.”
“싫은데.”
“진짜, 왜 이러는 건데요?”
서아가 어쩔 줄 몰라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재미있다는 듯 히죽 웃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걸어. 사람들 생각보다 신경 안 써. 앞으로 나랑 엄청 많이 다녀야 하는데 이렇게 불편하면 어떻게 살래?”
“다니긴 누가 다녀요. 나 강우혁 씨랑 안 다녀요. 가사도우미가 무슨 고용주랑 백화점 다닐 일이 있어요.”
“백화점에 식료품 코너도 있잖아. 내가 먹을 건데 너 혼자한테만 맡길 수 없지.”
우혁이 실실 웃으며 서아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민석이 고개를 돌려 우혁을 노려보았다. 우혁은 민망한 듯 손을 내리며 투덜거렸다.
“야, 내가 이 정도도 하면 안 되냐?”
“남들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지금 여기서 서아 씨한테 함부로 하는 게 문제지. 몰라서 물어?”
단호한 장 대표의 말에 우혁이 무르춤하니 기가 죽었다. 서아는 재빨리 장 대표 뒤로 가서 우혁을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 재빨리 집어넣었다.
“야, 너 까불래?”
“흥.”
서아가 자기도 모르게 장 대표의 팔을 잡고 앞으로 나갔다. 뒤에 남은 우혁은 그걸 보고 어이가 없는지 씩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