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동생의 눈물

by 은예진

-언니, 그냥 집에 오면 안 돼?


제인이 흐느끼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제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해 훌쩍거렸다. 언니가 떠나고 나자 집안이 텅 비어 버린 것 같다. 나는 언니 없으면 정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언니가 없으니까 치킨 먹는 것도 지친다. 등등 날마다 다른 레퍼토리로 하소연했다.


처음에는 그런 제인이 안쓰러워 다독이다 보니 이제 그게 단순히 제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도 많이 힘들어하는데. 엄마는 언니가 정말 집을 나갈 줄은 몰랐대.


“어머니가 시켜서 전화하는 거니?”


서아의 질문에 제인이 말을 잇지 못하고 쌕쌕거리며 숨만 몰아쉬었다. 제인은 숨소리가 커서 평소에도 통화 중에 잘 들리는데 말을 하지 않고 있자 더 크게 들렸다.


-아니, 내가 언니 보고 싶어서 하는 거야.

“전화 안 하면 어머니가 화를 내기는 하는 거지?”

-그게…….

“걱정하지 마. 제인아. 그냥 묻는 거야. 내가 어머니랑 하루 이틀 살았니.


-언니가 집에 다시 안 들어오면 알라메종에 찾아가서 뒤집어 버린다고 벼르고 있어. 그전에 언니가 들어왔으면 좋겠어.


서아는 길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고윤희 여사님 진짜 왜 이러세요. 그동안 내 등에 빨대 꼽고 살 만큼 살았으면 되지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제인아!”


서아가 동생의 이름을 밝은 목소리로 불렀다. 제인은 그런 언니의 목소리에서 희망을 들었는지 경쾌하게 언니를 부르며 대답했다.


“어머니한테 말씀드려.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제인이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너 통해서 나 협박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전해드려.”


-언니, 언니 왜 그래?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해? 언니 예전의 그 언니가 아닌 것 같아.


제인이 결국 커다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엉엉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전화기 너머에서 문이 열리고 새어머니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왜 우느냐는 새어머니 목소리와 언니가, 언니가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는 제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뭐야? 니가 뭔데 우리 제인이를 울려?


새어머니는 귀가 아플 정도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제인이를 울린 건 제가 아니고 어머니입니다.


-집 나간 주제에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마 계집애야!


“알겠습니다. 제인이를 울린 건 고윤희 여사님입니다.


-이게 진짜 사람을 가지고 노나. 너 어디야? 어디 있어? 당장 이리 오지 못해?


“아니요. 저는 고윤희 여사님을 만날 일이 없습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알라메종에 찾아와서 뒤집어 놓는다고 하셨다면서요?


-내가 못할 줄 아니? 배은망덕한 너를 아주 개망신 줄 거야.


“왜요?”

-뭐?


“제가 왜 배은망덕한 건지 여쭤봤습니다.”


-이게 진짜 뵈는 게 없구나.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꼬락서니가 아주 가관이네.


“할 말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아빠가 어린 저한테 제인이만 부탁하지 않았어도 벌써 오래전에 집을 나왔을 겁니다. 이제 할 만큼 했습니다. 끊으세요.”


고윤희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듣지 않고 끊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서아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양팔을 교차해 가슴을 감싸 안았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온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한 번도 새어머니에게 대들어보지 못한 그녀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던 건…….


서아의 시선이 현관 옆쪽에 있는 운동실로 향했다. 우혁은 하루 두 시간씩 피트니스센터에 다니지만 그것으로 모자라 틈이 날 때마다 집에 있는 운동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강우혁 씨 덕분인가 봅니다.”

“뭐가 내 덕분인데?”

“꺅.”


운동실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던 서아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고 진정하지 못하는 서아를 본 우혁도 같이 놀라서 얼굴이 경직되었다.


“뭘 그렇게 놀래? 내 덕분이라고 혼잣말을 하기에 뭐가 내 덕분인지 궁금했을 뿐인데.”

“운동실에 있는 줄 알았잖아요.”


목에 수건을 두르고 머리가 젖은 것을 보니 서아가 전화를 받는 사이 나와서 샤워를 한 모양이었다.


“은서아가 운동실에 있는 줄 알고 있으면 운동실에 있어야 하는 건데 허락 없이 나와서 죄송합니다.”


우혁이 목에 둘렀던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싱글거렸다.


“그런데 뭐가 내 덕분이라는 거야? 되게 궁금하네.”

“방금 고윤희 씨하고 통화했어요.”

“그 여자가 왜?”


“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알라메종에 가서 행패를 부리겠다고 협박하네요. 그래서 내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따지며 말싸움을 했어요. 예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인데 강우혁 씨 덕분에 해 냈어요.”


“잘했어.”


우혁이 성큼 다가와 서아의 정수리에 손을 댔다. 마치 어린아이한테 하듯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손가락을 머리카락 사이에 넣어서 흔들었다. 순간 서아는 당황해서 턱을 치켜들고 우혁을 올려다보았다.


말간 눈으로 바라보는 서아의 눈길을 의식한 우혁이 손을 든 채 주춤거렸다. 기분이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서아의 머리에 손을 댔지만 막상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서아는 다른 사람 손이 그녀의 머리를 함부로 만졌음에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서아의 머리에 이렇게 손을 댈 수 있었던 사람은 아빠밖에 없었다. 아빠 이외에는 누구도 해 본 적 없는 일을 강우혁이 무심결에 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내기 위해 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만약 새어머니가 진짜 알라메종에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지요? 새어머니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인데요.”

“이제 와서 아쉬운가 보지?”


“그렇겠지요. 제가 돈도 벌어다 주고 살림도 다 하며 살았는데 당장 제가 없으니 고윤희 여사가 직접 밥을 해야 하잖아요.”


“만약에 그 여자가 알라메종 근처에만 나타나도 나한테 연락해. 민석이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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