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무언가 다른 화학작용

by 은예진

“너 누구 팔을 잡아?"


여자애가 그렇게 아무 남자 팔이나 막 잡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씩씩대며 가구점으로 들어섰다. 우혁은 서아의 의견 따위 필요도 없다는 듯 자기 마음대로 가구를 골랐다. 서아는 어이없어서 눈썹을 치켜세운 채 팔짱을 끼고 우혁을 노려보았다.


“여기에 나는 뭐 하러 데려왔어요?”

“뭐 하러 데려오긴 네 가구 사러 왔지.”

“그런데 왜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강우혁 씨 맘대로 골라요?”


“너는 가구 사지 말라며. 사지 말라는 사람 의견이 뭐가 중요해?”

“하아, 진짜 어이가 없네. 어떻게 이렇게 제멋대로 일수가 있지요?”


“너도 한 십 년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막 좋아하고 소리 지르고 꺅꺅거려 봐라. 그럼 이렇게 되는 거야.”


서아가 기가 막혀서 장 대표를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대표님, 우혁 씨는 자기가 제멋대로인 걸 정확히 아는 거예요?”

“네, 압니다. 아주 잘 알아요. 그리고 그걸 즐겨요.”

“맙소사.”


“맙소사 일거 없어. 네가 가구 사는데 동의만 했으면 내가 이렇게 내 마음대로 안 한다. 이제 침구를 사야 하는데 그건 동의할래?”


서아가 허리에 손을 얹고 잠시 우혁을 노려보더니 고갯짓을 하며 앞장섰다.


“어차피 가구 산거 침구 안 살 것도 아니고 알았어요. 동의하고 내가 고를게요.”

“자알 생각했어.”


우혁이 손가락을 튕기며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가구점에서 중년 남자가 허겁지겁 달려와 우혁을 잡았다.


“강우혁 씨 되시지요?”


우혁이 뒤돌아서자 남자가 반갑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저희 직원이 강우혁 씨가 구입하신 가구 정가를 다 받았더라고요. 그래서 사장인 제가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강우혁 씨가 저희 가구 사용 인증샷만 에스엔에스에 올려주시면 오십 프로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와, 이런 게 스타구나 싶어서 서아는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우혁은 단호하게 손을 내 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쓸 가구가 아니라 제 매니저가 쓸 겁니다. 다음에 제 가구 살 때는 도와드리도록 할 테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야겠습니다.”


가구점 사장이 아쉬움이 넘치는 눈빛으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래도 그냥 올려주시면 칠십 프로까지 할인해 드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혁은 부드럽게 웃으며 거절하고 돌아섰다.


서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민석의 옆에서 소곤소곤 말했다.


“의외네요. 스타일로 봐서는 넙죽 받아먹을 것 같은데.”

“아니요. 우혁이가 저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엄격합니다.”

“와, 괜히 스타가 아니네요.”


“스타 중에도 공짜라면 정말 쥐약인 줄도 모르고 밝히는 애들 많아요. 그런데 우리 우혁이는 저런 부분에서는 칼 같아서 도리어 욕을 얻어먹지요.”


장 대표의 얼굴에 뿌듯함이 어렸다. 서아는 민석이 우혁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혁이 그런 서아의 어깨를 툭 치며 끼어들었다.


“니들 둘만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

“강우혁 씨, 흉봤습니다.”


서아가 목소리를 깔고 답하자 우혁은 가소롭다는 듯 내려다봤다.


“쪼그만 게 까불기는.”

“흥.”


서아가 콧소리를 내며 침구 매장으로 먼저 들어갔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이제는 제가 고릅니다. 생각해 보니 사준다는 거 그렇게 거절할 건 뭔가 싶네요. 돈 많으신 우혁 씨 선물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오냐!”


우혁이 턱을 치켜들며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흔들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아가 직접 고르겠다고 나선 건 우혁이 너무 고가의 가구를 샀기 때문이다. 그냥 놔두면 또 얼마나 비싼 침구와 커튼을 고를지 겁이 났다. 서아는 적당한 가격에 센스 있게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 있었다.


서아가 고른 침구를 보고 매장 직원은 진심 감탄하며 잘 골랐다고 칭찬했다. 무조건 비싼 물건만 사려고 했던 우혁도 그녀가 골라놓은 화이트의 리넨 침구와 러그, 커튼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침구 매장에서도 가구 매장과 마찬가지로 우혁이 결제를 하려 하자 인증만 해주시면 무료로 제공해 드리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우혁은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며 결제했다.


“물건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네요. 뭐 살 때마다 저런 제안을 들어야 하니.”


“익숙해서 상관없어. 술집에서도 카페에서도 매번 듣는 말이야. 그리고 저거 거절하면 거절한다고 욕 얻어먹고 받아먹으면 공짜 좋아한다고 욕 얻어먹어.”


우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니 말했지만 듣는 서아는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알라메종 김 사장도 우혁에게 커피값을 받지 않으려 애쓰다 하는 수 없이 받았던 기억이 났다. 김 사장 성격에 우혁이 커피값을 정말 내지 않았으면 두고두고 흉을 봤을 것이다.


“역시 스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요. 난 그렇게 못 살 것 같아요.”


서아가 어깨를 움츠리는 걸 본 우혁이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내 삶에 개입시키는 걸 엄청 조심하며 살아. 내가 한 달간 너한테 연락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야. 나는 너를 돕고 싶은데 이게 잘못하면 너한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까.”


우혁의 말에 서아는 걸음을 멈추고 움직이지 못했다.


앞서 걸어가던 우혁이 멈춰 서며 서아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에 따라가던 민석도 멈추었다. 사람들이 그들의 옆을 비켜 지나가면서 흘끔거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금방 정신을 차린 서아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굳은 듯 서 있던 우혁과 민석도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뭔가 미묘하게 공기의 질감이 달라져 있었다. 우혁을 바라보던 서아의 눈빛과 선글라스를 낀 채 서아의 눈빛을 받아낸 우혁. 그런 우혁의 표정과 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민석 사이에 뭔가 다른 화학작용이 일어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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