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보다 1
지금껏 봐온 복수와는 다른 생소하기도 하고 품위 있기도 한 복수 이야기다. 구찌의 크레이티브 디렉터 출신으로 유명한 톰포드가 감독한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를 봤다. 전작 '싱글맨'에서는 정제되고 세련된 분위기로 연인을 잃은 남자 토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싱글맨을 떠올리면 게이로 분한 콜린퍼스의 세련된 모습이 생각난다. 싱글맨에 비해서 '녹터널 애니멀스'는 보다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엄청난 초고도 비만의 여자들이 누드로 춤을 춘다. 늘어진 뱃살 때문에 나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와이존이 가려질 만큼 뚱뚱한 여자들이 기괴한 표정으로 시청자를 향해 손짓한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장면에 당황한다. 그리고 곧 그 장면들은 주인공인 수잔의 예술 작품임이 드러난다.
오늘은 수잔이 자신의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개막날이다. 그렇게 중요한 날 그녀의 남편 휴톤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뉴욕의 호화로운 사교계 안에서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수잔. 부유한 사업가 남편과 예술적 성취, 대학에 다니는 딸까지 수잔은 외연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완벽해 보이는 삶이 실은 겉치레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식되어 가는 수잔을 흔들어 놓은 것은 이십 년 전에 헤어진 전남편 에드워드에게서 온 소포였다. 에드워드는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소설을 수잔에게 바친다는 문구를 넣어 그녀에게 보냈다.
영화는 여기에서 삼중 구조를 가지고 흘러간다. 지금 현재 수잔의 삶, 그리고 애드워드가 쓴 소설 속 이야기와 이십 년 전 수잔과 애드워드의 이야기다. 액자 구성을 가진 영화는 세 개의 이야기를 교묘하게 배치하며 시청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소설을 읽기 시작한 수잔은 애드워드가 친 거미줄에 꼼짝없이 얽혀 들고 만다. 애드워드는 이십 년이나 기다려서 수잔의 삶이 가장 위태로워진 순간 우아하면서도 차가운 복수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이제 수잔은 애드워드가 원한대로 황폐한 사막 위에 홀로 서게 될 것이다.
소설은 토니라는 남자가 아내 로라와 딸 인디아와 함께 오래된 클래식카를 타고 텍사스로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토니의 역할은 소설을 쓴 애드워드가 한다. 작가인 애드워드는 소설 속 토니가 되어 자신이 쓴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람도 없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아 텍사스가 매력적이라고 하던 토니는 어두운 밤 고속도로에서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두대의 차에 막혀 꼼작하지 못하게 된다. 차에 탄 건달들은 토니의 차를 밀어붙여 세우고 타이어가 펑크 났으니 어차피 움직이지 못한다며 그들 가족을 끌어내린다.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토니는 건달들에게 무력하게 두 사람을 빼앗기고 사막에 버려진다. 겨우 도망쳐 경찰을 데리고 다시 자신이 버려졌던 장소로 돌아간 토니는 그곳에서 알몸으로 서로를 껴안은 채 숨져있는 아내와 딸을 발견하게 된다.
범인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홀로 살아가던 토니에게 담당 수사관 바비가 연락을 해온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세 사람이 강도를 저지르다 한 명은 죽고 두 명은 도망갔다며 그들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텍사스로 찾아간 토니는 어이없게 된 잡았던 두 명의 범인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때 담당 수사관 바비가 자신의 병을 고백한다. 폐암 말기로 나는 어차피 죽는다. 죽기 전에 작혹한 범죄자들을 처단하고 싶다. 토니는 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범죄의 전말을 듣고 그들을 처벌하고 싶었지만 그에 실패한 바비가 범인중 한 명인 루를 죽인다. 나머지 한 명인 레이가 도망가고 토니는 레이를 쫓아 간 트레일러에서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듣게 된다.
레이는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람은 욕납할 수 없는데 그녀들이 자신을 무시했다면 죽어도 싸다고 했다. 총쏘기를 주저하던 토니는 마침내 방아쇠를 당기지만 레이의 공격을 받아 그도 눈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다음날 해는 떴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토니가 풀숲을 헤치며 걷다 쓰러진다.
복수가 끝난 것 같지만 이미 토니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녹터널 애니멀스 속의 토니는 현실의 작가 에드워드였다. 뉴욕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던 수잔은 애드워드와 사랑에 빠져 텍사스로 떠났다. 수잔의 어머니는 그녀가 자신을 닮았다면 절대 연약한 에드워드와의 결혼생활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수잔의 어머니가 한 경고는 옳았다. 수잔은 현재의 남편 휴톤과 사랑에 빠져 에드워드의 아이를 낙태하고 그의 곁을 떠났다. 당시에 에드워드가 받은 상처는 토니가 낯선 사막에서 아내와 딸을 빼앗기고 울부짖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수잔이 가장 위태로운 시기, 남편은 다른 여자와 여행을 떠났고 자신의 커리어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애드워드는 그녀를 향해 아주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던졌다. 수잔은 이제 무너져내리는 자신의 삶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버림받고 이십 년이나 지난 지금 가장 차분하면서도 그 다운 복수를 했다. 소설 속 토니는 일반적인 복수 영화의 주인공처럼 아내와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달들을 사적으로 처단하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그는 먼저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그것부터 알고 싶어 했다.
에드워드는 어쩌면 이십 년 동안 그렇게 자기가 처절하게 버려진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 마음을 담아 소설을 썼으리라. 수잔은 당시의 에드워드와 같은 자리에서 자신이 어떻게 그의 영혼을 파괴시켰는지 깨닫고 있을 것이다.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수잔은 야행성 동물처럼 서성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