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모두 해놓은 서아가 우혁의 방문을 노크했다.
똑, 똑, 똑. 노크 세 번. 조용하다. 다시 똑, 똑. 두 번 더 두드리자 헝클어진 머리에 윗옷은 입지 않고 파자마만 입은 우혁이 문을 짚고 서서 서아를 바라보았다.
“왜에?”
“흡.”
놀란 서아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적응되지 않는 실사판 상체 노출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가렸다. 하지만 가리기 전에 이미 볼 건 다 봤다. 적당히 그을린 피부에 잔근육으로 균형 잡힌 우혁의 몸은 완벽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근사했다.
“허구한 날 텔레비전에서 봤으면서 뭘 야단이야?”
“텔레비전에서 본 거하고 이렇게 눈앞에서 보는 게 같아요? 아우 민망해. 좀 입고 나오지요.”
“졸리니까 그렇지. 빨리 용건 말하고 나가. 나, 더 잘 거야.”
“밥 다 했는데요.”
“밥?”
“네, 아침밥요.”
“아침에 무슨 밥? 나 밥 안 먹어.”
“엥? 그럼 어제 진작 말을 해줬어야지요. 괜히 했잖아. 맛있는 거 했는데 그럼 장 대표님이랑 둘이서 먹어야 하나.”
서아가 중얼거리며 돌아서자 우혁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 세웠다.
“민석이 왔어? 걔 뭐 하러 왔어?”
“어제 물어보니까 장 대표님이 아침을 편의점 도시락으로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어차피 내가 차리니까 여기서 먹고 가시라고 했어요. 괜찮지요?”
“야, 우리 집에서 먹는 밥을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네 맘대로 정하는 게 어디 있냐?”
자겠다고 했던 우혁은 서둘러 티셔츠를 머리에 끼우며 방 밖으로 나왔다.
“두 분 사이에 아침 한 끼 먹이는 걸 물어봐야 할 일인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우혁이 눈을 비비며 투덜투덜 댔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민석은 깔끔하게 면도하고 시원해 보이는 푸른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흰색 리넨 바지를 입고 있었다.
“너는 나 아침 안 먹는 거 알면서 서아가 밥 먹으러 오란다고 넙죽 오냐?”
민석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싱긋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이런 좋은 기회를 왜 거절하겠니. 난 아침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고 서아 씨가 그런 나를 위해서 아침을 해준다는 데 거절하는 게 바보지.”
“이런 나쁜 놈, 내가 저런 놈을 믿고 일을 맡기고 있으니 내가 바보지.”
우혁이 구시렁대며 식탁에 앉았다.
“그냥 자. 나랑 서아 씨만 먹어도 되는데.”
민석이 약을 올리자 우혁은 그를 쏘아보며 대답했다.
“나도 이제부터 아침 먹을 거야. 불규칙하게 먹으면 살이 찌니까 이제부터라도 규칙적으로 서아가 해주는 밥 먹고 체중관리할 거야.”
“좋은 생각이네.”
서아가 무쇠 밥솥에서 밥을 퍼 식탁으로 옮겼다. 민석은 얼른 서아 옆으로 가서 그녀가 서빙하는 것을 돕기 시작했다. 푸른색 대접에 담은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이게 뭐야? 무슨 밥이 이래?”
우혁이 송송 썰어 넣은 파를 걷으며 밥이 신기한지 중얼거렸다.
“잔멸치 밥이에요. 지리 멸치로 만들어서 고소하고 담백한 영양밥입니다.”
소고기 뭇국과 오이무침, 오징어 젖을 곁들인 밥상은 맛깔스러우면서도 깔끔해 보였다.
“너는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인데 이런 걸 할 줄 알아? 너 전공이 디저트가 아니고 한식이냐?”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밥을 했어요.”
우혁도 민석도 서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얼굴이 굳었다. 서아는 별반 신경 쓰지 않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며 씩씩하게 ‘잘 먹겠습니다’를 외쳤다.
“날마다 이렇게 먹으면 살찌겠습니다.”
밥을 후딱 먹어 치운 민석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서아는 자기가 돈을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도와줄 필요 없다고 극구 말렸다.
“그래도 얻어먹기만 하는 거 너무 부담스러운데요.”
“그럼 앞으로 설거지는 놔두고 분리수거는 장 대표님이 맡는 걸로 하세요. 그 정도면 밥값으로 충분할 것 같아요.”
“그럼 나는?”
우혁이 식탁에 있는 영양제를 입에 한 움큼 털어 넣으며 물었다. 그 말에 서아와 민석 둘 다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둘 다 왜 그런 얼굴로 사람을 봐? 내가 뭐 잘못했어?”
“잘못한 건 아니지만 강우혁이 자기도 뭔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러게 말이에요.”
서아와 민석이 마주 보며 서로가 통했다는 듯 웃었다. 우혁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들이 진짜!”
“아니에요. 됐어요. 우혁 씨는 나한테 월급을 주시는 오너잖아요. 더군다나 장을 같이 보겠다면서요. 밥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장을 같이 봐줄 거니까 아주 큰일을 해주는 거예요. 그거면 됐어요.”
서아가 우혁의 앞에 바싹 붙어서 말하자 우혁이 어린애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지. 내가 장을 봐줄 거지. 그 생각을 못 했네.”
분리수거만 도와주면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민석은 서아가 상을 치우는데 도와주느라 식탁에 있는 그릇을 싱크대로 옮겼다. 서아가 개인 접시에 담아준 복숭아를 먹으며 거실로 나가던 우혁은 오빠를 외치는 목소리에 놀라 밖을 내다보았다.
운동복을 입은 채영이 밖에서 손을 흔들며 우혁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댔다.
“우혁 오빠! 오빠!”
열어놓은 거실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 우혁이 미간을 찡그렸다.
“쟤는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야.”
서아가 무심코 우혁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밖에서 까치발을 떼고 손을 흔들던
채영이 굳은 듯 손을 내리지 못하고 서 있었다.
“윤채영 씨지요?”
“응. 꼬락서니를 보니 쟤가 또 한바탕 난리를 치겠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우혁은 느릿느릿 걸어가 버튼을 눌러 대문을 열어 주었다. 재빨리 뛰어 들어온 채영이 마당을 가로질러 거실 유리창 앞에 섰다.
“뭐야? 얘, 지난번 걔잖아. 얘가 왜 여기 있어?”
“어, 은서아라고 우리 집 입주 가사도우미야. 인사해.”
“입주 가사도우미?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